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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폴리페서의 폐해
[대학정론] 폴리페서의 폐해
  • 논설위원
  • 승인 2002.06.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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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12 17:08:33
정치의 계절이 다가왔다. 지방자치제의 골격인 도지사·시장과 시·도의원의 선출로부터, 다음 정권의 향배를 결정짓는 대통령 선거에 이르기까지 금년 후반기는 온통 정치열풍 속에 휩싸일 전망이다.

이에 따라 교수 사회도 눈에 띄게 술렁이고 있다. 어떤 이들은 아예 대놓고 특정인의 선거캠프를 이끄는가 하면, 많은 이들이 장막 뒤에 숨어 조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정치와 교수의 사이는 바늘과 실의 관계가 됐다.

교수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험난한 길인가는 누구나 알고 있다. 특히 우리 사회는 교수란 위치가 높은 사회적 위신을 지닌 몇 안되는 명예스런 직업군이란 사실에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차례 정치열풍이 휩쓸고 지나가면 교수사회는 초토화되곤 한다. 위신과 명예는 간 곳 없이 사라지고, 초라해진 위상은 조소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물론 교수들이 쌓아온 지식을 정부의 정책결정이나 정치인의 정책공약에 반영시켜 사회발전의 밑거름으로 만들겠다는 노력은 값진 것이며, 지식의 확대 재생산이라는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때로는 지식을 현실에 접목시키기 위해 교수직을 던지고 현실세계에 뛰어든다고 해서 크게 나무랄 일이 아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대학의 위상을 전락시키고, 교수의 품위를 훼손하며, 나아가서 대학교육의 질을 저하시키는 정치 지향적인 교수들의 맹목적인 권력욕이라 할 수 있다. 전공의 학문적 본질이나 현실세계와의 적합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그간 쌓아온 명성을 앞세워 특정 정치가를 밀어주고 그 반대급부로서 권력을 향유하려는 몰염치한 행각이 많은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대상이다.

사례 하나 : 김 아무개 교수는 지역적 연고로 선거직을 두차례 거친 후 공천에서 탈락하자 다시 대학에 복귀, 두 학기를 강의한 후 관직에 재등용돼 나갔다. 사례 둘 : 박 아무개 교수는 교수협의회의 전폭적인 지지로 총장에 선출됐으나, 임기 중 선거철이 되자 사표를 내고 선거직에 출마했다. 사례 셋 : 이 아무개 교수는 꽤 알려진 칼럼니스트로서, 정치가로의 입문이나 관직에의 등용을 끈질기게 추구하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자신의 소신도 따라 바뀌는 해바라기성 행위를 거듭하고 있다.

위의 사례들이 비록 특정인들을 지칭한 것은 아니지만 유사한 행태는 우리주변에 여기저기 널려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교수직을 권력획득의 발판으로 여겨 염불보다는 잿밥에 관심이 쏠리며, 용케 권력을 잡은 후에도 사표를 내지 않고 재직대학의 로비스트로 복직의 밑천을 삼아, 퇴직 후에는 어김없이 교수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근래 우리 대학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내·외로부터 엄정한 평가를 받고 있다. 그 결과 실로 참담한 실체를 드러내어, 이제는 저마다 발전계획을 수립해 위상을 높이려는 몸부림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러나 대학문화는 하루 이틀에 쌓아지는 것이 아니다.

교수사회가 고질병처럼 정치열기에 휩싸이고, 명분 없이 교수직을 내던지고 정·관계로 달려나가는 습관성 가출벽을 고치지 않는 한 품격 높은 대학문화의 형성은 요원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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