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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도시 이르쿠츠크에서 발견한 '민족의 뿌리'
낯선 도시 이르쿠츠크에서 발견한 '민족의 뿌리'
  • 정완호 단국대 교육대학원 석좌교수
  • 승인 2011.08.22 14: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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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자연유산 바이칼호를 가다 <상>

일찍이 육당 최남선은 바이칼호 일대를 우리 민족의 시원이라 여겼다. 석양이 비치는 바이칼호가 낯선 여행자들을 환대하는 듯 불타고 있다.
<교수신문>과 러시아과학원(Russian Academy of Sciences:RAS) 시베리아지소(Siberian branch:SB)의 자연관리연구소(Baikal institute of nature management:BINM)가 공동 주관한 2011 하계 해외 학술 생태 탐방지는 바이칼호였다. 바이칼호의 생태와 문화를 둘러본 정완호 단국대 교육대학원 석좌교수의 기행기를 두 차례에 걸쳐 싣는다. 사진 제공 = 장언효 국민대 명예교수

지난달 20일 수요일 인천공항에서 출발해 21일 목요일 새벽 러시아 이르쿠츠크 공항에 도착해 세미나를 하고, 바이칼 호 주변을 관광한 후 다시 28일 목요일 인천공항에 도착하기 까지 8박 9일 간의 일정이었다. 일행은 모스크바 극동문제연구소장 김영웅 박사까지 27명이다.

 누군가 “바이칼 호는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이루어지는 곳”이라 했다. ‘나에게는 어떤 이미지로 다가올까!’ 설레는 마음을 간직한 채 느즈막이 공항으로 출발해 서너 시간 비행해 한 밤중에 도착한 이르쿠츠크에서는 고요와 적막만이 우리를 맞이했다.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연주

 러시아 사람들은 맑고 깨끗하기 그지없어 시베리아의 진주라 부르는 바이칼 호가 시베리아의 끝이라 생각한다. 10월 혁명으로 쫓겨난 귀족들이 이르쿠츠크에 이르러서 바이칼 호를 넘을 수는 없다며 최후의 항전을 벌인 이유도 바이칼 호를 넘어 동으로 가면 러시아적인 분위기를 찾아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르쿠츠크는 쫓겨난 귀족들의 한과 눈물이 섞여 발전한 도시여서 그 매력적인 분위기가 규모는 작지만 모스크바나 페테르부르크 못지않다.  그래서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 동쪽에서 가장 러시아적인 분위기가 스며 있는 도시가 이르쿠츠크라 한다. 거리 풍경, 건축양식 등에서 러시아의 향취를 느낄 수 있다.

시청 앞 광장에는 레닌의 머리 동상이 매우 크게 세워져 있다. 마침 그 앞에서 결혼식이 끝나고 사진 촬영하는 신랑 신부와 하객들이 소란스럽게 웃고 떠들며 새로운 출발을 한껏 즐기는 모습이 보였다. 시청 앞에 모여드는 이유는 시청에 결혼 신고라는 절차가 있기 때문이란다. 광장 길 건너에는 삼성과 LG의 간판이 크게 눈에 들어오고 차도에 다니는 버스 유리창에 ‘창동행’, ‘정릉행’ 같은 한글이 계속 눈에 띈다. 버스에 한글을 그대로 남겨두어야 훨씬 좋은 자동차라는 인정을 받기 때문이란다.

가랑비가 촉촉이 내리는 아침 전나무 숲이 빼곡하고 푸른 초원이 넓게 펼쳐진 민속박물관 ‘딸지’ 에 도착해 농기구가 전시된 곳을 둘러봤다. 땅을 파거나 고르는 삽, 괭이, 호미가 매우 비슷하며 소가 끌고 다니는 밭갈이 기구인 호리와 겨리 같은 농기구 들이 어느 것 하나 눈에 설은 것이 없다. 곡식의 낱알을 터는 탈곡기, 잡티를 날려 보내는 키와 풍구, 곡식을 담아 옮기는 삼태기와 바구니, 옷감을 짜는 베틀기계 같은 것이 어쩌면 모두 우리의 것과 그렇게도 닮을 수 있을까! 선뜻 마음을 스쳐 지나가는 ‘우리의 뿌리가 바로 여기에서 시작했지!’ 하는 여운은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부농의 통나무 저택은 창문과 처마를 섬세한 나무 조각으로 장식해 아름답게 만들었다. 이러한 것은 통나무 건축에 치장할 수 있는 최상의 방식인 것으로 느껴졌다. 실내에는 역시 추운 지방인지라 茶문화를 엿볼 수 있는 여러 모양의 크고 작은 주전자가 있었다. 숯이나 석탄으로 주전자 밑에서 물을 끓이고 수도꼭지 모양으로 물을 따르게 돼 있었다. 이렇게 크고 작은 주전자는 빈부에 관계없이 누구나 갖고 있는데 어떤 것은 화려하고 어떤 것은 단순하다.

이르쿠츠크에 위치한 '이버우가' 불교 사원. 러시아의 한 구석에서 인도의 불교와 티벳의 토속 종교가 혼담된 일종의 라마교 사원을 만날 수 있다.

가랑비 촉촉이 내리는 날 아침

바이칼 호는 세계인이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관광지 중 하나로 그 크기가 우리나라의 약 1/3이다. 호수 둘레의 길이는 서울-부산 거리의 5배나 된다니 얼마나 큰 호수인지 짐작이 간다.

