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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 장이 준 영감 … 그 아픔을 재현하고 싶었다”
“사진 한 장이 준 영감 … 그 아픔을 재현하고 싶었다”
  • 옥유정 기자
  • 승인 2011.06.27 14: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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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 한국전쟁 61주년, 「고지전」의 장훈 감독

6.25전쟁이 올해로 61주년을 맞았다. 3년이라는 시간동안의 지루한 전투 끝에 한반도 중앙에는 휴전선만이 전리품처럼 덩그러니 남았다. 과연 젊은 세대는 한국전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7월 21일 개봉을 앞둔 영화「고지전」은 70년대 産 젊은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한국전쟁이다. 장훈(36세). 그 역시 전쟁이라곤 사진과 노이즈가 섞인 다큐멘터리로만 접한 세대지만 그는 이번 영화를 통해 “지난날 이 땅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그리고 지금 우리가 서있는 이곳이 바로 그 땅이라는 것”을 전하고자 했다. 영화는 휴전 협정이 논의되기 시작한 1951년 7월부터 2년간 지속됐던 血戰, ‘고지쟁탈전’을소재로 삼았다. 영화는 1953년 2월, 휴전협상이 난항을 거듭하는 가운데 교착전이 한창인 애록고지에서 시작한다. 전사한 중대장의 시신에서 아군의 총탄이 발견되고, 이를 미심쩍게 여긴 상부는 방첩대 중위 ‘강은표’(신하균)을 현장으로 보내 조사하라는 임무를 내린다. 은표는 그 곳에서 죽은 줄 알았던 친구 ‘김수혁’(고수)를 만나게 되는데, 수혁의 미심쩍은 행동을 목격한다. 한국전쟁 최후의 격전이 펼쳐졌던 1953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고지전」. 개봉을 앞두고 후반작업에 한창인 장훈 감독을 서면으로 만났다.

 

7월 21일 개봉을 앞둔 영화「고지전」의 장훈 감독.                                                         사진제공=쇼박스
△ 「고지전」이 막바지 작업 중인데, 왜 이 영화를 택했는지 궁금하다. 젊은 감독이 전쟁영화를 선택해 적잖이 놀랐다.
“하나의 고지를 놓고 수 십 번씩 공방전을 해서 반복한다는 부분이, 한국전에서만 있었던 특수한 상황이고 특별한 드라마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그 부분으로 접근했다. 지금까지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가 많이 있었지만 대부분이 전쟁 초반을 다뤘다. 실제로 휴전 협정이 논의되면서 체결되기까지의 2년동안에는 전방고지에서만 전쟁이 이뤄졌다. 그 사실이 나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 올해로 한국전쟁 61주년이다. 우리는 지금 ‘휴전 중’에있다. 물론 해석은 관객의 몫이지만, 감독으로서 이 영화에서 의미를 두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
“전쟁을 과장하거나 스펙터클하고 오락적으로 소비되는 영화를 만들기보다는, 그 전쟁을 해야만 하는 병사들의 너무나도 힘든 전투가 관객들의 마음에 진정성 있게 남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이 영화를 통해 전쟁의 잔인함과 그 참상을 관객들이 느꼈으면 좋겠다.”

