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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은 ‘자린고비형’ 상인들의 치밀한 시선에 있었다
비밀은 ‘자린고비형’ 상인들의 치밀한 시선에 있었다
  •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미술이론
  • 승인 2011.07.13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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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미술은 왜 그렇게 화려했을까

메디치 같은 전설적인 부자들과, 그들의 후원을 받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같은 천재적인 화가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화려하고 고급스럽지만 엄청나게 많은 수의 명작들. 그러나 르네상스를 부와 천재의 시대로, 르네상스 미술을 명작으로 곧장 연결시키는 도식이 너무 일방적인 것은 아닐까?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이 질문의 주인공이다. 양 교수는 신간『商人과 美術-서양미술의 갑작스런 고급화에 하여』(사회평론사, 2011.7)에서 르네상스 미술을 둘러싼 아우라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르네상스 시대는 알고 있던 것처럼 그렇게 부유하지 않았을 수 있고, 부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미술에 많은 돈을 쏟아 붓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며, 이 모든 것들을 인문주의의 부활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 소비문화의 기원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할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다 빈치, 지네브라 데 벤치의 초상화, 1476, 워싱턴 DC, 내셔널 갤러리.

르네상스가 우리에게 가깝게 다가와 있다. ‘한강 르네상스’,‘철도 르네상스’, ‘골목길 르네상스’, ‘호텔’, ‘빵집’, ‘웨딩홀’등 르네상스는 공공연한 정책 선전 구호이자 상호명의 대명사가 돼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르네상스(Renaissance)’처럼 발음하기도 쉽지 않고 쓰기도 어려운 전문 학술용어가 왜 그렇게 오늘날 한국에서 광범위하게 유포되는 것일까. 그 용어의 어떤 선택적 매력이 우리를 유혹하는 것일까.

 

미술사와 경제사의 접목

르네상스 열풍이 우리보다 서구에서 먼저 불었다는 사실은 앞선 질문을 좀 더 큰 그림 하에서 고민하게 만든다. 부활과 재생을 뜻하는 프랑스어 르네상스가 서양 근대 역사의 초기단계를 부르는 대명사로 자리 잡은 것은 역사학의 성립기인 19세기였다. 기본적으로는 고대 이래로 잊혀진 문화예술 활동이 15세기를 기점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뜻하기 위해 도입한 용어지만 이 용어의 궁극적인 목적은 서양 근대 문화의 신격화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용어가 만들어지던 시기가 제국주의가 극심했던 시기와 정확히 일치하며 이 용어의 基底에는 실제로 부활과 재생이라는 의미보다는 개성, 과학성, 합리성 등 서구의 근대적 가치의 탄생을 기념하려는 서구의 자부심이 전제되고 있다. 르네상스 문화 예술 역사에 쏟아진 찬사와 폭발적 연구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21세기 한국이 르네상스에 열광하기 오래 전부터 이미 서구에서 르네상스에 대한 광적인 열풍이 불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그러한 서구의 유행을 이제 우리가 안정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책『商人과 美術』은 정확히 르네상스에 대한 논의이자 그것에 대한 냉철한 반성이다. 르네상스 문화의 중핵이라 할 수 있는 미술 영역을 중심으로 이 시기 서구 역사에 대한 재인식을 요구하고 있다. 국내외적으로 난무하는 르네상스 열풍 속에서 이 역사시기 서구문화의 진실을 진지하게 담아보려고 시도했다. 감히 과장한다면 기존의 저술에 비해 상당히 급진적이면서도 나름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편 새로운 시각을 담기 위해 개방적이었다고 자술할 수 있다.

새로운 학설을 위해 새로운 자료를 도입했는데, 계약서나 물품 구매서 같은 여전히 신선한 사료와 그간 별로 학술적 자료로 인정받지 않은 엑스레이 사진이나 안료분석 데이터를 과감하게 수용했다. 이 책은 그간 학계에 발표된 학술논문을 토대로 재집필한 결과이며 일부는 새롭게 추가했다. 책의 부제목이‘서양미술의 갑작스런 고급화에 관하여’이기 때문에 출판사에 최대한‘고급스럽게’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덕분에 편집기간이 상당히 길어지게 됐다.

이 책이 신선하고 도발적이라면 그 첫 번째 질문이 서양 미술의 질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것의 양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서양 미술을 현지에서 접한 사람은 누구나 질보다도 양에 대해 놀라움을 표할 것이다. 1300년을 기점으로 서구는 놀라울 정도로 미술품을 쏟아내는데 이에 대한 고민은 그간 미술사 연구에서 거의 배제돼 있었다. 이 문제는 다행히 경제사학에서 미술품을 다루는 연구자인 리차드 골드스웨이트(Richard Goldthwaite)의 연구결과를 참조하면서 갈피를 잡을 수 있었다.

미술사와 경제사의 접목을 시도한 것이다. 골드스웨이트의 훌륭한 경제사적 연구업적이 서구 학계의 학파간 경쟁 때문에 묻혀지고 있었지만 서구의 학계 권력에서 자유로운 나로서는 그것을 선입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물론 르네상스 시기 미술 생산의 폭발적 증가를 골드스웨이트는 자본주의 소비사회의 시원으로 예찬하고 있으나 나는 그것을 서구 자본의‘유동적 성격의 강화’로 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도 흑사병을 필두로 연속된 대재앙이 서구 지배층을 좀더 미술에 친화적으로 변질시켰다고 봤다.

