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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대학 본연의 가치 추구하겠다”
“외부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대학 본연의 가치 추구하겠다”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1.07.18 2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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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 ‘대학문화 패러다임’ 바꾸려는 이건 서울시립대 총장

서울시립대는 자타가 공인하는 ‘도시학의 메카’다. 인문학과 도시과학의 만남 등 도시과학을 넘어서 새로운 분야를 창조해 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잘가르치는 대학’으로도 명성을 떨치고 있다. 지난해에 선정된 학부교육 선진화 선도대학(ACE) 가운데 유일한 국ㆍ공립대학이 서울시립대다.

지난 5월 취임한 이건 서울시립대 제7대 총장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평가와 경쟁에 내몰린 대학들에게 제대로 된 대학문화를 창조해 보이겠다”는 것이다. ‘사람을 세우는 대학, 세상을 밝히는 대학’이란 비전은 그래서 나왔다. “새로운 대학문화와 패러다임을 통해 21세기 우리나라 대학들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선도적 역할을 해 보이겠다”는 포부를 밝힌 이 총장을 지난 12일 만났다.

•일시 : 2011년 7월 12일 오후 3시
•장소 : 서울시립대 총장실
•대담 :최영진 <교수신문> 주간(중앙대 정치학)
•정리·사진: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우리 사회가 잊고 있었던 대학 본연의 책무는 무엇인가. ”이건 서울시립대 총장이 제7대 총장 선거 출마를 권유받고 고민한 것은 바로 ‘현재 우리나라 대학의 모습은 어떠한가’다. 원론적인 질문처럼 보이지만 “대학의 교육철학이 바로 정립돼야 할 때”라고 생각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 총장은 “지난 15~20년 동안 우리나라 대학이 스스로 교육철학을 변질시켜 왔다”고 생각한다.

 “학생은 취업, 교수는 연구실적, 대학도 신문에 보도되는 평가만 추구한다. 그것에만 집중하다 보니 대학이 해야 하는 일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도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에 집중하기 어렵다. 대학 또한 평가지표와 관련 있는 부분만 신경을 쓰게 된다. 이런 현상이 10년 이상 지속되다 보니 학생도, 교수도, 대학도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가 돼 버렸다. 그동안 취업과 외부평가 등에 끌려 다녔지만 이런 상황에 회의를 갖는 교수들이 많았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추구해야 할지 이야기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 총장이 취임사에서 밝힌 ‘사람을 세우는 대학, 세상을 밝히는 대학’은 그렇게 해서 나왔다. “‘사람을 세우는 대학’은 우리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이 올곧은 사람, 사회를 걱정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연구로써 ‘세상을 밝히는 대학’을 만들고자 한다. 공익성을 생각하고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대학을 만들겠다는 의미다. 내가 왜 공부를 하고, 왜 연구를 하는지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보면서 삶의 가치를 찾는 것이다. 평가와 경쟁에 내몰린 대학에 제대로 된 대학문화를 창조해 보이고자 한다.”

왜 공부하고, 왜 연구하는지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사람을 세우는 대학’의 출발점은 역시 ‘교육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서울시립대로 오기 전 동국대에서 연구부처장과 교육개혁추진단 부단장을 맡아 대학개혁을 이끌 때부터 고민해 왔던 문제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공부할 때와 미국 유학 가서 배웠던 때를 비교해 보니 우리는 지식을 전달하려 했던 것 같고, 미국은 생각하는 방법을 훈련시키려 했던 차이가 있었다. ‘대학다운 교육’이라고 하면 어폐가 있으나 학생들이 어떤 것을 배운다기보다 무엇을 알고자 하고, 생각하고, 경쟁을 경쟁답게 하면서 남들 속에서 나의 위치를 찾아가고, 이런 것이 대학교육이 아닌가 생각한다.”

‘사람을 세우는 대학’이라는 비전을 교육현장에서 구현하기 위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교과과정을 개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런 정책을 수업으로 반영할 젊은 교수들을 키우는 것이다. 20여명의 교수가 참여해 교육과정 개편뿐 아니라 제도, 교육 내용, 방법 등을 논의하고 있다. “교수들은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따르지 않는다. 우리 대학 교수가 300명이 조금 넘는데, 선거과정에서 만나보니 적극적으로 교육을 고민하는 분들이 100명은 넘는 것 같다. 그런데 마음을 움직이는 중요한 도구는 열정이 살아 움직이도록 해 주는 것이다. 그 분들이 생각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어떻게 시스템으로 만들 것인가가 과제다. 교육과정, 교육방법 등을 통해 만들어 보려고 시도하고 있다.”

교양교육 혁신도 이 총장이 풀어야 할 과제 가운데 하나다. “전공교육과 교양교육이 완전히 1대 1은 아니지만 4대 6 정도로 가야 한다고 본다. 교양적 훈련을 통해 사고의 방법, 자기 자신을 찾아나가는 방법, 이런 훈련이 필요하다. 대학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들을 교양교육에서 하고, 전공교육에서는 그것을 토대로 한 지적 훈련, 전문적 지식을 토대로 한 훈련들이 이뤄져야 한다. 전공교육과 교양교육을 얼마나 유기적으로 할 것인가, 이것이 추구하는 기본적인 형태다.”

이 총장이 이러한 교육철학을 펼쳐나가는 데에는 지난해에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선정된 학부교육 선진화 선도대학(ACE) 지원 사업도 든든한 힘이 되고 있다. ACE사업에 선정되면서 설립한 교육인증원과 학사교육원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교육모델 개발을 위한 여러 시도들을 하고 있다. 특히 교양교직부와 협력하면서 단순히 강의를 듣는 수업이 아니라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수업을 만들어 가고 있다.

‘세상을 밝히는 대학’역시 현장에서 구현하기에는 만만한 과제가 아니다. “중소규모 대학이고, 공립대학이라 시도할 수 있는 면도 있다. 눈에 띄는 성과에 집착하기보다 공익적인 일을 할 수 있고 교수들 또한 공공성이나 공익에 대한 마음이 크다”라고는 하지만 교수들의 가치 기준을‘사람을 세우는 대학’으로 가져가면서 동시에 연구 경쟁력 또한 높여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연구결과를 양적으로 평가하고 그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해 주는 시스템이었다. 말하자면 연구의 목적이 금전적 보상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나한테 의미 있는 연구를 해 보자는 취지다. 승진 점수나 평가 지수를 충족시키기 위해 실적에 집착하는 연구가 아니라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연구풍토를 조성해 나가겠다. 아직은 아이디어 수준이긴 한데, 어떤 교수가 연구를 잘 하면 그 교수뿐 아니라 소속된 학과에 더 많은 지원을 해 주는 것도 한 방안이 아닌가 싶다.”

이 총장이 생각하고 있는 교육철학은 결국 “외부의 평가에 끌려 다니지 않고 대학 본연의 가치를 추구하겠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갈수록 외부평가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우리 대학 현실에서 어려운 숙제를 스스로 떠안은 셈이다. “끝까지 여유로운 총장, 늘 웃는 총장이 되고 싶다. 우리가 펴 왔던 ‘교육 명문’이라는 전통이 계속 이어져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토대만 마련하고 잊혀도 그만이다. 10년 뒤에는 서울시립대에서 하는 것을 우리 대학도 배우자, 서울시립대처럼 하면 된다, 이런 토대를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서울시립대만이 아니라 한국의 대학교육을 위해서 그런 몸부림이 있어야 한다. 그런 시도를 해 보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성과에 연연하지 않으면서 가면 좋겠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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