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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돌아갈래, 가족이란 휴양지로!
나 돌아갈래, 가족이란 휴양지로!
  • 맹문재 안양대·국문학
  • 승인 2011.07.22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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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_김 교수의 특별한 여름나기

1억이라니…. 김 교수는 그로기 상태로 웃다가 창밖을 내다본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며칠째 내리고 있는데, 기상청에서는 예년에 비해 장마가 일찍 시작됐다고 했다. 장마가 끝나고 나면 사상 최악의 폭염이 예상된다고도 했다.

김 교수는 내리는 비를 바라보지만 시원함을 못 느낀다. 오히려 제대로 걸음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잔뜩 짐을 진 것 같은 무거움을 느낀다. 김 교수는 요즘 들어 자주 강펀치를 맞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세 번이나… 방금 전엔 결정타였다. 1억이라니….

아침에 출근해서 컴퓨터를 열어보니 한 학생이 이메일을 보내왔다. 자신은 결석을 한 번도 안했는데 A학점이 아니라 B+ 학점이 나와 이해할 수 없고, 더욱이 함께 강의를 들은 친구보다 잘한 것 같은데 왜 차이가 나는지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솔직한 답변을 부탁한다고 끝인사로 남겼다.

솔직한 답변? 부정을 저질렀으니 솔직하게 고백하라는 말이 아닌가. 김 교수는 예의 없는 학생의 태도에 할 말을 잃었다. 또한 공부하는 것보다 출석 여부를 학점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니, 학교를 출석하러 다닌단 말인가. 더욱이 친구의 학점을 시기할 정도로 경쟁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니, 언제부터 친구의 학점조차 질투하는 대학생들이 됐단 말인가. 김교수는 안타까움이며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성적 처리로 한 방 맞고는…

물론 성적 이의를 신청한 학생의 경우처럼 수준이 안 돼도 상대적인 기준으로 A학점을 줄 수 있다. 그렇지만 30%의 학생에게만 A학점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학교에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성적순에 들어야 가능하다. 그 학생은 아쉽게도 들지 못한 것이다. 그에 비해 그 학생의 친구는 출석부터 기말 시험까지는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기말 보고서를 좀 더 공들여 썼고 주제 의식도 참신해 간발의 차이로 A학점의 대열에 들어설 수 있었다. 따라서 성적 이의를 신청한 학생에게 사실을 잘 얘기해서 오해를 풀어줘야 하는데,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인가. 김 교수는 제대로 한 방 맞았다고 생각했다.

김 교수는 오후 1시 30분부터 열린 테스크 포스 팀에서 또 한 방 맞았다. 학교에서는 대학알리미에 공시되는 주요 지표를 개선하고 언론사의 대학 평가에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학기 초부터 업적평가개선위원회라는 팀을 구성해 운영해오고 있는데, 방학 동안에도 매주 목요일에 소집하고 있다. 김 교수는 교수협의회에서 선임된 직급별 대표 중에서 조교수의 대표로 참석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취업률, 전임교원 확보율, 재학생 충원율, 전임 교원당 1인당 논문 실적, 신입생 충원율, 중도 탈락률 등에 대한 개선 방안에서 학교 측과 입장이 달라 부딪힐 수밖에 없다. 학교 측에서는 개선안을 가능한 한 밀어붙이려고 하는 것이다.

급기야 학교 측에서는 그동안 시행해오던 호봉제 임금을 연봉제로 바꾸겠다고 나섰다. 이유는 학교의 재정 상황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소규모 지방에 위치하고 있는 김 교수의 학교가 서울에 있는 대학들에 비해 재정 상태가 좋을 리 없고, 그에 따라 임금을 적게 받을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있었지만, 학교의 재정이 심각하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듣자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힘들게 자리를 잡았는데 임금을 제대로 받을 수 없고 정년 보장도 되지 않을 수 있다니… 김 교수는 불안감을 넘어 허망했다.

