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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풍경] ‘공학과의 만남’ 내건 네 권의 책 들여다보기
[책들의 풍경] ‘공학과의 만남’ 내건 네 권의 책 들여다보기
  • 최익현 기자
  • 승인 2002.06.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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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12 17:01:05
‘나노 기술이 미래를 바꾼다’(이인식 엮음), ‘21세기를 지배하는 10대 공학기술’(장호남 외 지음), ‘세계가 놀란 한국 핵심산업기술’(서정욱 외 지음), ‘전통 속의 첨단 공학기술’(남문현?손욱 지음) 이 세 권 모두 김영사가 내놓은 책이다. 사실은 김영사 혼자서 내놓은 건 아니다. 해동전자기술진흥재단(대표 김정식 이사장)의 지원을 업고 한국공학한림원과 함께 기획 발간했다는 게 정확하다.
월드컵이 한창 시끌한 때 ‘공학과의 새로운 만남’이란 기치를 내걸고 이걸 새삼 내놓다니 참 재미있다. 발간의 변? “우리의 생활 곳곳에서 숨쉬고 살아있는 공학의 실제 모습을 담고자 기획”했으며, “실제 우리의 삶에 가장 밀접하게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낯설고 멀게만 느껴지던 공학을 대중들이 편안하고 가깝게 느끼도록 해보자는 것”이 목적이라는 설명이다. 1차적으로 9권으로 얼굴을 내밀지만, 계속 발간하겠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말.

낯설고 먼 존재에서 한결 가까운 존재로

1차분 9권의 나머지 책들은 이렇다. ‘로보사피엔스’(피터 멘젤 외 지음?신상규 옮김), ‘공학기술도 사람의 일, 실패에서 배운다’(김수삼 외 지음), ‘알쏭달쏭한 양자컴퓨터의 세계’(톰 지그프리드 지음?고중숙 옮김), ‘알기 쉬운 생물 정보학’(김석관 지음), ‘인류의 미래: 에너지와 환경’(최기련?박원훈 지음) 등이다.

한국공학한림원이 지난해 공학기술의 대중화를 선언하면서 화제가 됐던 이 ‘공학과의 만남 시리즈’는 깊이에 대한 그리움보다는 넓이에 대한 동경이 더 강렬하다. ‘이공계 기피 현상’이라는 유령이 배회하는 우리 풍토에서 본다면, 분명 이것은 ‘계획된’ 치밀한 전략으로 보인다. 책의 표제들이 한결같이 좀 ‘선정적인’ 모양을 띤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사실대로 말한다면, 이 책들이 겨냥하는 곳은 아카데미의 내부가 아니라 바깥, 소문에 지배당하는 역동적인 대중들 아닌가. 그렇다면 ‘10대 공학기술’이라던가, ‘세계가 놀란’, 혹은 ‘미래는 바꾸는’ 등의 수식은 얼마쯤 봐줄 수 있는 수사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이 시리즈들이 맹숭맹숭한 것만은 아니다. 가장 먼저 얼굴을 내민 ‘나노 기술이 미래를 바꾼다’를 보자. IT, BT, NT등 국가전략과학기술 부문의 무성한 소문의 벽을 뛰어넘어 나노기술이 가져올 ‘빛과 그림자’를 일별해준다. 도대체 ‘나노가 뭔지 잘 모르는’ 이공계 외부인들에게 친절한 안내서 역할을 하는 셈이다. 저자들의 목소리를 따라가보자.

“이미 ‘네이처’나 ‘사이언스(Science)’와 같은 권위 있는 학술 잡지에서도 단순히 새로운 나노 물질을 합성하는 연구 결과보다는 나노 물질 특유의 새로운 기능성을 발견하는 연구 결과를 선호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 새로운 기능성을 발견하여야만 앞으로 이러한 특성을 이용한 나노 소자나 장치의 개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분야에서는 새로운 나노 입자, 나노 선, 나노 다공성 물질 등을 개발하고 이러한 물질들로부터 새로운 특성을 찾는 연구가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엮은이들이 이렇게 말하는 이상, ‘나노 기술’이 우리만의 관심사가 아니라, 세계가 눈 부릅뜨고 침을 삼키는 부문임을, 혹은 그와 관련된 공학 부문임을 알 수 있겠다. 그런데 무슨 소린가. 이미 이것조차 40여 년 전 과학자들이 예견할 일이라니. 파인만 교수 같은 이가 1959년에 나노기술의 가능성을 물리학적 이론으로 설파했다니!

