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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힘 또는 분석하는 시선의 열망
현실의 힘 또는 분석하는 시선의 열망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1.06.20 17: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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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계간지, 무엇을 담았나

이 여름, 계간지들이 뿜어내는 지성의 목소리들은 허구보다 더 드라마틱한 현실 앞에서 자신의 시선을 견지해야 하는 내공을 발휘하고 있다. 목전의 반값등록금, 부산저축 은행 비리 사건, 바다 건너 일본 동북부 지역의 원전 사고 등…. 현실의 힘이 분석하는 시선을 압도하고 있다.

크게 보자면, 여름 계간지들은 세 부류로 구분할 수 있다. 이들은 한국문학의 문제를 더 고민하거나(<오늘의 문예비평>, <창작과비평>), 나라 밖으로 눈을 돌려 중동발 혁명의 의미를 진단하거나(<문학과사회>, <철학과현실>) 중국-미국 이극체제를 사는 법을 화두로 삼으면서(<황해문화>), 우리 안의 현안을 청년 주체와 가족·여성으로 재정리하는(<문화/과학>, <진보평론>) 한편, 우리시대의 사회학을 바라보는 젊은 인문학자들의 시선을 내세우고(<문학동네>), 5·16군사쿠데타 50주년의 의미를 톱아보는 시선(<역사비평>)으로 갈린다.

<오늘의 문예비평>

<오늘의 문예비평> 통권 81호가 내세운 특집은‘세계문학과 한국문학’. 계간지들의 단골 메뉴이기도 한데, 지역문제를 고심하던 이 매체가 이 문제를 내세운 데는 이유가 있을 듯하다. “세계문학을 하나의 기획된 운동으로 점유하면서 이를 전략적 에너지의 원천이자 지속가능한 갱신의 가능태로 끌어내는 과정”을 점검하기 위해서다. 「세계문학 문제의 지형」(박상진), 「이 재앙의 지구에서-오늘의 세계문학」(문광훈), 「세계문학, 민족문학, 시민문학-최근 논의에 대한 몇 가지 단상」(오길영) 등을 수록했다.  

문광훈의 글은 괴테의 세계문학론을 재론한 글이다. 그는“괴테의 세계문학론은 단순히 개별적·민족적·국민적 단위의 문학이 세계문학으로 고양되고, 이 고양을 문필가들의 사회적 연대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표피적인 문제에 불과할 뿐”이라고 지적한다. 그렇다면‘재론’의 이유도 짐작할 수 있다. 괴테의 논의가 결국은 자기 앎과 자기판단, 자기이해와 자기제어에 대한 강조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새로운 독법이라기보다는 우리 시대의 문제의식 안으로 괴테의 세계문학론을 가져온 듯하다.

소설 회의론에 대한 ‘낙관적’반박

지난 겨울 <창작과비평>(150호)이 들고 나왔던 특집은‘2010년대 한국문학을 위하여1’이었다. 창비는‘시즌 2’를 다시 들고 나오면서 집요하게 한국 문학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당시 논의가 한국문학의 과제와 쟁점을 정리한 것이라면, 이번 통권 152호는“2010년대 소설에 대한 비관적 전망을 특화하는 비평담론의 문제를 지적하고, 여성작가의 최근작들에서 회의론을 넘어갈 공감과 소통의 가능성”을 읽어내고자 한다. 「한국문학에 열린 미래들」(한기욱),「공동체와 소통의 상상력」(백지연), 「‘천사-되기’에서‘무식한 시인-되기’로」(심보선) 등의 글을 선보였다.

한국 소설 회의론이랄 수 있는 최근 비평담론의 문제점을 짚은 것은 한기욱이었다. 그는 김영찬, 김형중 등 몇몇 평론가의 비관적 전망의 근거에는“단절론적인 근대문학사 인식과 장편소설 불가능론이 자리잡고 있다”라고 지적하는 한편, 장편소설 불가능론도 도마에 올려‘우리 문학에 유효한 형식’이라고 강조했다.

