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4 09:50 (수)
와인 열풍이 남긴 오만과 편견
와인 열풍이 남긴 오만과 편견
  • 손진호 중앙대 와인아카데미
  • 승인 2011.06.27 12: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손진호 중앙대 지식산업교육원 와인아카데미 주임교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옛날엔 와인이라면 막걸리, 소주 놔두고 외국 술 마신다고 핀잔 받았고, IMF 이후엔 경제사정이 힘들어 와인소비가 많이 줄었다. 그런데 요즘 신문이나 잡지를 펴 들면 꼭 한 두 코너는 와인을 다루고 있다. 모임에 나가 봐도 와인을 마시거나 와인 이야기하는 것이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사회 분위기가 형성돼 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물론, 아직까지 와인은 공부해 가며 마시는 술, 왠지 부담이 가는 술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여기에는 와인이 갖고 있는 몇 가지 남다른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와인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술이며, 문화적인 다채로운 스토리를 담고 있다. 발효과정을 거친 술 중에서 와인은 인류 역사의 초기부터 특별히 사랑받아 왔다. 와인을 마시기 위해 필요한 글라스 등 기물과 서비스 방식 등도 문화의 소산이다. 그런데 우리의 음주 문화는 오래도록 ‘취하기 위해 술을 마신다’는 원초적 목적에 종사해 온 반면, 와인은 알코올 함유량이 낮고, 산미와 풍미가 다양해 전 세계의 다양한 음식과 조화를 이루며 식탁의 동반자로서 함께 해왔다. 와인 역시 알코올이 있으나 과음하지 않는다면, 건강과 무병장수에 도움이 된다. 그리고 와인은 일단 과음하게 되는 술이 아니다. 와인만 홀로 마시는 경우에도 그 향과 맛을 음미하며 천천히 즐기고, 식사와 함께 마시는 경우엔 대화를 즐기면서 천천히 마시기 때문에 말 그대로 ‘반주’의 선에서 끝난다. ‘과음’이라는 우리의 음주 문화를 생각할 때, 와인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적 산물이며 음식이기도 한 와인이 우리나라에 짧은 시간에 갑자기 들어오면서, 다소 잘못 알려진 면이 없지 않다.

와인이 일상화되고 대중화되지 못하기 때문에 아직도 와인은 ‘선물용’으로 주로 소비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고가의 와인 위주로 판매된다. 때로는 신문에서 몇 백만원 짜리 와인 기사가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백화점이나 마트에 가보면 의외로 만원, 2만 원대의 저렴하지만 좋은 와인들이 많다.

또한 레드 와인 일변도의 소비도 지적할 수 있다. 와인에는 화이트 와인, 로제 와인, 스파클링 와인 등 다채로운 종류가 있는데, 우리나라 와인 소비의 80%는 레드 와인이다. 어떤 사람은 생선회를 먹으면서도 레드 와인을 마신다. 그러나 실제로 여러 음식을 먹다 보면, 더욱이 한식에 와인을 접하다 보면, 의외로 화이트 와인이나 로제 와인이 더욱 잘 맞는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집에서 와인을 보관하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와인의 보관 조건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대개 선물 받은 와인의 경우 와인을 허세로 생각하고 집안 거실의 장식장에 보기 좋게 세워 놓는데, 이런 와인들은 쉽게 상할 수 있다.

와인을 마시는 곳도 주로 고급 레스토랑에서나 마시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화이트 와인을 가지고 노량진 수산시장의 횟집에서도 마실 수 있고, 레드 와인 한 병으로 돼지갈비집에서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또한 온 가족이 모인 명절의 차례나 제삿상 음식과 함께 로제 와인이나 스파클링 와인을 마시면 얼마나 좋은가! 다만, 이왕이면 유리 글라스에 마시면 더욱 맛과 향을 잘 느낄 수 있기에 조금만 신경 쓰면 된다.

얼마 전 와인을 사기 위해 마트에 가서 와인을 고르는데, 한 할아버지가 오시더니 포도주가 어디 있냐고 물으셨다. 그것도 바로 와인 판매대 앞에서! 그래서 와인 여기 있지 않느냐고 했더니 그 분 하는 말, “ 아~ 와인말고 포도주 말이오!”그 할아버지는 옛날의 진로포도주 같은 설탕을 탄 달콤한 포도맛 희석 소주를 원하신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와인이 차지하고 있는 현주소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일반인의 시각엔 와인은 ‘외국산 시큼털털한 포도주’를 뜻하는 대명사이다. 아직 장년층 이상의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어머니가 담가주신 달콤한 설탕 포도주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다.

와인에 대한 편견과 선입관은 이렇게 형성된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그 맛이 이상할 뿐이다. 외국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민족적인 술이 아니라는 인식도 자리 잡고 있다. 아직은 즐겨 마시기엔 가격이 높다. ‘공부’하면서 마셔야 한다는 부담감도 한 몫 거든다.

그러나 최근의 와인 소비 형태가 30~40대 중심의 가족 소비 형태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 서울에 국한된 현상이긴 하지만 와인 교육 기관이 계속 설립되며 일반인이 와인을 ‘공부’하려 한다는 점 등이 미래의 한국 와인문화에 대한 긍정적인 포석이 아닌가 한다. 때론 약간 어렵다는 것이 매력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 것이기에.

와인은 자연의 산물이다. 하늘의 태양과 대지의 영양분을 먹고 자란 포도로 만들었다. 자연은 순리가 있으며, 무리하지 않는다. 와인 한 잔에 자연의 향과 삶의 여유를 담아 보자.

손진호 중앙대 지식산업교육원 와인아카데미 주임교수

프랑스파리10대학에서역사학 DEA학위를받았다. 저서로는『와인』,『 와인 구매 가이드』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