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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 먼저 내라? … 財源확보 방안 없이 대학만 압박
이자 먼저 내라? … 財源확보 방안 없이 대학만 압박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1.06.27 14: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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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반값 등록금’대책 발표

한나라당이 한 달만에 ‘반값 등록금’ 대책을 내놓았다. 한 마디로 실망스럽다는 평가다. 반값 등록금이 아니라 단계적 등록금 인하로 끝났다.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기 위한 정부의 재정 투입은 ‘말잔치’수준에 그칠 우려가 커졌다. 재정 투입 계획은 밝혔지만 재원 확보 방안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대학에는 확실한 무언가를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마치 돈 빌려 줄테니 이자 먼저 내라는 식이다. 등록금 논의 자체가 표를 의식한 정치적 목적에서 제기된 탓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 한나라당 방안은=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지난 23일 기자회견을 열어 ‘등록금 부담 완화 및 대학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내년부터 3년간 총 6조8천억원의 재정을 투입해 학생들 등록금 부담을 단계적으로 줄여나가는 ‘대학생 학비지원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내년 1조5천억원을 시작으로 2013년 2조3천억원, 2014년 3조원의 정부 재정을 투입한다. 대신 대학도 장학금 확충 등의 자구노력을 통해 매년 5천억원씩, 3년간 총 1조5천억원을 부담해야 한다. 고경모 교육과학기술부 정책기획관은 “대학이 부담해야 하는 5천억원에는 등록금 인하도 포함된다”라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이 내년에는 15% 이상 완화되고, 2013년과 2014년에는 등록금 인하폭이 각각 24%와 30% 이상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게 한나라당의 설명이다.

 2012년 투입 예정인 1조5천억원 가운데 등록금 인하에 직접 사용하는 재정은 1조3천억원이다. 나머지 2천억원은 차상위 계층 장학금이나 든든학자금 제도 개선 등 국가 장학금 확충에 사용한다. 2012년에는 올해 1학기를 끝으로 중단되는 차상위계층 장학금을 추가로 지원하고, 2014년에는 소득 1분위 학생까지 장학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다.

대학의 자구노력과 관련해서는 적립금, 기부금 등을 활용해 교내 장학금 확충 계획을 사전에 공개하도록 했다. 특히 정부 지원에 대응해 자체적으로 등록금 인하율을 제시할 경우 등록금 인하에 사용하는 1조3천억원 가운데 일부(3천억원 안팎)를 인센티브로 지원하는 방안도 강구하기로 했다.

한나라당 등록금 부담 완화 태스크포스(TF) 단장인 임해규 의원은 “대학생 학비지원 제도는 등록금 납부 고지서 상에서 금액이 실제로 인하되도록 용도를 지정해서 지원토록 하겠다”라며 “학자금 대출한도에 제한을 받는 부실대학을 제외한 모든 대학에 지원하겠다”라고 밝혔다. 임 의원은 또 “대학교육역량강화사업에서 등록금 수준 지표에 대한 배점을 현행 10%에서 20%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라고 덧붙였다.

■ 실효성에는 의문= 당정 협의를 거쳐 발표했다고는 하지만 한나라당의 등록금 대책은 실효성에서 의문이 제기된다. 방문규 기획재정부 대변인은 “당정 협의에서 재정지원 문제는 합의까지 이른 것은 아니다”라며 “세부적 시행 계획을 수립하려면 갈 길이 아직 멀고 재원 조달 방안 등도 더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주영 한나라당 정책위원장 역시 “당정이 협의하는 과정에서 큰 틀에서는 합의했지만 최종적인 합의에는 도달하지 못했다”라고 밝혔다.

당장 내년에 필요한 예산 1조5천억원부터 확보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는 말이다. 반상진 전북대 교수(교육학)는 “기획재정부와 합의가 안 된 상황이고, 설사 합의한다 해도 내년에 그 예산을 확보할 수 있느냐는 여전히 문제가 있다”라고 우려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수(교육학)는 “재원 확보 방안이 마련되지 않아서 설사 내년에는 확보한다고 해도 그 다음해에는 가능성이 없어진다”라고 지적했다.

교육재정 전문가들이 이렇게 지적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참여정부는 임기 말인 지난 2007년 6월, 청와대에서 열린 대학총장 토론회에서‘고등교육 예산을 2007년 3조7천억원에서 2008년에는 1조원을 늘리고, 2009년에는 (2007년보다) 2조원을 더 늘릴 방침’이라고 밝혔다. 대통령 선거를 6개월여 앞둔 시점이었다. 하지만 2008년 고등교육 예산은 실제로는 7천~8천억원 가량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정권이 바뀌면서 2009년 예산은 2008년보다 겨우 4천억원 늘었다.

내년에 투입하겠다고 밝힌 1조5천억원은 ‘돌려막기’의 혐의도 받고 있다. 이주호 교과부 장관은 지난 4월 29일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세미나에 참석해 “내년 고등교육 예산을 올해보다 1조원 증액하겠다”라며 “5천억원은 교육역량강화사업에 지원하고, 나머지 5천억원은 국가 장학금 확충, 연구간접비 확대 등에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대학들이 최근 3년간 등록금 동결에 협조한 데 대한 일종의 ‘당근’성격이었다.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반값 등록금’ 카드를 꺼낸 이후에는 증액 규모가 1조원에서 1조5천억원으로 늘었다. 고경모 교과부 정책기획관은 “내년에 추가로 투입하겠다고 밝힌 1조5천억원은, 내년 교육역량강화사업 예산을 증액하겠다고 밝힌 것도 감안한 금액”이라고 설명했다. 내년에도 등록금 동결을 유도하기 위해 꺼냈던 카드가 하루아침에 등록금 인하 예산으로 둔갑한 셈이다.

정부의 재정 투입 규모 역시 ‘반값 등록금’을 실현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 교과부에 따르면, 2011년 등록금 수입 총액은 14조5천억원 수준이다. 국가 장학금과 대학 교내외 장학금을 합한 규모가 3조원 가량인 점을 감안하면 고지서에 찍히는 등록금을 반으로 낮추기 위해서는 5조7천억원이 필요하다. 소득 하위 50% 이하에 장학금을 지원하겠다는 당초 약속도 이번 대책에서는 빠졌다.

그래서 반 교수는 “정치적 논의에 흔들리는 예산 확보는 일시적인 처방일 뿐 법제화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한다. “등록금 문제는 사립대가 역할을 제대로 못한 점도 있지만 국가의 공적재원 미흡이 제일 크다.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제정해 파이 자체를 키워야 한다”라는 것이다. 반 교수는 이어 “대학의 자구노력 또한 정부가 얼마를 내놓을 테니 대학도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자율성을 주면 좋은데, 액수까지 정해놓고 대학에 내놓으라고 하니 모양새가 좋지 않다”라고 말했다.

송 교수는 “대학이 부담해야하는 5천억원도 (확보가) 쉽지 않은 문제”라며 “정부 책임을 대학에 떠넘기는 측면이 크다”라고 지적했다. 송 교수 역시 “등록금은 일회적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해마다 지속적으로 들어와야 하는 만큼 재정 확보 방안을 법으로 정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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