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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44) 진드기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44) 진드기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1.07.04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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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살갗에 거미 닮은 요상한 놈들이 득실거리니…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사람 몸뚱이도 다분히 자연의 일부라 뭇 기생충들이 빌붙는다. 어디 감히 만물의 영장에다 먹이 피라미드의 꼭지(頂點)를 차지하는 위대한 인간에 달려드는 놈이 있담. 모기·이·벼룩·빈대 같은 체외 기생충이 있는가 하면, 회충·요충·편충·촌충처럼 체내 기생충도 있다. 정녕 집요하고 끈질긴 놈들과 으레 벌이는 성가신 전투는 지긋지긋 했었지. 지지리도 못 먹는 판에 빌어먹을 놈들이 안팎으로 뜯어 제치니 죽을 맛이었다. 허나, 골칫거리 기생충이 없는 세상은 없다! 그나저나 쓰리고 저린 질곡의 삶도 한낱 추억으로, 이제와 마냥 즐겁고 멋진 글감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 살갗에 이례적으로 거미(spider) 닮은 요상한 놈들이 득실거린다면. 그렇다. 모낭진드기(毛囊蟲,follicle mite)는 거미강, 모낭진드기科에 들며, 절지동물 중에서 가장 작은 기생진드기로 Demodex folliculorum, D. brevis 2종이 있다. 둘은 모두 이마, 뺨, 속·겉눈썹, 코언저리에 사는데, 앞의 것은 털뿌리(毛根)를 둘러싸고 있으면서 털의 영양·성장을 맡는 주머니인 毛囊(hair follicles)에, 후자는 모낭 곁에 바짝 붙어있어 얼굴과 머리카락을 촉촉하고 반들거리게 하는 기름기를 분비하는 脂肪腺(sebaceous gland)에 산다. 다행히 이것들이 건강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모낭진드기는 털구멍 하나에 어림잡아 10마리 정도가 산다는데, 성충은 0.3~0.4mm로 거미처럼 몸은 두 마디며 앞 체절에 4쌍의 다리가 붙었고, 털구멍을 파고들기 편하게 길쭉한 몸에다 주둥이는 바늘처럼 뾰족하며, 죽은 살갗세포나 모낭에 든 호르몬이나 지방을 먹는다. 주제꼴에 제법 신방까지 차려 체내수정 하며 알은 모낭이나 지방선에 낳고, 수정란은 3~4일 후에 유생으로 부화해 7일 뒤에 성충이 된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밤에 털구멍 밖으로 기어 나와 1시간에 8~16cm 빠르기로 다른 모낭을 찾아 이사를 간다. 그러므로 살이 서로 닿거나 수건을 같이 써도 금세 전염된다. 세상에 이런 지저분한 놈들이 내 낯바닥에 잔뜩 널브러져 있다고!? 하기야 200종이 넘는 보다 작은 세균(bacteria)이, 살갗 1㎠에 1천~1만 마리(습한 피부엔 10만 마리)가 진을 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만 말이지.

그런데 이것들이 얼굴에 왁자지껄, 꿈틀꿈틀, 꼼작꼼작 휘젓고 다녀도 숫제 느끼지 못한다. 얼굴에 먼지알갱이가 떨어져도 못 느끼듯이 놈들의 움직임이 역치(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의 세기) 이하의 자극이라 신경이 둔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나. 끝내 찜찜해 깡그리 없앨 셈으로 씻고 닦고 문질러도 털 안에 콕 박혀 있으니 헛수고 하지 말 것.

웬걸! 여기에 또 모낭진드기와 사촌 간인 같은 거미류, 옴과의 절지동물인 옴벌레(옴진드기, Sarcoptes scabiei, itch mite)가 있다. 사라진 병으로 알았던 옴이 놀랍게도 노인층에서 부쩍 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이들은 주로 손가락 사이나 손·발바닥, 팔목, 남자의 음낭이나 성기의 살을 스스럼없이 파고든다. 옴진드기는 둥그스름하고 납작한 것이 눈은 없으며 그 또한 4쌍의 다리를 갖는다.

암컷은 몸길이 0.3~0.43mm이며 수컷은 그 반 정도인데, 짝짓기를 한 후에 암컷이 살갗 角質을 입으로 25분에서 1시간 동안 야금야금 S자 모양의 굴을 파고 들어가 생살 속에다 하루에 2~3개의 알(0.1~0.15mm)을 낳으니, 그때가 제일 가렵다(일종의 알레르기 반응임). 죽기 살기로 긁적거리다 보면 살이 벌겋게 피가 송송 맺히고 세균이 묻어 헐기도 한다. 알은 3~10일 후에 까여 살갗 위로 올라와 역시 모낭을 찾아가 거기서 죽은 각질세포를 먹고 유생시기를 보낸 뒤 성체가 되고, 3~4주간 피부 위에서 한생을 마감한다. 이 싸가지 없는 녀석들이 버젓이 이내 손바닥에 아득바득 덕지덕지 달라붙어 스멀스멀 기어다닌다고!? 피부(겉)에 살기에 악수만 해도 대뜸 옮겨 붙는다. 운이 없을 때를 ‘재수가 옴 올랐다(붙었다)’ 하는데 한 번 감염되면 잘 낫지 않고 오래 간다는 뜻이다.

독자들은 이 흥미진진한(?) 글을 읽고 마침내 눈썹과 손가락이 간질간질 근질근질 가려오기 시작한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ㆍ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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