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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_ 나루터 가는 길을 묻다
원로칼럼_ 나루터 가는 길을 묻다
  • 엄정식 서강대 명예교수·철학
  • 승인 2011.08.29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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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정식 서강대 명예교수·분석철학
나는 평소에 이 세상이 두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고 믿고 있다. 하나는 눈을 떴을 때 보이는 세상이고 다른 하나는 눈을 감아야 비로소 보이는 세상이다. 눈을 떴을 때 보이는 세상을 잘 보기 위해 우리는 안경을 쓰기도 하고, 전문가들은 망원경이나 현미경을 사용하기도 한다. 아마 과학은 이러한 세상을 더 잘 보기 위해 형성된 지식의 체계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과학이 발달한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장치를 갖고서는 눈을 감아야 보이는 세상을 볼 수는 없다. 가령 별들의 세계에 관해 생각해보자. 천문학자는 성능이 좋은 망원경을 갖고 있을 경우 안드로메다星같이 아주 먼 거리에 있는 별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망원경을 지니고 있더라도 알퐁스 도데의 『별』이나 셍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그 별, 혹은 윤동주의 그 별을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한 별들은 눈을 감아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눈을 떴을 때 보이는 세상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눈을 감아야 보이는 세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이면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에 대해서 궁금해 한 적이 있었다. 마침 3년 전 정년으로 퇴임한지 얼마 후 그런 모임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 교육과학기술부의 도움을 받아 과학기술계와 인문사회계열의 학자들이 모여서 이른바 ‘문진포럼’이라는 것을 발족시켰던 것이다.

‘問津’이란 이름은 위원 중에 국문학자 한 분이 제안한 것으로서 『논어』의 「미자편」에서 따온 것이다. 공자가 제자들과 여행하던 중 어느 날 ‘나루터 가는 길이 어디인지 물어보라’고 부탁한 대목이 있는데, 우리는 그 이름에 모두 찬동했다. 사실 전공이 다른 학자들이 모여서 토론에 임할 때는 그 방법과 자세가 매우 중요하게 마련인데 바로 나루터 가는 길을 묻는 그 자세가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이 자세는 어떤 결론을 얻는데 급급하지 않기 때문에 심한 논쟁에 말려들지 않을 수 있고 무엇보다 어떤 주제에 관해서 다각도로 접근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나루터가 여행의 궁극적 목적지가 될 수는 없기 때문에 토론을 즐기는 여유를 가질 수도 있었다.

우리는 매달 한두 번씩 만나면서 여러 가지 주제를 놓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가령 행복, 리듬, 소통, 교육, 위험 등 다소 추상적인 것으로부터 요즈음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구체적인 사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뤘다.

이러한 주제는 철학회에서도 다룰 수 있는 것이지만 물리학자와 화학자, 생물학자와 수학자는 물론 의사와 작곡가, 화가, 건축가, 교육학자, 사회학자, 정치학자 등 여러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신의 입장을 개진할 때 그것을 듣는 것만으로도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또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 그렇게 다양한 시각과 입장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그 자체가 엄청난 소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바로 그 나루터 가는 자세를 엄격하게 고수해 온 데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의도적으로 결론에 도달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어떤 담론을 심화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공리공담으로 비춰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문적 탐구가 실용적 가치만을 창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새로운 지식을 획득하는 데 있다면 문진포럼이 당분간 더 지속됐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다.

나는 그동안 이 모임에 참여함으로써 많은 것을 얻었다. 첫째는 이 격동의 시대에 여러 중요한 개념들이 급격하게 변모해 그것들을 신중하게 다시 정립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원활하게 사유를 전개할 수 있고 또 효과적으로 의사를 소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자신의 입장을 다시 확인하고 더욱 확고하게 정립하기 위해서라도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세상은 눈을 뜨고 볼 수 있는 세상과 눈을 감아야 보이는 세상으로 구성돼 있다는 것을, 그리고 서로 소통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엄정식 서강대 명예교수ㆍ분석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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