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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학술서평] ‘思想與時代’(장호 지음, 상해문예출판사 刊)
[해외학술서평] ‘思想與時代’(장호 지음, 상해문예출판사 刊)
  • 이연도(북경대 박사과정)
  • 승인 2002.06.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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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18 10:19:29
북경대학과 청화대학의 교수아파트 부근에는 ‘萬聖書屋’이라는 인문사회과학 전문서적이 있다. 서점 규모는 북경의 여러 대형서점에 비해 크다고 할 수 없지만, 그 지리적 입지때문에 중국 지식사회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곳이다. 요즘 그곳의 서가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책 중의 하나가 2002년 3월에 출간된 張灝교수의 ‘思想與時代’이다.
중국 근현대를 공부하는 사람에게 장호 교수는 낯선 사람이 아니다. 그의 저작 ‘危機中的中國知識分子: 意義與秩序的尋求(1895-1911)’(1987년), ‘梁啓超與中國思想的轉型(1890-1907)’(1971년), ‘烈士精神與批判意識: 譚嗣同思想的分析’(1988년), ‘幽暗意識與民主傳統’(1989년) 등은 동서양을 아우르는 독특한 시각과 깊이로 학계의 인정을 받고 있다. 이는 대륙에서 태어나, 대만에서 교육받고 미국에서 교수활동을 한 그의 이력과도 무관하지 않다. 장호교수는 殷海光의 제자로 대만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오랫동안 재직했었다. 현재는 홍콩과기대학의 교수이다.

민족국가 설립과 대동사상

'思想與時代’는 장호교수의 중국 근현대 문화, 사상의 변천시기에 관한 논문들을 수록한 것이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轉型시대(1895-1925년)’에 관한 사고의 기록들이다. 책의 제목에서처럼 이 글들은 시대의식이 충만하다. 전형시대가 중국 근현대 대변동기의 관건이 되는 시기라는 점에서 이는 당연한 것일 수 있다.
책에 수록된 적지 않은 글들은 중국철학의 전통적 주제들에 관한 것이다. 이를테면 경세사상, 내성외왕, 천인합일등의 개념이나 유암의식[幽暗意識]등이 그렇다. 서문에서 저자는 이 개념들을 고민하게 된 데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시대의식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토로하고 있다. 전통적 개념의 깊이있는 탐구가 곧 대격동기 사상변동의 근원과 배경을 찾는 열쇠라는 것이다.
중국 근현대의 사상흐름을 읽는데 있어 그는 기존의 연구자들이 무시하거나 소홀히 한 부분에 주목한다. 가령 5.4 시기 민족주의의 강력한 창궐 속에서도 세계주의를 주창하는 움직임 또한 만만치 않았다는 식이다. 1895년에서 5.4에 이르기까지 민족국가의 건립은 당시 사회사상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당시 중국 지식인들 전반을 대표하는 유일한 사상은 아니다. 또 다른 중요한 사상이 바로 大同사상을 대표로 하는 각종의 유토피아 사상의 대두. 강유위의 “대동세계”는 이러한 유토피아 사상의 대표적인 형태이지만, 이후의 담사동, 장태염, 유사배, 손중산등으로 이어지는 유토피아적 사고의 발달은 중국 근대사상의 흐름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사상적 흐름으로 존재한다.

정통이 해답을 주는 주체로

유토피아 사상이 미래를 전제로 하는 반면, 중국 대동사상은 과거를 회고하는 성격을 지닌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중국 근대의 유토피아 사상은 그런 점에서 전통적 대동사상의 복고적 경향을 미래 사회를 건설하는 희망적 모태로 전환시켰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유토피아 사상은 현대 중국 정치에도 짙은 그림자를 남기고 있다. 모택동의 대약진운동, ‘단절없는 혁명’은 인류의 이상사회를 꿈꾸는 유토피아의 정태적 모습을 동태적으로 바꾼 것이라 할 수 있다.
‘전통과 현대’에 대한 문제에 대해 그는 학계의 ‘현대화’ 중심주의에 의문을 제기한다. 양자의 관계에서 ‘현대화’는 가치의 주체로 존재한다. 전통은 그 가치 판단의 대상으로서만 의미를 가질 뿐이다. 현대화의 위기가 구체적으로 드러난 오늘날에도 그 양자관계에 대한 근본적 반성이 아직 없다. 수렁에 빠진 현대화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전통’을 새로운 해답을 주는 주체로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은 한여름 어깨를 때리는 죽비처럼 뼈아프면서도 시원하다.

이연도(북경대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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