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학자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
음악학자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
  • 전정임 충남대·음악과
  • 승인 2011.07.04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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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5여 년 전쯤의 일이다. 외국 유학 후 귀국하자마자 모 대학 부설‘한국 예술연구소’에서 책임연구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당시 연구소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미술, 연극, 음악 등의 예술분야 학자들이 모여‘한국예술’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하고, 연구하는 일로 하루 온종일을 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만큼 학문적으로 행복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한국예술을 연구해서 저술서를 집필하는 것이 연구원들의 의무였고, 그 밖의 다른 업무에 대한 압박은 없었다. 학자로서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신경 쓰지 않고 공부만 하면 된다는 조건보다 더 좋은 조건은 없을 것이다.

7년간 그곳에 근무하면서 참 많은 일들을 했다. 여러 신진 학자들이 모여 총 6권으로 된『한국현대 예술사대계』를 집필했으며, 한국예술문화위원회와 공동으로 원로 예술인을 대상으로 하는 구술 채록 사업을 개최했다. 또한 예술인들의 자료를 정리 보관하는 예술자료관을 마련했다. 예산 관계상 많은 예술인들의 자료를 기증 받지는 못했지만 음악 분야에서는‘김동진 아카이브’가 마련돼 고 김동진 선생의 필사본 악보들과 사진, 편지, 개인 기록 등 소중한 제1차 자료들이 소실되지 않고 아직까지도 고스란히 보관돼 있다.

그렇지만 한국예술연구소의 이러한 본질적인 모습은 오래 가지 못했다. 대학 당국은 연구원들이 개별적인 연구 결과물을 내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졌으며, 그러한 개인적인 연구 결과물이 해당 대학에 어떠한 직접적인 이점을 가져다 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있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결국 대학 측에서는 기초연구보다는 대학의 운영이나 학사 등과 관계된 정책연구 쪽의 결과물을 요구했으며, 이를 견디지 못한 연구원들은 하나 둘 연구소를 떠났다.

그리고 지금. 학자의 입장에서 우리나라의 현실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암담하다는 생각뿐이다. 매년 음악계에서도 우수한 학자들이 상당수 배출되고 있지만 그 학자들이 몸담고 학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낼 수 있는 공간은 거의 없다. 한국음악에 대한 연구는 거의 불모지임에도 불구하고 그 분야에서 학문적 업적을 쏟아낼 학자들은 경제적 현실에 부딪혀 혼자 고군분투하다가 학자로서의 삶을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단 음악계에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겠지만, 외국의 경우에서처럼 연구자들이 자신의 생애를 걸고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언제쯤이나 조성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연구를 하고 싶어도 자료가 없다는 점도 상당히 심각한 문제이다. 필자의 관심 분야인 한국근대음악사 분야만 보더라도, 당시의 자료라고는 일간지나 잡지 등에 기록돼 있는 단편적인 글들이 자료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이 자료들조차도‘~이라더라’라는 식의 매우부정확한 정보가 대부분이어서 신빙성 있는 자료로 취급하기가 어렵다.

1차 자료들은 소장처의 부재, 유족들의 무지, 사회의 혼란 등으로 인해 대부분이 소실됐다. 그나마 남아 있는 자료들도 지인들이 개별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들을 어떠한 방식으로 입수해야 할 지 막막하다. 한국예술연구소에 근무할 당시 작곡가 고 정윤주 선생의 유족들이 선생의 자료들을 아카이브에 위탁하고 싶다는 의뢰를 한 적이 있다. 그 당시 정윤주 선생의 자료들은 정윤주 선생이 직접적으로 寫譜한 악보를 비롯해 개인의 업적과 관련된 매우 귀중한 자료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료를 입수해 정리하고 보관하는 데까지 필요한 예산이 확보되지 않아 자료들을 받을 수 없었던 사실이 지금까지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결국 한국음악계에서 학문적 기초를 쌓기 위해 가야할 길은 멀고도 험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음악학계를 구축하기 위해 힘을 쏟는 여러 학자들의 노력으로 인해
한 계단씩 한 계단씩 성과물들이 쌓여가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노력들이 하나로 축적돼 한국음악학계가 굳건히 자리를 잡을 그 날을 기대해본다.

전정임 충남대·음악과
로마 성 교황청 음악대학에서 석사 및 박사를 했다. 논문으로는「윤이상의 국내 활동기에 관한 자료 연구」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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