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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층근대론 지렛대 삼아 유교 재해석
중층근대론 지렛대 삼아 유교 재해석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1.08.17 15: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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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_『맹자의 땀, 성왕의 피』펴낸 김상준 경희대 교수

 

연구년을 맞아 프린스턴에 막 여정을 푼 김상준 경희대 교수.
김상준 경희대 교수의 전공은 사회학이다. 올해 안식년을 맞아 해외에 나가기 전, 김 교수는 고심이 뚝뚝 묻어나는 문제작을 한 권 발표했다. '유교'에서 인류의 미래 보편 가치를 읽어낸 『맹자의 땀, 성왕의 피-중층근대와 동아시아 유교문명』(아카넷, 2011.7)이다. 특히 그는 '중층근대성론'을 바탕으로, 유교를 현재적으로 재해석하며, 틀림없이 논쟁이 예상될 폭발적 주장을 들고 나왔다. 책의 문체 또한 자유롭고 유연하며, 기존의 학술적 글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있다. 그를 지난 10일 이메일로 만났다.  

 

△ 이 책은 643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인데, 핵심 주장을 듣고 싶습니다. 아직 이 책을 접하지 못했을 독자들을 위해 간명하게 정리해주시죠.

 "19세기 이후 2수0여년간 세계를 재편해 온 서구중심의 문명상황에 거대한 변화의 기류가 생성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뿐 아니라 인도권, 이슬람권, 남미권의 미래의 위상은 분명 지금과 크게 다를 것입니다. 기왕의 세계체제는 지구상의 모든 사회가 오직 하나의 선두(서구 중심국)를 바라보고 달리는 ‘시간의 서열체제’였습니다. 선두(서구)는 가장 앞선 1등 시간, 후미(비서구)는 뒤쳐진 열등 시간을 산다고 믿어 왔습니다. 이 신화는 깨지고 있고, 깨져야 마땅합니다. 선두를 제외한 모두를 비정상으로 만드는 거대한 '비정상의 대량생산 체제'일 뿐 아니라, 거기서 생산되는 ‘비정상’을 악이라 명명하는, 일종의 거대한 '악의 대량생산 체제'이기 때문입니다.

유교에 주목한 것은, 유교 역시 그러한 서구중심 문명의 시각에서 볼 때 ‘비정상’이자 ‘악’이라 명명될 수 있는 후미의 문명에 해당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교연구를 통해 이를 전복시키면, ‘악을 구조적으로 대량생산하는 문명관’도 흔들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 핵심은 유교에 내재한 윤리성과 비판성의 보편적 근원을 발굴한 것입니다. (23쪽 ‘맹자의 땀’ ‘성왕의 피’ 설명). 그 발굴은 유교만의 것, 유교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인류의 여러 문명에 내재한 윤리적, 비판적 심급의 재발견이기도 합니다. 이 발견을 통해 여러 문명이 동등한 차원에서 서로 만나고 대화할 수 있게 됩니다. 결국 이 책은 인류 문명사의 근원적 재해석입니다. 이것이 이 책이 제기한 ‘중층근대론’의 목표입니다."

△ 80년대 초반 대학 운동권, 징집 등 복잡한 현실을 지나왔는데, 학문적 주제랄까, 그것이 '유교'로 모아졌다는 것은, 의외입니다. 왜 '유교' 였습니까?

 "오래 겪고 생각해 보니 제 주변에서 유교를 강하게 비판했던 분들일 수록, 역사 속의 ‘올곧은 유자’들과 정확히 닮았습니다. 운동이든 강제징집이든, ‘목에 칼이 들어와도 옳은 말을 하고’ 또 그러다 유배의 길에 올랐던 우리 역사 속의 直儒들이 겪었던 일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유교에 동병상련의 감정이입을 한 것은 아닙니다. 과거 운동권이 그랬듯 도덕권력에 스스로 치어버린 점이 유교에도 있습니다. 이런 점을 균형있게 서술하려 했습니다. 이를 통해 스스로 정화하고, 시대적으로 맞는 방향으로 학문과 실천의 방향을 업데이트하려는 노력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

△ 스스로 밝힌 것처럼, 이 책의 구상은 1990년대 중반에 싹이 튼 것 같습니다. 격동의 시간대에 '유교'를 재발견, 재해석하신 셈인데, 사실 이 시기에는 '유교자본주의론' 등 서구 학계 일각의 움직임도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시각과 '유교자본주의론'은 어떤 점에서 변별되는 것인지요?

