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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가 없다 음악 운운하는 현실이 피곤하다
‘놀이’가 없다 음악 운운하는 현실이 피곤하다
  • 임진모 음악평론가
  • 승인 2011.07.04 13: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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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성공시대, ‘나가수’의 그림자

MBC 프로그램‘나는 가수다’가 연일 화제다. ‘나가수’를 보면서 잃어버린 대중음악의 감동을 되찾았다는 시청자들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기로에 선 대중음악과 음반 시장에 신선한 활력소가 됐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음악평론가 임진모 씨는 나가수의 저류에는‘정상적인 것에 대한 홀대와 조롱’이 깔려 있다고 비판한다. ‘나는 가수다’, 무엇이 문제인지 짚어본다.(편집자주)

임진모 음악평론가
총성 없는 전쟁터인 주말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MBC ‘우리들의 일밤’의 코너‘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는 선전하고 있다. 일요일 오후5 시대 시청률에서 수년 간 고전을 면치 못했던 MBC에 면목을 세워줬다.

초반‘프로 가수들의 경연대회’라는 콘셉트가 많은 논란을 일으켰지만, 찬반양상이 거대한 관심을 쾌척하면서 도리어 프로그램의 안착과 성공을 가져왔다. 유재석, 강호동 같은 스타 진행자도 없고, 브라운관을 장악하고 있는 아이돌 그룹 멤버가 나오지 않음에도 이런 성과를 이뤄냈다는 점은 허를 찌르는 기획의 승리가 아닐 수 없다. 매주 방송이 나간 직후에는 가수들이 부른 곡들이 음원 사이트 상위 순위를 점령하고 있으며 타방송사에선 유사 프로까지 제작했다.

‘욕심나는 기획’그러나 바래져가는 진정성

음악이란 예술 분야에‘서바이벌’을 도입하겠다는 기획의도가 공개됐을 때만 해도, 음악계에 미칠 부정적 영향에 걱정 어린 시선이 많았다. 이런 비판은 지금도 살아있다. 그러나 상업적 수치로 환산했을 때 누가 뭐래도 나가수는 성공 그래프를 그려냈으며, 어쩌면 이러한 결과는 도발적 기획이란 점에서 초기부터 어느 정도 예상됐다. 한 방송국의 프로듀서는“아무리 비판을 받더라도 피디 입장에서는 욕심나는 기획”이라고 말했다.

프로그램의 아이템은 기존의 서바이벌 프로와는 비교가 안 된다. 이미 대중적으로 검증돼 인정받은 노래쟁이들을 모아 순위를 매긴다는 것 자체가 기존의 오디션과는 급이 다른 극도의 긴장감을 선사한다. 가수의 손은 언제나 땀에 흥건히 젖고 시청자들도 침을 삼킨다. 오디션프로 원조 국가 미국과 영국에서도 이만큼 자극적인 코너는 없다. 마치 로마 콜로세움에서 펼치는 검투사 경기처럼 잔인하다. 잔인하니 재미있다.

물론 아이템만으로 승부가 났다고 볼 순 없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가수를 통해 그동안 대중음악을 향한 대중들의 바람이 일정부분 해소되고 있는 점이다. 2000년대 이후, 우리는 텔레비전에서‘가수’를 만나기 힘들었다. 트로트, 발라드, 댄스 등 다양한 장르가‘가요 톱텐’1위를 차지했던 1990년대와는 달리, 기획사의 엄격한 관리로 공산품처럼 찍어낸 아이돌 그룹, 걸 그룹이 판을 쳤다. 가수 아닌‘댄서’만 봤다고 할까.

나가수는 브라운관에서 사라진 그 인재들을 다시 불러 모았다. 첫 회부터 지금까지 출연자의 공통점은 모두 1990년대를 풍미했던 보컬들이다. 오로지 단순한 후렴과 현란한 전자효과음만이 음원 순위에 올라설 수 있는 풍토에서 잠시 망각한 가수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운 것이다. 이것은 제대로 된 노래에 목말라했던 대중들의 마음을 적시에 관통했고, 음향에서 완성도 높은 무대를 보여주려는 제작팀의 의도와 맞물리며 열풍으로 번졌다. 그 바람은 하지만 얼마 못가 멈추고 만다. 서바이벌 방식의 미숙한 진행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청중 평가단에서 꼴지를 한 가수 김건모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줬고, 곧바로 들끓은 여론의 뭇매는 담당 PD와 가수를 사퇴시키고 나서야 잠잠해졌다. 사람들이 대중음악에서 얻는 것은 위로다. 정치, 경제, 사회 등 세상에 수많은 일이 머리를 복잡하게 지나가는 사이, 우리가 가깝게 찾을 수 있는 휴식공간은 대중문화예술이다. 따라서 대중은 국회의원의 병역 면제보다 대중가수의 병역 비리에 더 민감한 관심을 두게 된다. 마음의 안식처에서만큼은 청결을 원하며, 공평하길 바란다. 정치면에서나 볼 수 있었던‘봐주기’가 이곳에서조차 나오니 커다란 반발을 불렀던 것이다.

