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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보·사상·통념을 해체했더니 '인간 공자'가 보였다
계보·사상·통념을 해체했더니 '인간 공자'가 보였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1.07.29 16: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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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 리링 지음, 『논어, 세 번 찢다』(황종원 옮김, 글항아리, 2011.7)

 

중국 베이징대에서 고고학, 고문헌학, 고문학자학 등 이른바 '三古學'을 가르치고 있는 리링(李零, 63세) 교수의 도발적 저작이 번역됐다. 『논어, 세 번 찢다』(황종원 옮김, 글항아리, 2011.7)가 바로 그 책이다. 공자를 성인의 반열에서 끌어내리고, 그를 자연인, 고뇌하는 지식인으로 세우고, 바로 그 고뇌의 순간에서 '논어'라는 독창적 사유가 피어올랐음을 과감하게 주장했다.

 

  책의 원제는 '論語縱橫讀'으로, 논어를 좀 더 자유롭게 '종횡'으로 과감하게 읽을 것을 권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법에는 전제가 있게 마련이다. 공자를 '성인'으로 평가하고 그의 사상을 견고한 위치에 올려놓고 이를 해석해왔던 주류 학계의 접근을 따르지 않는 저자는, 공자를 공자 스스로가 말했던 것처럼 '집잃은 개'(喪家狗)로 풀어놓으려고 한다. 즉, 저자 리링은 공자는 성인이 아니라, 당대를 고민하고 고뇌했던 지식인으로 인식하고 있다. 저자의 이런 생각이 극명하게 나타난 저술이 곧 번역될 『喪家狗』(글항아리, 근간 예정)다. 이 책은 2006년 출간되자 마자 '논쟁'을 야기했다. 주류 학계의 비판이 쏟아졌던 것이다.

 

베이징대 중문과에서 고문헌학 등을 강의하고 있는 리링 교수.
'삼고학'을 가르치기 때문일까. 저자는 2007년 공자가 걸었던 수천년 전의 그 6천 킬로미터 길을 직접 따라갔다. 그는 이미 마오쩌둥이 일으킨 문화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8년 동안 '下方'을 경험한 바 있다. 이런 경험들이 녹아든 것일까. 그는 "나의 연구는 지난 20여 년 동안 중국 사회에 불어닥친 복고의 광풍을, 거의 미친 듯이 보이는 이 기이한 현상을 겨냥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복고의 광풍'에 대해 '아니다'라고 용기 있게 말하면서, 그 대신 '원전을 읽는 것'을 강조했다. 『喪家狗』와 『논어, 세 번 찢다』는 이와 같은 맥락에 서 있는 책이다.

 

'상가구'논쟁의 주역이 그려낸 공자의 얼굴 

저자가 말한 '복고의 광풍'은 1980년대 말부터 불기 시작한 중국에서의 '공자 존숭'을 가리킨다. 이것이 중국 정부의 지원 아래 '문화적 이데올로기화'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중국 지식인 사회에 불기 시작한 '국가주의' 현상도 이와 무관치 않다. 요약하자면, 공자는 성인이 아니었지만, 후대 정치가 그의 사상을 이데올로기화 해 통치 수단으로 삼았으며, 이것이 오늘날 중국에서 다시 부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무수한 비판의 화살을 맞은 이유이기도 하다.

  『논어, 세 번 찢다』는 前作 『喪家狗』의 속편이다. 저자는 통독보다는 '정독'을 권한다. 그 스스로 "논어를 해체해 읽었다"라고 말한다. 인물을 논하면서 縱으로 읽고, 사상을 논하면서 橫으로 읽은 뒤, 聖典으로서의 이미지를 해체했다. '속편'이라고 말한 것처럼, 이 책은 앞의 저작과 공통된 주제를 갖고 있다. 성인 개념의 변화를 논한 대목이다. "첫째는 공자가 왜 자신이 성인이라는 점을 부인했는지, 자공이 왜 그를 성인으로 세우려 했는지를 논한다. 둘째는 道統의 오류를 논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했다. "공자·안연의 도에서 공맹의 도에 이르기까지, 다시 공맹의 도에서 공자·주자의 도에 이르기까지, 四配와 열두 철인이 어떻게 날조됐는지를 논하겠다."