좀 더 넘겨보자. ‘공학과의 만남 시리즈’ 전체의 특징이기도 하거니와, 공학기술에 대한 소개와 설명이 ‘대중’을 의식, 지나치게 평이하게 기술된 측면도 없지 않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기술’의 긍정적 측면만 환하게 비춰주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을 눈치채는 일일 것 같다.
이 책의 4부가 단적인 부분이다. 미래 세계란 아직 오지 않은 세계이며, 과학기술이 반드시 장밋빛 세상만 연출하는 건 아니다. 그림자, 불안, 공포, 소멸 따위의 넓게 퍼진 ‘의혹’도 존재하기 마련. 예컨대 컴퓨터 과학자 빌 조이의 ‘왜 우리는 미래에 필요없는 존재가 될 것인가’와 같은 글을 함께 실어, 기계 테크놀로지의 역작용을 경고하고 있기도 하다. 빌 조이는 나노 기술의 발달이 궁극적으로 정신을 지닌 ‘나노 로봇’을 탄생시킬 것이며, 이들이 자기 복제를 통해 자신들을 증식하게 되면,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한다고 ‘묵시론적 예언’을 던졌다.
‘21세기를 지배하는 10대 공학기술’은 국내 학자들의 입김을 담아냈다. 장호남 한국과학기술원 교수(생명화학공학과)를 비롯 최항순 서울대 교수(조선해양공학과), 이상은 아주대 교수(환경도시공학부), 현재천.이관영 고려대 교수(화공생명공학과), 박영준 서울대 교수(전기공학부), 이문호 전북대 교수(전자정보공학부), 신성철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물리학과)와 현장 실무에 밝은 권오준 포스코 기술연구소 부사장, 유명면 자동차부품연구원 연구본부장, 여종기 엘지화학 사장, 강세호 에스이(주) 사장이 저자다. 철갈, 자동차/조선, 에너지/환경, 화공신소재, 디지털기술, 반도체, 정보통신, 전자상거래/콘텐츠, 바이오산업, 나노기술 등 10가지 핵심기술이 과연 21세기를 지배할지는 더 두고봐야 하겠지만, 이것이 큰 그림을 그려내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책에 그려진 청사진은 지나치게 밝기만 하다. 너무 투명해서 ‘이것이 최선일까’라는 고뇌어린 목소리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부정적 측면도 자세하게 소개

‘세계가 놀란 한국 핵심산업기술’은 앞의 책과 겹쳐있다. 철강, 자동차, 반도체, 이동통신 등 한국의 핵심 산업기술을 압축했기 때문. 이구택 포스코 사장, 김천욱 연세대 교수(기계공학과), 최영락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그리고 서정욱 전 과학기술부장관이 저자로 참여했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공학의 정체성이다. 서정욱씨에 따르면 공학이란 “과학의 원리를 응용하여 인간의 생활을 안락하고 풍요롭게 하는 물질, 제품, 시스템,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삶의 질을 높이는 실용 가치, 경제 가치의 창출에 목적이 있다. 여기에는 ‘공학인’의 자부심 같은 것이 엿보인다. “굶주린 민생을 배부르게 하고 초토화된 국토를 재건하는 데 공헌했다”는 저자들의 목소리가 그렇다. 우리가 노력만 한다면 최첨단 제품 도전이 가능하다는 긍지가 책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앞의 책이 오늘날 한국의 리딩 산업기술을 소개했다면, ‘전통 속의 첨단공학기술’은 전통문화에서 다시 발견한 ‘공학기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국산업기술사학회의 학술활동의 연장선에 이 책이 서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민족 고유의 과학기술 유산 가운데 대표적인 유물 속에 숨어 있는 공학적 요소를 발굴해 그 현대적 의미를 조명”한 것. 남문현 건국대 교수(전기공학과)와 손욱 삼성종합기술원 원장이 집필했다.
이들의 시선은 자유롭게 역사의 시간을 유영한다. 멀리 가야의 철제 갑옷과 청동거울을 비추는가 하면, 조선시대의 측우기와 화차, 신기전에 눈을 맞추기도 한다. 신라의 목판 인쇄기술과 고려대장경 등 인쇄기술문화는 빠뜨릴 수 없는 부분. 금속공학, 시계와 시간 측정, 건축, 측량과 통신, 인쇄기술 등 오늘날 한국 공학기술의 젖줄이 될 수 있는 기원을 더듬었다. “한민족 고유의 과학기술 발전과정에 대한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조사와 정리가 이루어져 알게 모르게 소실된 문화유산을 복원하는 사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저자들은 교육연구기관으로서 산업기술박물관 설립을 주장했다.
최익현 기자ihchoi@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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