백지연은 여성작가들의 작품을 통해‘불안과 고립’을 극복할 우리 소설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그의 글 제목 그대로‘공동체와 소통의 상상력’이 그것인데, 2000년대 소설에 두드러졌던‘취향의 공동체’가 이제‘소통의 공동체’로 변화하고 있는 지점을 주시했다. 매력적인 시선이지만, 일부 여성작가들의 변화만으로 한국 소설 전체의 가능성을 견인하기에는 힘이 좀 달리지 않을까.

중동발 재스민 혁명은 가슴 벅찬 민주화의 열망이 보편적인 현상임을 확인했다. <문학과사회>94호는 이런 상황을 특집‘혁명의 귀환’으로 맞아들였다. 그런데 이들의 특집 구성에는 최인훈의『광장』이 겹쳐있다.“사소해 보이는 자유에 목숨 거는 주인공을 내세웠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바로 여기에「제3세계, ‘자유의 왕국’을 향한 영구혁명-민족혁명을 넘어, 시민혁명을 넘어」(박은홍), 「‘아랍의 봄’의 역사적 배경과 의의」(황병하),「혁명의 불투명한 원인」(맹정현) 등의 글이 엮인다.

박은홍은“제3세계를 휩쓸었던 민족혁명의물결이 시민혁명의 물결에 의해 도전을 받거나 부정되는 맥락과, 이 과정에서 제3세계 혁명의 대안적 실험으로 얘기될 수 있는 사례에 대한 탐색”을 시도한다. 그의 눈에는“제3세계에서의 시민혁명은 전근대와 근대의 불안정한 동거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비친다.

계간 <철학과현실>89호 역시 특집‘이슬람의 정신과 문화’를 구성했다. “이슬람 문명에 대한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라고 말하는 편집인의 말처럼 이들의 특집은‘이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중동의 재스민 혁명」(최영철), 「이슬람 종교와 정신」(황의갑), 「유럽의 르네상스를 일으킨 이슬람 철학」(김정명), 「이슬람의 경제」(김중관),「중동의 역사와 민주화 혁명」(송경근)을 수록했다.

특집의 중량감은 <황해문화>71호에서 확연하게 느껴진다. 이들은‘차이메리카, G2시대를 가는 법’을 준비했다. 이들은 올해 초 오바마 미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주석과의 이른바‘G2정삼회담‘에서 충격을 받은 듯하다. 그래서“아직 중국이 제국의 반열에 오른 것은 아니지만 언제나 제국(들)의 가혹한 존재감 아래서 운명의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우리의 입장에서는 세계 2강으로 귀환하는 중국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털어놓았다. 이들은 이‘상징적 사건’이 향후 아시아, 그리고 한반도의 상황에 어떤 의미를 던지는가를 고찰함으로써“‘가위눌림’에 가까운 기억의 재현을 냉정히 다스릴 수 있기를”주문했다. 「G2시대와 다원평등한 세계재편의 향도」(백원담), 「중국굴기의 경험과 도전」(왕후이), 「‘G2s’의 형성과 미국의 위상변화 및 전망」(안병진), 「G2의 대두와 일본의 변화」(박정진), 「G2시대와 한반도」(이남주) 등의 글을 묶었다.

<문화/과학>66호와 <진보평론>48호는‘우리 내부’의 문제에 시선을 고정했다. ‘청년운동’와과‘여성주의’특집은 주체가 선명한만큼 문제의식도 목소리도 투명하다. 사실 <문화/과학>은 2004년 봄호에서‘위기의 청년’을 특집 주제로 내세운 이래 계속해서 청년 문제를 중요한 쟁점으로 제시해왔다.