△ 극중 인물 강은표(신하균)와 김수혁(고수)이 이 영화를 이끌고나가는 중심 캐릭터인데 감독의 의도대로 이들의 캐릭터가 잘 살아났다고 보는가.
“강은표(신하균)는 극중에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서술자, 관찰자 성격이 강한 캐릭터다. 그런 점에서 ‘신하균이라는 배우가 가지고 있는 눈빛, 연기가 관객들이 신뢰를 가지고 잘 따라갈 수 있게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은표와 수혁 두 인물간의 드라마는 전투 안에서 이뤄지는 관계이기 때문에 드라마가 두드러지지는 않고 전투 상황 속에 녹아 있다. 그래서 중요한 포인트들을 잘 살려가려면 ‘수혁을 사랑할 수 있는 은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신하균 씨가 그런 부분을 잘 표현해 준 것 같다.
고수 씨는 처음 만났을 때, 고수 씨가 원래 가지고 있는 배우의 순수함과 바른 모습이 있었다. 그런 순수한 부분들이 초기의 수혁과 많이 일치하기도 했다. 수혁의 순수함이 전쟁을 겪으면서 많이 변하게 되는데, 고수 씨라면 그 초기의 모습들을 잘 담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남성적인 부분들이 후반부의 수혁을 잘 표현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 촬영을 하면서 군복을 입고 촬영을 했다. 배우들 스스로가 군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보니 인물에 몰입이 더 됐던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애록고지에서 벌어지는 영화「고지전」의 전투 장면.                                                      사진제공=쇼박스
△ 근래 미학 논쟁이 문학예술계에 있었다. 랑시에르에 따르면 “대상을 인식하고 판단하고 행위하기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공통적인 것’, 즉 시공간의 문맥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라고 했다. ‘한국전쟁’을 70년대 産 세대의 감각에서 어떻게 해석하고자 했나. 무엇을‘기억’하고, 또 무엇을 ‘재현’하려고 했나.
“작품을 하기로 결정을 하고, 스태프들과 함께 많은 자료조사를 했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이기 때문에 알 수 없는 것들을, 당시의 자료와 여러 사진들을 보며, 많은 영감을 받았던 것 같다. 그중 나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사진은, 실제 당시 고지전이 벌어졌던 어느 고지의 사진이었다.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수도 없이 반복된 전투에, 나무 하나 남아있지 않고 온통 상처 투성인 모습의 벌거벗은 고지. 전투를 위해 파놓은 교통호는 사람의 피부를 칼로 찢은 것처럼 깊고, 고통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수도 없는 폭탄에 살덩이가 파헤쳐진 것처럼 문드러진 사진 속의 장면은 나를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너무도 슬픈 땅의 모습. 개인적으로 그 사진을 본 후, 영화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영화에서는 드라마를 따라가게 되다보니, 내가 받았던 느낌과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것의 차이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지전은 연출자인 내 입장에선 그 사진 한 장으로부터 시작 됐던 것 같다. 그래서 그 고지를 사진 그대로 재현하고 싶었다. 관객들에게 지난날 이 땅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그리고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이 바로 그 땅이라는 것을 영화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랐다.”

△ 헤럴드 블룸은, 모든 작가는 선배 작가와 작품의 영향을 받는 존재라고 했다. 그는 이를 ‘영향의 불안’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는데, 이 영화의 구상에 누가 또는 어떤 작품이 ‘영향의 불안’을 줬나.
“사실 잘 만들어진 모든 전쟁 영화들과 많은 선배 감독들에게서 이른바‘영향의 불안’을 받았던 것 같다. 잘 만들어진 작품들은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고, 그것은 존경하는 작가와 감독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것을 넘기란 쉬운 것은 아닌 것 같다. 글을 쓰거나, 촬영을 하다보면, 작품이 그 작품 자체로서 자신만의 의미로 존재가치를 갖게 되고, 생명력을 갖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때 비로소 다른 작품들에서 자유로워지는 느낌을 조금씩 받는 것 같다.”

△ 학부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김기덕 사단(?)에서 영화를 익힌 것으로 알고 있다. 「의형제」나 「고지전」과 같은 대중성 있는 영화로 옮겨온 배경이 궁금하다.
“내 개인적인 성향은 예술영화보다는 대중영화 쪽이다. 대중영화가 더 편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주변에서 보기에 전 보다는 더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고 평가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영화에서‘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와‘어떻게 이야기를 할 것인가’의 두 가지가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중영화는‘어떻게’라는 전달 방식이 독립영화에 비해서는 더 중요하다. 소통의 방식에서 더 많은 대중들을 염두에 두다보니, 촬영이든, 미술이든, 음악이든 만드는 과정과 방식에 더 집중하게 된다. 영화를 만들면서, 관객들을 통해 그런 소통의 방식들을 매번 많이 배운다. 그렇게 그 ‘어떻게’라는 부분을 채워 나가다 보면, 그 이후엔 ‘어떤’이야기든 자유롭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을 영화 일을 시작하면서 했다.”

△ 감독이 생각하는 독립영화의 가능성은 어디에 있나.
“내가 생각하는 독립영화의 특별한 점은, 작가의 생각을 좀 더 끝까지 끌고 가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작가와 관객 모두에게 대중영화에서와는 또 다른 특별한 경험을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옥유정 기자 ok@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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