 "유교자본주의론에는 막상 ‘유교경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었습니다. 본체가 없었던 거죠. 그저 동아시아 개발독재형 자본주의라는 본체에다 유교라는 이름의 당의정을 슬쩍 입힌 것뿐입니다. 또 사회주의 중국의 성장은 전혀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동아시아 형의 경제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론으로써 치명적인 결함이 많았죠. 그 개념은 이제 폐기해도 좋다고 봅니다. 『맹자의 땀』은 오늘날 동아시아 경제에 독특한 특징을 주는 역사적 근거를, 오래 지속되어 온 동아시아 사회구성체의 특징에서 찾습니다. 이것이 ‘동아시아 논농사 유교소농체제’입니다(특히 제9장).

이는 1)외적 성장보다 내적 밀도의 강화 2) 멀티 태스킹 형의 소규모 경영 3)낮은 에너지 소비-높은 일자리 창출 4)교육과 인적 자원을 중시하는 근면혁명(industrious revolution)형 경제로 요약됩니다. 이는 현재와 미래에도 여전히 작동할 경제체제입니다. 유교사에서는 이러한 경제정책 방향을 ‘小農恒産’이라고 말합니다. 동아시아 유교세계의 논농사 소농체제는 산업혁명 이전까지는 단연코 전지구적으로 가장 높은 생산력 수준을 자랑했습니다. 여기에 유교국가체제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 온 몸에 체득되어 있는 그 역사적 경험과 자원을 다 내버리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습니다. 오늘날 경제문제에 되살려 갈 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지속가능하고 환경친화적이며, 소규모 경영에 적합한 경제에 미래가 달려있는 오늘날의 세계경제상황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

△ '중층근대와 동아시아 유교문명'이 부제입니다. '복수의 근대'를 의미하는 '다중근대성론'이 일찍이 세련된 목소리로 관심을 끌었습니다. 선생님은 두 가지 점을 문제삼아 이를 비판하면서, '중층근대성론'을 제기하고 있는데요. 또 일각에서는 선생님의 중층근대성론이 브로델의 역사관과 비슷한 점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고요. 다시한번 변별점을 확인해주실까요.

 "다중근대론은 서구중심 문명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잘해야 서구문명을 창조적으로 배우자는 정도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남의 집 보석만 보고, 제 집 안의 보석은 못 본 것이죠. 그런데 이 보석은 모두가 같은 것입니다. 올더스 헉슬리가 ‘perennial philosophy'에서 제기한 것도 이 대목입니다. 보편적 윤리성, 초월성, 비판성을 세계 주요 문명들은 모두 품고 있습니다. 중층근대론은 철학과 역사학 그리고 최근 자연과학의 증거들을 통해 그 근거를 밝혔습니다. 중층근대론은 근대성이 1)원형근대성 2)식민-피식민 근대성 3)지구근대성의 세 층위의 중첩과 접합을 통해 이루어져 있다고 봅니다. 이 점에서 지구 모든 문명이 구조적으로 같습니다. 그러한 층위 형성 과정이 문명간 교호에 깊이 의지하고 있음도 상세히 밝혔습니다. 미래에도 그럴 것입니다. 중층근대성론은 미래의 변화에 열려 있고, 그러한 변화의 역동성을 적극적으로 담는 이론체계입니다. 반면 브로델은 우선 그 역시 서구중심 문명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지층의 사유’란 현재적 역사의 변동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매우 보수적인데, 그 결과 근대문명의 서구중심성은 미래에도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화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 그렇다면, 이번 작업을 통해 '재발견' 또는 '재해석'한 '유교'의 가능성은 어떤 것인가요? 그 가능성이란 게 새롭게 해석된 것이라면, 기존의 '유교' 연구나 이해는 정태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오늘날 한국이 강한 게 IT경제, 네트웍 사회, 강한 민주전통, 시민적 역동성, 권력견제, 창발적 조직문화 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초첨단적인 모든 현상들이 유교적 역사와 깊이 맞물려 있습니다. 특히 이 책 4부 조선후기 사회 분석에서 이 연결점들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기존의 유교 연구 모두가 정태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훌륭한 연구들이 많습니다. 다만 상당한 연구들이 관념사에 그치거나, 사회학적 연구들도 유교를 너무나 간단하게 ‘전근대적’, 부정적 유산으로 치부하고 맙니다. 이러한 연구 풍토에 근본적으로 새로운 물결 또는 충격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

