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3 18:45 (화)
서평_ 리링 지음, 『논어, 세 번 찢다』(황종원 옮김, 글항아리, 2011.7)
서평_ 리링 지음, 『논어, 세 번 찢다』(황종원 옮김, 글항아리, 2011.7)
  • 신정근 성균관대·동양철학과
  • 승인 2011.08.16 16: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러나 논쟁의 치열성은 사라지고‘晩明小品’으로 전락했다

『논어, 세 번 찢다』(원제: 『성인을 걷어내야 진짜 공자를 만난다[去聖乃得眞孔子]: 논어, 종횡으로 읽기[論語縱橫讀]』, 2008)의 제목만 보면 책에 도발적인 내용이 많으리라 그려지지만 다 읽고 나면 밋밋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느낌은 리링이 날 선 문제의식을 책의 몇 곳에 흩어놓을 뿐 집중해서 다루지 않고, 한국문맥으로 다 녹여낼 수 없는 중국의 독특한 공자 열풍을 전달하지 못한 데서 생기는 듯하다.

리링은 각주에서 活學活用의 이야기를 조용히 끄집어낸다. 이 말은 1960년 12월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에서 린비아오(林彪)가 마오쩌둥 사상의 기치를 내걸며 학습을 강조한 뒤에“문제의식을 갖고 배우자. 창조적으로 학습하고 적용하자. 학습과 적용을 결합시키자. 긴급한 적용을 먼저 배우자. 즉시 효과가 나타나게 하라(帶着問題學, 活學活用, 學用結合, 急用先學, 立竿見影)”라는 지침과 관련있다.

당과 정부는 마오쩌둥의 많은 말을 추려서 포켓용 어록으로 작게 만들어서 인민들에게 배포했다. 그들은 그걸 휴대한 채 늘 읊고 외워서 구체적인 상황에 써먹어야 했다. 이 구호는 실상을 은폐하는 가면 놀이였다. 인민은 마오쩌둥 어록 이외의 책을 골치 아프게 읽을 필요도 없었지만 어록 안에서 모든 문제의 원인과 해결 방안을 찾아내야만 했다. 린비아오는 긴 메시지를 짧게 줄이는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해서 마오쩌둥의 개인숭배를 완수했던 것이다. 리링은 인문학의 특징이 無用에 있다는 말로 린바이오의 부활을 경계하고 있다.

1980년 이래 공산당이 혁명정당에서 집권정당으로 바뀌고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됐다. 이로 인해 중국 사회에서 전체 인민을 대변하는“믿음이 상실되고 이상이 없어진 후 무엇으로 그것을 대신 할지 하는 문제”가 생겨났다. 1980년대 말에는 유림 내부 인사가 문제의 해답으로 공자를 내세웠지만 이제는 수많은 사람이 그 해답에 동조해서 사회적 세력을 형성하게 됐다. 그들은 정작『논어』를 읽지도 않은 채 공자 존숭의 열풍으로 빠져들면서 존숭과 다른 이야기가 들려오면 거친 반응을 보였다. 리링은 전작『집 잃은 개(喪家狗)』(2007)의 출판 뒤에 저들로부터 거친 반응을 받고서 치를 떨었다.

영웅심리 아닌 학자의 양심 고백

두 이야기를 겹쳐 읽으면 리링이 1980년 이래 불기 시작해서 2000년대에 광풍으로 성장한 공자 열풍에서 무엇을 예감하면서 왜 전율하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그가“나는 일찌감치 누군가 나와서 몇 마디라도 해야 했다고, 그것은‘아니다’라는 한 마디라도 해야 했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는데, 이 고백이 영웅 심리가 아니라 학자의 양심에서 울려나온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 리링은『논어』읽기의 연작에서 새로운 철학을 정립한다는 고상한 목표를 내걸지 않고 기존의 해석을 전복하겠다는 도발적 과제를 수행하지 않는다. 어찌보면 소박하며 상식에 가까운 목표를 세우고 있다.

그는 성인이 돼 박제화된 가짜 공자(假孔子)가 아니라 농담하거나 화를 내며 숨을 쉬었던 진짜 공자(眞孔子)를 만나려고 했다. 리링은 5·4운동 시기에“공자의 가게를 부수자(打倒孔家店)”는 구호로 진행됐던 유교 전통의 부정을, 전통 문화의 단절이 아니라 우상화의 타파라고 본다. 5·4운동을 전통과의 결별로 해석하는 것은 홍콩과 대만 학자들의 주장으로 본다. 리링의 작업은 『논어』에서 제자들이 한 스승의 성인화 기도로부터 봉건 왕조의 지배자들의 우상화와 송명 성리학자들의 도통론을 벗어나 5·4운동의 시각으로 공자를 조망하는 것이었다. 리링의 작업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오늘날 공자 열풍의 상황을 맞이해서 출토 자료의 발굴 등 현대의 연구 성과를 보완하면서 5·4 운동 시기에 했던 일을 재연하는 것이 된다.