특히 상업활동을 배경으로 성장한 신흥 부르주아계층은 자신의 평범한 신분을 미술을 통해 미화시키려 했고, 자본의 유동성이 강화되면서 이들이 느낀 심리적 불안감은 종교 미술이라는 보다 가시적이며 영속적 매체를 선호하게 만들었다. 특히 이 책의 전반부는 서구 지배층의 심리적 불안감과 종교적 구원에 대한 열망이 당시 사회의 시각교류 메커니즘을 통해 미술로 연계되는 과정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이 책은 제목에서 표방한 대로 서양 르네상스 미술의 핵심이 상업에 있으며 그것을 이끈 상인들의 활동에 주목해야 이 시기 미술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미술작품의 상품적 속성도 함께 강조돼야 하는데 이 부분도 그간 미술사 연구에서 거의 무시된 부분이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미술품을 돈으로 따지는 물건으로 보는 데 불편해 할 수 있으나 실제로 르네상스 시기 미술품은 상품적 요소가 매우 강했고 또 그렇게 요구되고 거래됐다. 오늘날과 같이 작품을 사고팔지는 않았지만, 일종의 제품처럼 어떤 재료를 써서 어떻게 만드는가의 문제가 화가와 구매자에게 매우 중요하게 작용했다.

 

다 빈치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여인 드로잉. ‘모나리자’보다 먼저 그려졌으나 비교적 보관이 잘 돼 있어 머릿결 등 세부처리에서도 화가의 터치를 느낄 수 있다.
미술 소비계층은 금전 거래 냉혈한

 

흥미롭게도 이 당시 미술의 소비계층의 대부분이었던 상인들은 실제로 미술재료를 사고팔았던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실제로 미술 재료에 해박한 지식이 있던 이들은 화가들을 까다롭게 다뤘다.‘프라토의 상인’으로 알려진 프란체스코 디 마르코 다티니(Francesco di Marco Datini: 1335~1410)같은 이들이 남긴 장부책 안에는 울트라마린(ultramarine)이나 락(lac), 미즈(kermes), 브라질우드(brazilwood)같은 진귀한 아시아의 안료의 거래 현황이 자세히 담겨져 있고 심지어 이탈리아 패널화를 수입해 북유럽에 팔면서 적지 않은 이윤을 남겼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다티니처럼 르네상스 상인들은 화가와 계약서를 작성할 때에도 어떤 종류의 재료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명문화하기 좋아했고, 금전 거래에서도 냉혈한이었다. 이 시기 이탈리아 화가들이 구매자와 작성한 거래 계약서는 대략 300여 점 정도 전해오는데 이 같은 계약서에는 그림의 주제와 크기뿐만 아니라 사용할 안료의 범위와 수준 등 재료에 대한 기준이 명시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자료를 통해 당시 화가들이 작업과정에게 구체적으로 요구되던 사항을 확인할 수 있는데 많은 경우 완성작이 기대에 못 미치거나 작업기일을 엄수하지 못했을 경우 벌금뿐만 아니라 계약이 파기되는 것으로 돼 있다. 르네상스가 자애로운 예술 후원가의 지원 하에서 꽃피게 된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아주 잘못된 오산이다. 당시 상인계층의 치밀한 시선에 의해 서양미술이 급성장한 것으로 볼 필요가 있다. 그간 서양 미술사가 코지모 메디치 같은 상인을 르네상스 미술후원자의 전형으로 삼았다면 이 책은 다티니 같은 자린고비형 상인을 새로운 시대적 인물형으로 주목한다.

‘미술 해석은 도대체 왜 이렇게 어려운거야?’하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 책에는 그러한 난해함에 대한 대안이 담겨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양식이나 도상 같은 작품 완성 후 후속적으로 첨가되는 해석에 열중하기보다는 화가와 구매자의 시선에서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흥미롭게 재구성하면서 그림의 성격을 잡아내려 했기 때문이다. 붓터치나 질감 표현, 바탕처리 등이 어떻게 그림의 형식과 내용과 접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 했는데 이러한 논의는‘유화-캔버스’라는 새로운 조합의 서양미술이 탄생하는 과정을 추적하는 이 책 5 장의 핵심 논의이다.

새로운 영역을 밝히기 위해 새로운 용어가 도입되면서 결과적으로 그렇게 쉬운 책이 되지는 못했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태생이 학술논문이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대중적인 책으로 완전히 전환시키지는 못한 아쉬움은 남는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도처에서 접하는 르네상스라는 용어에 대해 솔직히 반가운 마음보다는 걱정이 앞선다는 것을 고백해야 할 것이다. 무엇을 재생하고 어떤 과거를 되살리자는 것인지 그 근거에 대한 원칙 없는 고민이 두렵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르네상스라는 용어의 사용이 서구 근대에 대한 존경 또는 열등의식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나름대로 짐작하고 있지만 그것이 너무 지나치게 남용되는 것을 보니 이젠 뭔가 분명한 발언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든다. 나의 작업이 서구 근대 문화에 대한 성숙한 인식과 서구인의 예술에 대한 동경에 대한 전환을 다소라도 가져 올수 있다면 좋겠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미술이론
영국 런던대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박사를 했다. 지은 책으로는『시간이 정지된 박물관 피레첸』, 옮긴 책으로는『신미술사학』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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