그런 작업은 61호부터 세대문제 조명으로 진화하면서 이 시대 청년 문제를 천착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청년운동’의 정치학」(<문화/과학> 편집위원회), 「20대 정치적 주체성의 재구성」(박기분), 「청년혁명사의 계보학-‘동학’에서‘촛불’까지」(이명원), 「모든 권력을 자율교육에게로!」(에듀 팩토리 집단), 「대학의 위기와 대안적 학생운동의 전망」(홍명교)등이 실렸다.

편집위원회의 글은‘학생운동’에서‘청년운동’으로 주체의 이동을 꾀한 점이 특이하다. 이들은“기존의 학생운동은‘노동자운동/사회운동으로서의 학생운동’이라는 문제의식을 전혀 담보하지 못하는 것 같기 때문”에 청년운동을 고민했다. 새로운 감수성과 욕망의 배치로 특징지어지는 전복적인 운동 형태를‘청년운동’에서 읽어내고자 하는 <문화/과학>의 열망이 감지된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가부장주의적’의 다른 말이라고 할 수 있을‘남성중심적’혹은‘남근이성중심적’으로 운영돼왔고 그로 인해 비판받아왔던 주류 진보진영이 자기성찰과 새로운 전망 찾기의 계기를 마련하는 하나의 시도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면서 <진보평론>은‘가족·사회·국가의 가부장제를 넘어서’를 전진 배치했다. 「가부장적 통치체제와 노동자 운동의 조직문화」(신병현), 「생태여성주의의 가부장적 패러다임을 넘어서」(박진희), 「여성주의 연구에 국가 연구가 필요한 이유」(최영진), 「퀴어가족· 가족, 사회, 국가 사이의 거리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서동진) 등의 글이다.

박진희의 주장을 들어보자. 자연을 여성과 동일시하고 생태계에 가해지는 폭력을 정당화하는 가부장적 질서에 의해 환경과 여성의 불평등 문제가 발생한다. 자연친화적인 여성 중심의 사회질서 구축을 넘어, 다른 자연관과 과학 실천을 구성하는 과정을 통해서만이 생태환경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5·16군사쿠데타와 한국 보수주의

<문화/과학>, <진보평론>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 곳은 <문학동네><역사비평>이다. <문학동네>67호의 특집은‘우리 시대, 정념의 사회학-젊은 인문학자들의 시선’이다. 「사회학은 왜‘감정’에 주목해야 하는가」(정수남), 「허무를 허물기—파국 시대의 정념에 대하여」(문강형준), 「선물의 정념과 情의 유물론」(황희선), 「불안 불안 불안—키르케고르의 세 아들에 대하여」(조효원)의 글이 모였다. 이외‘작가의 눈’에 수록된 히라노 게이치로의 글「개인적인 기록-‘동일본 대지진’」도 시의성 있게 읽힌다.

이 글은 <창작과비평>에 실린 사까모또 요시까즈의「인간의 오만함: 대지진과 원전사고를 겪으며」와 교차해서 읽을 만하다. 5·16군사쿠데타 50주년의 해를 맞아 <역사비평>은‘한국‘보수주의’를 묻는다’를 특집으로 내놨다. 이들은 한국의 주류 보수들이 5·16군사쿠데타 이후 군사정권이 수행한 산업화 과정 속에서 형성됐다고 보면서, “이들이 보수적 사고를 다양한 방식으로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박정희 신드롬, 뉴라이트 역사논리, 개발독재 불가피론, 안보논리, 성장주의, 지역주의 정치행태, 지도층의 무책임성과 비도덕성 등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한국 보수주의의 이념적 특징」(김병곤), 「박정희 정권과 한국 보수주의의 퇴보」(이나미), 「박정희 정권기 개발독재 비판」(정일준) 등을 실었다. 비교역사사회학적 방법론과‘통치성’의 관점에서 박정희 시대를 분석한 정일준은 박정의 정권기의 개발독재가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었고, 급속한 경제성장이 개발 독재 때문도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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