실제로 인구수의 감소로 인해 김 교수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 같은 지방 사립대학들은 신입생을 충원하기가 쉽지 않다. 입학한 학생들도 학업을 포기하거나 수도권에 있는 학교로 옮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중도 탈락률을 줄이기도 어렵다. 따라서 재정 형편이 어렵다는 학교 측의 주장이 전적으로 꾸며낸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더욱이 등록금을 반값으로 낮추는 문제가 정치권은 물론이고 사회의 이슈가 되고 있기에 학교 측은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당장 다음 학기에 많은 학생들이 반값 등록금이 실현될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 휴학할 것이라는 얘기가 돌고 있다.

급여는 줄어들 것 같은데

뿐만 아니라 이러저러한 상황으로 학교의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등록금과 적립금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대상으로 선정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학자금 대출제한 대학이나 경영부실 대학으로 지정받지 않을까도 걱정하고 있다. 그리하여 학교에서는 예산을 많이 삭감했고 사용 내역도 꼼꼼하게 따지고 있다. 급기야 학기말에 해오던 교직원 연수도 올해는 취소했다.

학교에서 제시한 연봉제에 따르면 개인별 업적을 S등급부터 A, B, C 등급으로 평가해 임금을 차등 지급하고, 학과별 평가도 함께하겠다는 것이다. 취업률이나 중도탈락률이나 장학금 유치액 등을 평가해 하위 학과는 정원을 감원하고 상위 학과는 정원을 증원하고 임금에도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S등급에 속하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임금이 깎이게 되는 구조인 셈이다. 따라서 교협 대표자들은 물론 김 교수는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신입생 충원이 점점 어렵고 학생들의 중도탈락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무조건 반대만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김 교수는 실망과 불안을 잔뜩 안고 연구실로 돌아왔다. 학교가 어렵다는 말에 책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논문도 써야 하고, 학생들 상담 일지도 정리해야 하고, 프로젝트도 신청해야 하는데 기운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강펀치를 또 한 방 맞은 것이다.

직장 때문에 서울에 있는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집 주인이 재계약을 하려면 1억 원을 올려달라는 것이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1억 원이라는 말이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화가 났다. 2억 원인 전셋집이 어떻게 이태 만에 배로 올라갈 수 있단 말인가. 그렇지만 텔레비전을 비롯한 각종 저널에서 전세 대란 뉴스를 들어왔기 때문에 이내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어떻게 1억 원을 구할 수 있단 말인가. 전세 대출을 이미 받았으므로 추가로 받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설령 가능하다고 할지라도 1억 원의 이자를 도저히 갚아나갈 수 없었다. 김 교수는 당장 가족들을 데리고 내려오고 싶지만 아내의 직장이며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들의 전학 문제가 단순한 일이 아니지 않는가.

비는 하염없이 내리는데

김 교수는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장마도 지루하지만, 여름 방학이 훨씬 지루하다. 테스크포스 팀 논의가 빨리 끝나야 할 텐데, 연구 논문을 써야 하는데, 입학사정관 일도 해야 하는데, 다음 학기 강의 준비도 해야 하는데, 집 문제도 해결해야 하는데…. 정말 마음 놓고 여름방학을 보내고 싶다. 세계의 명작들이며 추리소설이며 만화책을 마음껏 읽고,시원한 냉면이며 막국수도 만들어 먹고, 삼계탕으로 영양 보충도 하고, 시원한 동굴 탐험도 하고,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시도 한 수 읊고, 기차여행도 하고….

김 교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무래도 집에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동안 너무 바빠 아내와 아이들을 3주째 못 보고 있다. 가장 시원하게 여름을 날 수 있는 휴양지가 바로 가족들이 있는 집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김 교수는 기차역으로 가기 위해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맹문재 안양대·국문학
1991년 <문학정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산문집으로『좋은 의자 하나』, 시집으로『먼 길을 움직인다』, 『물고기에게 배우다』, 『책이 무거운 이유』등이 있다. 중앙대에서 박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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