다행히 한 달간 맞았던 휴지기는 약이 됐다. 바뀐 나가수는 여전히 MC와 도전자가 사퇴하는 광경이 보이지만, 전보다 빠르게 대처하며 슬기롭게 위기를 넘겼고 프로그램의 핵심 코너로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를 거듭할수록 제작진이 보여주려던‘진정성 있는 무대’의 의미는 바래지고 있다. 말하자면 무대에 올라서는 가수들에게선‘나가수 경연 순위’에서 살아남는 방법만이 비치고 있는 것이다.

연령대별로 모집한 500명의 청중 평가단은 랜덤 순서로 뽑힌 7명 가수의 무대를 보게 된다. 뽑혔던 평가단이 다시 오지는 못하기에, 보통 당일에 온 평가단은 공연을 일회적으로 보게 된다. 전국적 관심을 일으켰음에도 나가수에서 소개된 노래가 상반기 다운로딩 순위 30위권에 하나도 들지 못한 것은 일주일이라는 짧은 유통기간 때문이다.

여기서 순위 방법에 결정적 문제가 생긴다. 7명의 가수 중 최고를 꼽기 위해 청중은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 공연의 순서가 길다 보니 첫 주자와 마지막 주자가 머릿속에 동일하게 위치하기는 사실상 어려운 실정이다. 여기서부터 무대는 진정성에서 기교적인 측면으로 축이 이동된다.

딱 한 번 보고 평가하다 보니 인상 깊은 후반을 보여준 가수가 순위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다. 음정이 틀려도 상관없다. 전체적으로 곡을 훌륭하게 소화했어도 폭발력에서 뒤진다면 먼저 탈락할 소지가 높다. 그러다보니 편곡 기반은 발라드가 우선이며, 곡의 흐름도 뒤쪽에 중심을 두는 양상이 나타난다.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려 했던 제작 의도와 달리 프로는 어느새 발라드 중심 무대로 변질해가고 있다. 어느 순간 이 코너에서 타 장르의 가수가 무대에 선다는 건 상상조차 버거운 일이 돼버렸다. 만약 가창력을 인정받은 댄스가수가 나가수에 등장해 안무를 선보이며 노래를 부르면 어떻게 될까. 결코 승전보를 전하지 못할 것이다.

‘전국노래자랑’에서 배워야 할 것들

대중들에게 가수를 바라보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이 더 심각하다. 가수에게 필요한 건 고음만이 아니다. 발성, 호흡, 기교 등 수많은 능력이 있어야 하고, 동시에 곡을 즐기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바로 대중음악의 근간이라고 할‘놀이’가 나가수에는 없다. 참여 가수들에게서 즐기는 기분과 자세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연습부터 순위를 염두에 두며 시작하게 된다. 관객과 함께 놀려는 마음보단 불안, 초조, 두려움이 앞선다. 이와 달리‘전국 노래자랑’에서는 출전자들이 떨어져도 즐겁다. 장수가 증명하듯 가장 성공적이고 바람직한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은 물론 수정·보완을 계속하고 있다. 매회 녹화가 끝나자마자 인터넷 무섭게 올라오는 순위에 대한 루머 때문에 제작팀은 경연 방식의 일정을 단축시켰고, 청중 평가단의 투표도 한 명의 가수가 아닌, 세 명의 가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투표권을 바꿨다. 꾸준히 문제점을 고쳐나가고 있다. 하지만 방법론의 개선이 왜곡된 본질을 가리지는 못한다. 태생이 잘못된 프로그램이다.

과잉과 자극이 아니면 어필하지 못하는 것일까. 나가수를 저류하는 정서는 정상적인 것에 대한 홀대와 조롱이다. 음악프로가 아니라‘예능 프로’다. 재미있는 드라마가 한때 폭발적 인기를 누리듯‘그저 성공한 방송 쇼’에 불과하다. 이런 잔인한 방식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노래의 힘을 보여줄 수 있다. 나가수로 음악 운운하는 현실이 피곤하다.

임진모 음악평론가
내외경제신문, 경향신문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현재 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을 지내고 있다. 음악 웹진 이즘(www.izm.co.kr)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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