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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늘어가는 업무추진비 무엇이 문제인가
[초점] 늘어가는 업무추진비 무엇이 문제인가
  • 손혁기 기자
  • 승인 2002.06.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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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12 17:21:53
교육부령으로 제정된 ‘사학기관 재무 회계규칙에 대한 특례규칙’에 따르면 ‘업무추진비’는 자금계산서 계정과목 가운데 ‘비용’에 해당하며, 계정과목 분류 ‘관’, ‘항’, ‘목’ 가운데 ‘목’에 해당한다. 그 정의는 ‘업무추진에 특별히 소요되는 비용’이다. 2001년 결산공고에서 그 사용내역까지 자세히 기재한 지방 ㅈ대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들여다 보면, ‘업무추진비’란 결국 “보직자 직책 수행 판공비, 기관운영 판공비”이다.

정의대로 놓고 보아도 업무추진비는 대학 본연의 업무인 연구와 교육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접대성, 소모성 경비로 분류된다. 이러한 분야에서 예산이 과다하게 사용될수록 대학의 효율성도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옷값·밥값으로 사용된 판공비

특히 최근에 총장의 판공비 사용으로 사회적으로 비난을 산 대학들의 사례를 비춰볼 때 비생산적인 업무추진비에 예산을 과다책정하고 집행하는 것은 더욱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지난 5월 수억원대 판공비로 물의를 빚고 사퇴한 이기준 서울대 총장의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에는 이 총장의 부인이 2001년 한해동안 기성회비 법인카드로 20회에 걸쳐 음식점이나 백화점에서 1백30여만원을 결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총장 자신도 식사비 간담회, 조찬 모임비용 등으로만 1억6천3백만원을 지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ㅅ여대는 올해 초 회계감사결과, 총장이 2000년 3월부터 7월 사이에 청담동 옷가게에서 2백80만원 상당의 옷을 판공비로 구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생산성 논란은 고사하고 업무추진비가 총장과 관련부처장의 쌈짓돈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의혹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구체적인 사용내역을 스스로 밝혀야 한다는 여론에 힘이 실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35개 대학이 공개한 2001년도 결산서를 보면, ‘목’까지 공개한 18개 대학의 평균 업무추진비는 전체 예산 가운데 0.46%로, 그 수치만 놓고 볼 때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IMF사태 이후 상장기업들이 접대비 비율을 대폭 삭감하고 0.31%에서 2000년 0.06%까지 떨어뜨린 것과 비교하면, 늘 재정이 어렵다고 호소한 대학들이 정작 자신들의 군살을 빼는 데는 소홀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각 대학의 결산자료를 분석한 결과 1999년 이후 3년 연속으로 업무추진비 비율이 높은 것으로 지적된 청주대와 경기대의 경우 ‘업무추진’에 사용한 금액은 각각 12억7천만원과 11억9천만원이었다. 경기대의 경우 행정부서 운영비 등으로 사용한 기타운영비(30억8천7백만원)까지 포함하면 이 대학 전체 ‘시간강사료’(20억7천2백만원)의 두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청주대도 지난해 구입한 책값(도서구입비=10억1천4백만원)보다도 1억원이나 많은 금액이 ‘업무추진’ 명목으로 사용됐다. 이들 두 대학 모두 총장 취임 당시 “오너 총장이 들어서서 대학 행정에 힘이 실리게 됐다”고 강조한 바 있는데 이들이 대학행정의 어느 부문에 힘을 쓰고 있는지 의문이다.

이밖에도 업무추진비 비율이 높은 대학으로 꼽혔던 조선대도 9억2천6백만원에서 12억6백만원으로 늘어나 비율도 0.67%에서 0.81%로 크게 높아졌고, 신라대는 업무추진비 비율이 0.89%로 변동이 없으나 사용금액은 3억7천2백만원에서 4억4천1백만원으로 7천만원이 늘어났다. 반면, 부산외국어대는 절대 금액이 6천만원 정도 늘어났으나 전체규모가 커져 비율은 떨어졌으며, 세종대와 영남대는 금액과 비율 모두 낮아졌다.

조사대상대학 절반, ‘목’ 공개 안 해

지난해 업무추진비 비율이 높았던 것으로 지적된 대전대, 항공대, 경성대는 결산자료를 홈페이지에 공개했으나 세부내역을 알 수 있는 ‘목’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들 대학의 지난해 업무추진비 비율은 각각 0.81%, 0.78%, 0.67%였다.

이와 관련 한국대학교육연구소(박거용 상명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사립대들이 해마다 재정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소모성 경비지출을 절감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편, 이번 조사대상 35개 대학 가운데 고려대, 국민대, 동국대, 동덕여대, 서강대, 서경대, 성균관대, 숭실대, 연세대, 중앙대, 한국외국어대, 한성대, 홍익대, 한국항공대, 경성대, 대전대 등 16개 대학은 ‘관’, ‘항’, ‘목’ 가운데 ‘항’까지만 공개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2001년부터 각 대학이 결산서를 5월 31일까지 한국사학진흥재단에 제출하고 그 내역은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하고 있으며, 이를 제출하지 않거나 늦게 공개할 경우 재정지원에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의무적으로 공개할 범위를 ‘항’까지로 묶고 ‘목’은 자율적 공개를 원칙으로 정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목’까지 공개할 경우 재정지원 평가시에 가산점을 줘왔다. 당초 교육부는 ‘목’까지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할 방침이었으나 대학들의 반발로 한 발짝 물러섰다.

손혁기 기자 pharo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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