  그는 '날조'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뭔가 또 다른 진면목이 있다는 지적이다. 리링이 "『상가구』는 결코 공자를 비판한 책이 아니었다. 오히려 고고학, 고문헌학 등을 바탕으로 공자의 진면목을 보여주려 애쓴 책"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또 "성인의 이미지를 벗겨내야 진짜 공자가 보인다"고 단언하는 것은 모두 그가 '聖典化된 논어'를 해체하고 '있는 그대로의 논어'를 얼마나 강조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리링은 "공자의 사상은 체계적이지만 논어는 체계적이지 않다"며 "논어를 읽고 그 안에 들어있는 공자의 사상을 하나의 지식으로 축적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하나하나 해체해서 재배열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를 몇 가지 '독법'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논어를 해체해서 읽어야 하는 이유

  첫째, 『논어』는 子書니 자서로 읽어라. 편안한 마음으로 읽으라는 것이 그의 첫 메시지다. "정식 경전으로 볼 것만도 아니고 부들부들 떨 만큼 감동적인 것만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읽지 않음으로 인해 생겨나는 숭배하는 마음은 한 구석에 버려두는 것이 좋다."

  둘째, 『논어』 속 이야기는 주로 학생들에게 들려주기 위한 것, 대상을 착각하지 말라. 저자는 공자의 가르침이 주로 도덕적인 측면에 관한 것이며, "공자는 솔직해 엘리트의 입장이면 엘리트의 입장이지, 대중과 친한 척 할 게 무엇이냐고 생각했던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때, 대상이 누군지를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어리석은 사람들처럼 절에 들어가 향을 피우고 혼잣말을 하며 '오버'하다가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답을 찾아줘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한다. 이 말 뜻은 "공자가 무엇을 말했는지 듣지 않고, 말하지 않은 것도 그의 입을 빌어 우리를 대신해 말하게 해서는 안 된다"라는 것이다.

  셋째, 『논어』는 길이가 길고 내용에 두서가 없으니 읽을 때 인내심을 가져라. 『논어』는 읽기 쉬운 책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저자는 결코 읽기 쉬운 책이 아니라고 말한다. 내용도 길고, 두서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연 인내가 필요할 수밖에.

  넷째, 『논어』는 어록체이니, 흐트러뜨려 읽어라. 저자는 『논어』가 어록체로 쓰였다고 지적한다. 고문헌학자답게 그는 이 책이 어떻게 '엮였을까'하는 문제도 고심하고 있다. 그는 『논어』의 탄생을 세 가지 방향에서 추측한다. 하나는 수시로 듣고 수시로 기록해 놓았을 것. 이 경우 생생하고 원래의 맛이 간직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의 가능성은 이미 정리된 장편에서 뽑아낸, 명언 발췌에 해당될 수 있다는 것. 그밖에 또 하나의 가능성은 앞의 두 가지 상황이 모두 존재하는 '칵테일'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흐트러뜨려 읽는다'는 것은, 논어가 두서가 없는 이상, 그것을 해체해서 읽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의미이다.

  저자는 곳곳에 『논어』를 읽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앞서 주장한 네 가지 독법이 큰 틀에서 접근하는 길이라면, 세부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문제는 제쳐놓아도 무방하다'는 주장도 펼치고 있다. "『논어』에 나오는 말이 모두 정수인 것은 아니다. 많은 것들은 다 평범한 말로 억지로 깊은 의미를 구할 필요는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기왕의『논어』를 연구한 책을 길라잡이로 활용하는 것도 권유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리링의『논어』읽기에서 특징적인 것은, 그 스스로가 '금기사항'을 설정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는 물론 논어를 이데올로기화하는 것을 바보 같은 짓이라고 비난한다. "『논어』를 읽다보면 누구나 공자가 고독했으며 고뇌에 젖어 있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데 많은 이들은 그를 끌어다 심리치료사로 만드니, 이 어찌 가소롭지 않은가?" 그가 역사적으로 공자에게 접근했던 세 가지 시도들, 정치적 정통성을 강조하는 것(한나라 유자들이 취한 방법), 도통을 강조하는 것(송나라 유자들이 취한 방법), 유학을 종교로 삼는 것(근대 이후 기독교의 자극을 받아 형성된 구세설) 모두를 "이 세 가지는 모두 이데올로기로 공자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공자를 해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니 결국, 저자의 독법은 이 세 가지 '공자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일 수밖에 없다. 그가 "논어에 있는 피가 흐르고 살이 붙어 있는 살아있는 공자가 진짜 공자"라며 "사당 안에 있는 빚어지고 조각된,향불을 피우고 머리를 조아리기 위한 공자는 가짜 공자"라고 역설하는 것이 조금은 이해되는 대목이다.

  이번 번역은 베이징대에서 박사를 하고 한국어·문화학과 부교수로 있는 황종원 박사가 맡았다. 552쪽으로 제법 두툼하며, 한국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원저의 구성과 다른 편집을 채택했다. 값 25,000원. 리링의 책을 번역, 출간한 출판사측은 이후 리링 저작선을 계속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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