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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_ 敎員이기 이전에 남편이자 아버지!
원로칼럼_ 敎員이기 이전에 남편이자 아버지!
  • 김윤희 경희대 명예교수·교육학
  • 승인 2011.07.18 2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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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희 경희대 명예교수·간호대학
“아버지! 저는 아버지가 저에게 얼마나 상처를 줬는지 아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나와 함께 보낸 시간보다는 나를 혼낸 시간이 더 많았죠. 아버지가 만약 나와 조금만 더 시간을 함께 보내 줄 수 있었더라면 아마 나는 아버지의 구타와 상처까지도 견뎌 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난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버지의 사랑을 무척 원했었습니다. 만약 아버지가 나와 조금만이라도 놀아 줬더라면, 만약 아버지가 나를 야구 경기장에 좀 데려가 줬더라면, 만약 아버지가 단 한번이라도 날 사랑한다고 말해 줬더라면, 누가 무어라 해도 난 우뚝 설 수 있었을 겁니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가 내게 조금만이라도 관심을 가져 주길 간절히, 간절히 바랐습니다.”

위의 글은 몇 년 전 소위 문제아로 낙인찍힌 한 고등학교학생을 상담하면서 아버지로부터 받은 심리적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그 학생이 아버지에게 썼던 글의 일부 내용이다. 나는 많은 상담경험을 통해, 그리고 정신적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는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아버지에게서 받은 심리적 상처로 억압된 분노와 적개감정이 깊게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주는 것이리라.

나는 얼마 전 40평생 이상을 함께 살아온 아내와 자식 간의 인연을 끊고자 이혼을 신청한 70대 초반 퇴임교원의 황혼이혼 상담을 하면서 문제의 아이 뒤에 문제의 부모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가족을 떠나려는 노년의 퇴임교원에게 한없는 회의감을 느꼈다.

평생을 자신의 직업적 성취와 승진, 명예를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동료나 친구들과 잘 지내왔기 때문에 타인들의 눈에는 모범적인 지도자로 평가됐다. 가정 내에서의 모습도 근엄하고 완벽한 아버지, 하늘같은 남편과 아버지였기에 아이들은 늘 가까이 하기가 어려웠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것조차도 어려웠다. 하는 일마다 아버지의 마음에 안 들다 보니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했다. 더욱이 간간이 있었던 아버지의 외도는 부부간의 불신과 갈등으로 이어져 다툼과 싸움이 잦아졌다. 용서와 화해 없이 반복되는 상호 비난과 경멸, 드디어는 담쌓기 단계까지 확대돼 한 집안에서 두집 살림을 하기에 이르렀다.

하나의 가정이라는 지붕을 떠받히고 있는 두 개의 튼튼한 기둥(아빠기둥, 엄마기둥) 사이에서 건강한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행복하게 살아가야 할 자식들이다. 튼튼치 못한 양쪽의 기둥 사이에서 흔들리는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불안과 우울로 어린 시절을 보내 온 아이들의 미래는 어떠할까. 이제 성장한 아이들은 정신장애, 결혼의 실패, 경제적 무능력 등으로 행복한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신은 교원이기 이전에 한 여자의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잊으셨나요.

자식은 사랑의 산물, 정성의 산물, 희망의 산물이라고 했다. 사랑의 산물로 낳은 자식을 온갖 정성을 다해 양육할 때 중년이 되면 부모의 희망이 될 수 있으리라. 따라서 중년의 얼굴이 밝고 좋으면 자식이 제대로 성장했음을, 얼굴이 어둡고 밝지 못하면 자식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한 옛사람들의 말이 맞는 것 같다.

결국 아이들의 문제 행동은 어쩌면 아이가 가지고 있는 내면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도움을 요청하는 일종의 SOS 신호일 수 있다. 위에서 소개했던 한 고등학교 학생의 글도 비록 나타난 행위는 폭력이었지만 이러한 행위도 아버지에 대한 애정결핍과 관심 받고 싶은 욕구불만으로 인해 억압돼 온 분노를 해결하고자 나타난 SOS신호일 수도 있을 것이다.

70대 초반 퇴임교수의 이혼은 조기의 부모 상실로 아버지로부터 애정을 받아보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 또는 남편으로서의 역할모델 부재로 인해 야기된 무의식적 학습결여의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분명히 행복한 부부가 행복한 아이를 만든다는 원리는 잘 인식하고 있지만 우리가 경험 하였듯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는 것 같다.

행복한 부부, 행복한 아이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남을 가르치는 교원이기 이전에 한가정의 남편이자 아버지가 돼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깊게 생각해 봐야겠다.


김윤희 경희대 명예교수ㆍ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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