 △ 인상적인 대목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유교에서 '현세주의를 넘어서는 초월의지'을 읽어냈고, 이를 강조했더군요. 이런 시각은 유교가 인류 보편적 가치를 담지한다는 주장과 나란히 설 수 있는 것인가요?

"유교가 현세적응에 머물렀다면 그렇게 수많은 유자들이 그토록 오랜 역사를 통해 목숨을 걸고 권력 견제에 나섰을 수가 없습니다. 이 점에서 막스 베버는 유교를 크게 잘못 보았지요. 공자 자신부터 세상의 인정을 다 받은 후인 55세에 굳이 냉대와 조롱을 무릅쓰고 14년 유랑길에 나섭니다. 가족까지 버리고 나서죠. 살벌한 전국시대 전쟁 군주들 앞에서 그야말로 목숨 걸고 직언했던 맹자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초월적 가치에 대한 깊은 믿음과 헌신이 없다면 도대체 불가능합니다. 그러한 초월성은 세계의 모든 윤리종교의 근원적 특징입니다. 이는 보편적 윤리성, 비판성과 바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보편적 초월성, 윤리성, 비판성이 긍정적 의미의 근대성의 중핵에 있습니다. 이 점이 중층근대론의 또 하나의 요점입니다."

△ 독특하게도, 선생님은 이 책을 가리켜 '방법론의 책(book of methodology)'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방법의 핵심은 '비판'이구요. 그런데 이 '비판의 방법'은 유교연구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가장 고심한 게 방법론입니다. 처음에는 유교 바깥에서 비판적으로 보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안일했지요. 좀 하다 보니 내가 바로 유교라는 걸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당황스러웠습니다. 내가 나를 볼 수 있는가? 내 눈동자를 내가 볼 수 있는가? 고민했습니다. 이러면서 비판의 방법도 한 단계 성숙한 것 같습니다. 단순히 외부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도 보아야 하고, 이러한 시각 교체가 부단히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유교만을 보지 않고, 유교만의 입장에서만이 아니라 여러 다른 입장과 시각에서 유교를 보았습니다. 또 유교의 시각에서 다른 입장과 세계관들을 보았습니다. 비판은 비판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비판은 발견의 방법이어야 합니다. 부단한 시각교체를 천체물리학에서는 parallax라고 합니다. 시각 바꿈을 통해 관찰자와 별간의 거리를 계산하지요. 유교를 해석하는 이 책의 방법도 이와 유사합니다. 방법론에 대한 근본적 고민 없이 유교는 결코 재해석될 수도 재발견될 수도 없다고 봅니다. 비판의 방법 역시 부단히 심화되어야 합니다. 그 대상은 물론 유교만에 국한될 수 없습니다. "

