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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할 수 없는 연봉제…결정권 누가 갖느냐가 열쇠
거부할 수 없는 연봉제…결정권 누가 갖느냐가 열쇠
  • 교수신문
  • 승인 2000.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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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2-18 15:09:07
조 벽 <미시건공대·기계공학>바야흐로 보직교수의 전성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입시철이 따로 없는 입학생 유치 경쟁, 졸업생 직업 알선 경쟁, 기금 유치 경쟁, 산학협동용 기업 유치 경쟁. 이 모두 보직교수가 담당해야 하는 과제다. 그리고 웬놈의 평가는 토끼새끼들같이 불어나는지…. 그 업적평가, 연봉제 평가에 필요한 평가보고서는 누가 준비하고 누가 평가를 하게 될까. 일반교수는 강의와 연구에 전념하라고 강요받고 있으니 잡무는 다들 기피하거나 건성으로 할 것은 뻔하고… 이 역시 보직교수의 몫이 될 것이다.

보직교수 권력 강화, 일반 교수 불만 심화

대학은 보직의 종류와 수가 늘어나게 되어 있다. 그뿐 아니라 보직교수가 결정해야 하는 이슈가 대학의 흥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래서 보직교수가 일반교수들과 똑같이 강의를 하면서, 연구를 하면서 ‘부업’으로써 행정 일을 보는 시대는 끝났고, 2년 단위로 ‘돌아가며’하던 보직교수는 조그마한 대학에서나 볼 수 있는 골동품이 될 것이다. 보직은 교수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실권을 휘두르는 실력자의 몫이다. 유능한 학과장이 학부장, 학장, 처장을 거치게 되어있으니, 전문보직교수라는 새로운 교수직이 창출될 것이다.

보직교수는 교수업적평가제, 연봉제, 재임용제, 계약제를 일반교수를 움직이기 위해 필요한 도구로 받아들이고, 그로 인하여 실권을 장악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일반교수 위에서 군림하게 될 것이다. 보직교수와 일반교수는 서로 다른 사고방식과 가치관, 즉 다른 문화권을 형성하게 되고, 점차 수직적으로 벌어지며, 그 차이가 우열로 나타나게 되며, 끝내 대립적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다가 어느 한 시점에 도달하면 서로 대화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대화가 자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니 ‘합법화’해야 한다.

필자는 대화를 합법화하는 방식이 두 가지 있다고 본다. 하나는 일반교수를 대표하는 특정 단체가 설립되어 행정을 대표하는 보직교수와 대화를 주기적으로 하도록 못박는 것이다. 이런 경우, 대화는 진정한 의미의 대화라기보다 흥정이다. 이것이 ‘단체흥정(collective bargaining)’을 내세운 교수노조가 대학에 등장해야하는 이유다. 점잖으신 교수님께서 교수노조라. 하지만 A급이니 B급, 또는 C급 교수라는 표딱지를 이마에 붙이고 살도록 강요받는, 이미 위신이 땅에 떨어질 대로 다 떨어진 판국이지 않은가.

대화를 합법화하는 두 번째 방식은 대학에 의결, 심의, 또는 자문기구가 설립되어 일반교수가 행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대학의 중요한 사항을 공개적으로 토론하고, 의견을 절차에 의해 수렴해서, 결론을 공식적으로 제시하는 역할을 맡은 ‘세네트’(senate)를 설립할 수 있다. 이런 경우, 대화는 대립적 흥정도 아니오, 시시콜콜한 참견도 아니고, 일방적 지시도 아니다. 세네트란 행정이 결정한 사항에 도장을 찍어주는 들러리가 아니며, 그렇다고 행정이 하는 일에 일일이 맞서는 국회의 야당 같은 존재도 아니다. 그리고 세네트가 꼭 일반교수들만의 모임이거나, 대학의 최종의결기구여야 할 필요도 없다. 세네트는 대학의 유일한 의결기구가 아니라 여러 의결기구 중에 하나로서 일반교수들이 대학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준다. “공동통치권(shared governance)에는 공동책임(shared blame)이 따른다”라는 말이 있다. 대학 살림에 관한 결정권을 보직교수와 일반교수가 나눠 가지는 대신 일이 잘 못되었을 때에 책임과 비난도 서로 나눠 감수한다는 뜻이다.

현재 한국에는 교수의 권익을 대변하고자하는 단체가 여럿 등장하고 있다. 느닷없이 나타난 교수노조, 새로운 시대에 새롭게 꿈틀거리는 교수평의회와 교수협의회. 어느 단체가 일반교수를 대변하게 되던지 가장 먼저 풀어야할 문제가 연봉제일 것이다. 연봉제를 하자 말자가 이슈가 아니다. 연봉제를 단계적으로, 또는 한계적으로 해야한다는 토론은 이차적인 것이다. 가장 시급히 정해야 할 문제는 “연봉제라는 무지막지한 도구를 누가 컨트롤하는가”다.

연봉제를 일반교수를 다스리기 위한 보직교수의 경영 도구로 채택하는 대학은 이제껏 듣도 보도 못했던 강도의 불만과 불평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될 것이다. 행정(이사, 총장, 보직교수)과 일반교수 사이가 이미 벌어질 대로 벌어져 대화를 바랄 수 없는 대학에는 교수노조가 환영받을 것이다. 내분이 심한 이류대학에는 교수노조가 대학에 질서와 안정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

교수노조와 세네트의 차이

그러나 연봉제가 세네트의 참여로 이루어진다면 연봉제의 장점을 살리고 부작용을 줄여주리라. 교수평의회나 교수협의회가 세네트 역할을 맡게될 가능성이 높은 대학은 행정과 일반교수가 서로 존중해주는 성숙한 대학일 것이다. 즉 일류대학에는 세네트가 활성화되리라고 믿는다
필자는 교수평의회, 교수협의회, 교수노조가 어떤 관계로 발전하는가에 따라 한국 교수의 위상이 정해질 것이라고 내다본다. 헤게모니를 쥐기 위해 서로 견제하고 경쟁해서 교수의 권익 보호는커녕 반대로 일반교수의 힘을 분산시켜 교수들의 권익을 더 떨어뜨릴까. 아니면 상호 보완하는 동반자가 될까. 대학의 흥망은 교육부가 정하는 문제가 아니며, 어쩔 수 없는 운명이 아니다.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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