리링의 해체 작업을 비판적으로 살펴보자. 첫째, 논점의 축소다. 현대의 공자 열풍은 믿음과 이상이 사라진 시대에『논어』로 류사오치의「공산당원의 수양을 논함」과 마오쩌둥의「인민을 위해 일하기」등을 대체해 도덕을 재건하는 등 궁극적으로“공자가 위로도 5천 년을 관여했으며, 아래로도 5천 년을 관여할 것”이라는 전망과 맞닿아 있다. 공자가 현대 중국 만들기의 핵심 가치로 간주되고 있다. 이를 리링은 21세기판 공자의 개인숭배로 비판하지만 현대 중국 만들기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그는 공자가 미래의 가치가“아니다!”라고 말할 뿐 5·4운동에서‘신중국’을 기획했던 것처럼 현대 신중국의 전망을 내놓지 않는다.

또 공자의 성인화가 선민의식으로 이어져 배제적 민족주의 양상을 드러내는 측면을 간과했다. 둘째, 해체의 특징이다. 리링은 루쉰, 자오지빈 등의 성과를 인용하고 있다. 자오지빈은『논어』의 人이 노예주, 民이 노예를 가리킨다고 주장했는데, 리링은 이를 통해 공자가 대중 노선이 아니라 엘리트 입장을 반영했다고 보았다. 또「陽貨」25절에“여자와 소인은 다루기 어렵다”라는 말이 있다. 근래 사람들은 이로 인해 성인 공자의 이미지가 훼손된다며 여자를‘사내아이, 종’, 소인을‘어린아이’로 변명하자, 리링은 이를 공자의 미화이자 신화화이며 곡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처럼 리링의『논어』읽기는 이미 차려놓은 밥상 위에 출토 자료의 소개, 제자백가와의 크로스 체크, 문화 혁명의 기억을 곁들이는 것 이외에 그만의 특징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반면에 한국에서 유교와 페미니즘 연구는 가부장제와 남성우월주의 비판만이 아니라 보살핌의 윤리로 논의로 커졌고, 아사노 유이치는『공자신화』(1997)에서 유학(공자)의 종교화(교주화)를 세세하게 밝혔고, 젠슨(L. Jensen)은『유교 만들기: 중국 전통과 보편 문명』(1997)에서 공자(유교)의 친숙한 이미지가 16~17세기 서양 예수회 선교사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점을 꼼꼼하게 증명했다.

셋째, 『논어』읽기의 구태와 신태의 혼재이다. 「子路」22절에“남쪽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는 말에‘사람이더라도 항심이 없으면 무의조차 될 수 없다’고 한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리링은 출토 자료에 南人이 宋人으로 돼 있고 宋이 魯의 서남쪽에 있다는 사실을 통해서 그간 풀리지 않았던 남인의 정체를 밝혀냈다. 또 그는 巫醫를 방술이 아니라 점술의 卜筮로 보고서, 이를 송나라의 점치는 풍습으로 연결 짓는다. 이는 기존『논어』연구에서 쉽게 듣지 못한 소리이다.

리링은 더 나아간다. 송은 망국의 후예로 고집이 세고 꾸준히 관찰해야 점을 칠 수 있다. 이 주장을 그는 1) 춘추시대의 송 양공이 먼저 진을 친 상태에서 강을 건너는 초를 공격하지 않아 패배했던 일과 2) 동시대의 성문지기가 공자를‘안 되는 줄 알면서도 무엇이든 해보려고 하는 사람’으로 평가한 대목과 연결시키고 있다. 그는 마오쩌둥의 말을 빌려 양공을‘얼간이 같은 인의도덕’을 고수한 중국의 돈키호테로, 공자를 고집스런 조상의 성격을 이어받은 돈키호테로 간주했다.

‘차려진 밥상 위에’올라간 해체의 특징

마오쩌둥은「지구전을 논하다」(1938)에서 일본과 싸우면 반드시 진다는 노선을 비판하고 무기보다 인력의 중요성을 내세우며 유격전과 지구전을 펼칠 것을 주장했다. 그는 적을 착각하게 하고 불의의 작전을 펼쳐야지 이길 수 있는데, 유리한 상황마저 이용하지 않은 양공을 비판했다.

또 그는 약한 전력으로 강한 적을 이기려면 자각적 능동성과 주동성, 기민성, 계획성이 결정적 작용을 한다고 강조했다. 불가능을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분투하는 공자는 자각적 능동성에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양공은 구시대의 막차에서 내리지 못해 패배를 초래했을지언정 땅을 팔지 않았던 아메리카 인디언처럼 조롱을 받을 만한 하찮은 위인은 아니었다. 그의『논어』읽기에는 구시대의 광풍이 남아있다.

리링은 『논어』독법에서 말했듯 거대담론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갈 곳이 없어 고독을 벗했던 공자의 심태를 느끼고자 했다. 그 결과『논어』는 가치와 해석을 두고 치열하게 일합을 겨루는 논쟁의 장이 아니라 비오는 날 조용히 창가의 책상에 앉아서 읽는 晩明小品으로 변신했다. 이제『논어』는 사상서가 아니라 문학서인 것이다.

신정근 성균관대·동양철학과
서울대에서 박사를 했다. 한국철학회 연구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저역서로는『논어의 숲 공자의 그늘』, 『어느 철학자의 행복한 고생학』,『공자신화』(역서)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