△ 약간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이번 저작은 새로운 문체와 스타일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서문에서도 밝히셨지만, '간명하고 대중적인 표현'을 일부러 선택하셨거든요. 기존 학술서들이 사실 딱딱하고 '재미없는' 문체로 넘쳐나는데, "기존의 학술서와는 스타일이 상당히 다르다"라고 할 정도로, '달라야 했던 사정'이 있을 것 같습니다. 들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덧붙여, '전공'이란 학문간 울타리에서 본다면, 이 책은 철학, 역사학, 정치학, 사회학, 경제학이 서로 넘나들고 있는 책입니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고, 또 동료 학자들의 평도 사뭇 엇갈릴텐데요. 초고에 대한 평은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특히 4부 조선사 부분을 스토리텔링(storytelling) 방법으로 썼습니다. 추리소설의 플롯이나 심리분석 같은 재미의 기법도 약간 동원했고요. 그렇게 해보니 내용 전달이 오히려 더 잘되는 것 같습니다. 무거운 내용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다는 거죠. 오히려 기왕의 우리 학술지 글쓰기 방식이 필요 이상의 과도한 형식주의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논문지도 학생들에게 항상 격식을 지우라고 말합니다. 할 말은 못하고 격식만 채우다 끝나는 글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사회학의 고전 중의 고전인 에밀 뒤르켐의 『사회분업론』이나 막스 베버의 『경제와 사회』가 실은 굉장히 역사적인 분석이 많고, 또 여러 학문 분야를 종횡무진으로 넘나드는 책들입니다. 『맹자의 땀』도 정확히 이러한 고전 사회학 저술의 유형에 속합니다.

이 책은 15년간의 집중된 공부와 고심의 결과입니다. 결코 쉽게 쓰지 않았습니다. 막스 베버도 여러 학문분과 전공자들에게 감사와 양해의 말을 자주 했습니다. 여러분들의 일차 연구 성과가 없었다면 나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을 것이라고요. 그리고 전체를 보는 입장에서 불가피하게 부분적으로 여러분들과 다른 해석을 한 것을 너그러이 이해해 달라고도 했지요. 저도 꼭 마찬가지입니다. 초고에 대한 평은 대체로 ‘충격적이다’는 쪽 같은데요, 그 중에서 이 책 초고를 통독한 철학 전공자 한 분이 ‘괴물같은 책이다’고 평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 분이야말로 괴물처럼 공부하는 분입니다마는. "

△ 결론 부분에서 '20세기식 사고방식을 벗어나고 넘어서야 한다'고 서술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우리가 벗어나고, 넘어서야 할 20세기식 사고방식은 무엇인가요? 또, 이 책은 그런 사고방식과 결별하는 경계선을 그려냈다고 보시는지요?

"냉전적 사고와 결별해야 합니다. 동아시아는 20세기 냉전의 상처가 가장 큰 곳입니다. 2009년 골드만 삭스는 2050년에 코리아가 1인당 GDP 세계2위의 나라가 될 것이라 예측했습니다. 여기에 두 개의 전제를 깔았습니다. 그 이전에 중국이 총 GDP 1위가 되고, 통일 한국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의 예측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한쪽으로 최강국인 미국, 다른 한쪽으로 급성장하는 중국을 낀 한반도의 위상은 매우 유망합니다. 물론 위험요소도 있습니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우선 동아시아 내에서 서로 건널 수 없는 선을 긋고 ‘너 죽기 아니면 나 죽기’라는 식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누군가 먼저 평화와 공존, 그리고 공영의 다리를 놓아야 합니다. 한국이 그 역할을 해야 합니다. 동아시아 유교문명이라는 공통분모를 진취적으로 재해석하는 일은 그러한 큰 과제를 위한 작은 초석을 놓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작업들을 통해 지난 상처를 치유하고 넘어설 수 있는 통로들이 생길 것입니다. 『맹자의 땀』이 그런 과제를 어느 정도는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 과거 지도 교수가 드 베리 교수셨습니다. 뛰어난 동아시아 연구자라고 알 고 있습니다. 베리 교수를 비롯, 해외 학자들의 기존 동아시아 연구에 대해 조심스럽게 평가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 책에 영향을 미친 요소들도 있으리라는 판단에서입니다.

 "드 베리 선생께 송명 유학을 배웠지만, 지도교수는 사회학과의 앨런 실버 교수셨습니다. 실버 선생께 이 책을 증정했습니다. 해외, 특히 미국의 동아시아학 수준은 우리 상상 이상으로 매우 높습니다. 드 베리 선생께도 배운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수준을 근본에서부터 다시 넘어서는 것은 동아시아 학자들의 몫이 될 것입니다. 특히 한국 학자들의 분발이 중요합니다. 한국은 앞서 말한 ‘방법론적인 시선교체’가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곳입니다. 유교를 가장 혁신적으로 해석하고 응용할 수 있는 잠재력이 이곳에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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