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식 선생은 1916년 경남 거창에서 출생했다. 1936년 동래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渡日, 1941년 와세대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식산은행에서 잠시 근무하고, 동아대, 부산대, 동국대, 농협대 교수를 거쳐 서울산업대에서 재직하던 중 1978년 5월 17일 오랜 지병으로 작고했다.
‘서양경제사론’(1978, 서문당 刊)은 원래 ‘서양’이 아닌 ‘일반’ 경제사론으로 기획했다고 전해진다. 얼마전 타계한 경제사학계의 조기준 선생은 그를 “한국 농업경제학계의 태두였다”라고 회고한 바 있다. 대표적인 저술로는 ‘서양경제사론’ 외에도 ‘근대농업경제학’(1964, 청구출판사 刊), ‘농업협동조합론신강’(1966, 일신사), ‘농업정책론 : 경제이론과 정책제요’(1968, 일조각), ‘아세아적 생산양식 논쟁’(1978, 평민사 刊) 등이 있다.'서양경제사론'(서문당 刊)은 1978년에 발간된 최종식 선생의 유작이다. 그 이후 최근까지 이 책은 이 땅에서 대학에 입학해 우리 시대의 모순에 오열했던 많은 사람들이 그 모순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기본서로 읽혔다. 이 책이 진보적 관점에서 근대자본주의 경제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었기 때문이다.
이 책으로부터 우리는 아시아적 생산양식논쟁을 통해 아시아사회의 특수성을, 그리이스 로마의 고전고대제와 서양 중세 봉건제를 구조를 통해 전근대 사회의 구조와 우리 사회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또 자생적 이행의 전제조건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영국과 동부독일의 농업개혁의 차이와 '국지적 시장권이론', 이행의 '두 가지 길' 논쟁 등을 통해 한국사회의 자생적 근대화의 가능성과 한계를 보는 기본 관점을 획득했다. 또 독점자본주의와 국가독점자본주의 및 제국주의를 이해함으로써 20세기 자본주의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기본 관점을 획득함으로써 각 부문의 원전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한국자본주의 가능성과 한계 파악 선구적 역할
그러나 지금 돌이켜 세밀히 볼 때 이 책이 정리한 그 관점의 영향력만큼이나 그 한계도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선진사회의 과거 및 현재는 후진사회의 미래상을 보여준다’는 명제 아래 영국 자본주의의 형성과정을 典型으로 하는 문제의식이 영국경제의 발전을 중세 이탈리아와 플랑드르지방의 발전에 뒤이은 것으로 파악하는데 어려움을 준 것 같다. 농업의 개량과 제조업의 발전이 중요하되, 그 여건으로서 상업의 발전이 갖는 의의를, 특히 대외교역을 통한 시장 확대와 학습효과가 갖는 의의를 간과하게 됏다. 자생적 발전의 경로를 지나치게 강조하게 됐던 것이다.이러한 측면은 또한 영국의 그러한 발전이 그 내부적 사회분화 외에 당시 영국보다 앞선 플랑드르의 모직물과 인도의 면직물 제품 유입을 차단하고, 나아가 인도의 섬유산업을 비경제적, 비시장적 방식으로 파괴한 영국의 중상주의정책을 소홀히 하게 했다. 즉 후진사회가 초기 공업화에 필요한 적절한 수준에서의 관세, 조세 등의 자주권을 F.리스트 등의 독일 역사학파나 미국 초대 재무장관 A.해밀턴의 정책 등 다른 곳에서 찾게 하지 않았을까. 혹은 이미 언급했음에도, 아래로부터의 길, ‘국지적 시장권’론을 지나치게 주목한 독자에게 잘못이 있었을까.
중상주의 단계 이래 선진 시장경제의 수탈이 어떠한 것이었는지가 독점자본주의 하 제국주의론의 관점에 가려짐으로써 처음부터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비시장경제의 파괴, 유린에 기반을 두고 발전해 왔음을 이 책을 통해 주목하지 못한 것도 또한 강조점을 잘못 이해한 독자의 불찰이었을까? 『서양경제사론』이란 제목에서도 드러나지만 각 논점의 대립을 통한 이해라는 의도 때문에 ‘근대자본주의’의 인간성 파괴 과정에 대한 생생한 증언은 충분히 접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典型’과 그 위력에 대한 주목은 한국사회의 자본주의발전 과정의 양적 측면에 대한 현혹으로 이어져, 다수의 논자들이 식민지 하 자본주의의 양적 성장의 뒤-예컨대, 인구의 1/5이 해외유랑-를 소홀히 하게 되었다. ‘자본주의’의 형성과정이라 하지만 내용은 W.W.로스토우의 경제성장사학이 돼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 그 구조의 파행성과 왜곡성을 간과한 사이에 한국경제는 그런 파행성을 폭력적으로 시정하고 새로운 자본주의 ‘성장순환’을 시작하고 있다.
반면 계급사회의 형성 과정 못지 않게 각 시대의 경제가 그 세부발전 단계에 필요한 기술혁신, 이를 가능케 하는 사회경제적 환경(제도, 법률)과 그 환경 변화의 조건과 동력은 무엇인지는 파악할 수 없었다. 또 시장경제의 발전에 필요한 화폐경제의 발전, 계약사회의 형성에 관해서는 그다지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계급연구 결실 위에 '일반경제사' 구성할 때
이렇게 볼 때 이제 역사를 조망함에 있어서 ‘경제사’가 ‘일반사’를 선도하는 위치에서 벗어나 거대 패러다임과 경제결정론을 유보하고 그냥 ‘경제’사로서 솔직히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고, 개별사 및 다양한 연구시각의 분출과 집적 이후에 새로이 학제적 통합을 시도해야 하지 않나 생각하게 된다. 물론 그런 가운데에도 오늘날 소위 신경제의 대두에도 불구하고 계급사회가 더욱 강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 책의 관점인 계급중심의 경제사관은 여전히 기본이란 것도 또한 부인할 수는 없다.결국 새로이 풍부해진 연구시각, 인류보편적인 언어로 우리 근대사의 온갖 고통을 정리할 수 있을 때에, 우리는 최종식 선생이 간절히 원했으나 죽음으로 뜻을 이루지 못한, 세계사의 전개과정을 파악하는 ‘일반경제사’를 구성할 수 있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 본다.
김재훈 / 대구대 경제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