이 호수에는 이곳 특산 어종인 오물(Omul)이 많이 잡힌다. 그래서 오물을 이용한 생선 요리가 매우 다양하다. 과메기 맛이 나는 반 건조한 것, 훈제한 것, 말린 것 그 외에 졸이고, 굽고, 찌고, 그 가지 수가 많기도 하다. 나는 우리가 즐겨 먹는 고등어구이 맛이 훨씬 감칠맛이 났다. 우리말로 오물이라는 단어와 같아서 쉽게 외워졌지만, 그 단어에 우리 일행은 웃기도 많이 했다.

물개종류인 ‘네르파’란 특산종은 바다에 사는 동물이지만 이 호수에 들어와 오랜 기간을 적응해 살고 있다.  이 동물의 가죽이 사람들에게 선호의 대상이 돼 그 생존이 위협을 받게 되자 지금은 어획 금지령이 발효된 상황이다.  50년의 평균수명을 갖는데 바이칼 호에는 약 10만 마리 정도 살고 있다. ‘바이칼 호수에서 네르파를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나의 바람은 무산되고 수족관에서나마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얼굴이 얼마나 귀엽고 몸짓이 예쁜지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다.

바이칼 호는 1800여 종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생물종 다양성의 보고’이기 때문에 1996년에 ‘UNESCO 세계 자연 유산’으로 등록됐다.

추운 시베리아 지방의 바이칼 호와 더운 아프리카 지방의 탄자니아 호는 그 크기가 비슷할 뿐 아니라 기다란 초승달 모양을 하고 있다. 동물생태 학자들은 이 두 곳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최고 깊이 1637m의 바이칼 호에는 600m 깊이 까지 수중 동물이 살고 있는데, 최고 깊이 1470m의 탄자니아 호에는 60m 깊이 까지만 수중 동물이 서식함을 알았다. 그 원인이 무엇인가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햇빛이냐, 먹이냐, 수압이냐, 아니면 산소냐 하는 논란을 하면서 하나씩 문제를 풀어 나갔다. 문제의 핵심은 용존산소 농도였다. 1987년 여름, 한국의 고등학교 과학교사 40명에게 강의를 하던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의 Dr. Fortner 교수는 그 원인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는 수표면의 온도가 평균 4°C 전후라 한다. 물은 4°C 때에 단위 부피당 무게가 가장 크다. 즉 밀도가 가장 높다. 호수 위쪽 표면의 비중이 큰 물 분자는 대기 중의 산소를 끓어 안고 물속으로 서서히 들어가고 가벼운 호수 밑의 물 분자들이 위로 올라오는 자리바꿈을 하면서 길고 홀쭉한 타원을 그리며 순환(turn over)한다. 더운 지방의 탄자니아 호는 이러한 순환 현상이 일어나지 않고 대기 중의 산소가 오직 확산(diffusion) 현상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수중 동물이 서식할 수 있는 수심이 10배까지 차이나는 것이다 .”

이러한 상황을 강의를 통해서가 아닌 바이칼 호에 직접 와서 관찰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마치 내 스스로 그러한 실험과정의 데이터를 내가면서 바이칼 호를 접하는 것 같은 만족과 즐거움은 생각보다 크다.

‘자연사 박물관’에서 자연 생태계 상태로 이 지역의 많은 동식물을 관람 할 수 있는 것도 커다란 보람이다. 그런데 특히 이곳에 전시된 ‘매머드’는 그 크기하며 뻗어 나온 이빨이 어마어마하다. “빙하시기에 멸종해 버린 이 매머드의 세포를 채취해 유전공학의 테크닉을 빌려 ‘매머드의 새 생명을 복원시킬 계획이 이루어진다면…’ 우리 지구상의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공상을 살며시 했다.

설렘 가득한 시베리아 횡단 철도 여행

러시아는 사회주의 체제인데도 오히려 자본주의 보다 더 경제문제에 민감한 것 같다. 비자를 내주면서 1인당 한화 12만원씩 받는 것은 합리성이 적어 보인다.

시베리아 횡단철도 여행은 누구에게나 막연한 설렘으로 다가온다. 이르쿠츠크 역으로 부터 울란우데 역까지는 8시간 가는 짧은 거리이지만, 열차는 몇 십 년이나 됨직한 낡은 침대차였다. 창문을 올리고 내리는 데
도 남정네들이 매달려 힘을 써야 될 만큼 쉽지 않았다. 한 칸에 4명이 타게 돼 있는 이층 침대는 오르내리기가 수월치 않고, 안전 유지 장치들이 허술하다.

화장실 사용도 불편해 모두 애를 먹었다. 도시가 시작될 때면 역무원이 문을 잠그고 도시를 벗어나야 문을 열어주니 생리현상을 조절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곳 시베리아도 유럽 못지않게 화장실 사용이 매우 인색했다. 대부분의 화장실이 유료이며, 무료 화장실은 ‘푸세식’이어서 편안한 생각에 잠기기에는 대단히 불편한 시설이었다.

 

정완호 단국대 교육대학원 석좌교수
한국교원대 총장과 한국과학교육단체 총연합회장을 지냈다. 2003년 <문예비평>을 통해 수필가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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