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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란 103종 분류 …“기초학문, 장학제도 넓혀야”
야생란 103종 분류 …“기초학문, 장학제도 넓혀야”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1.06.08 1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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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_ 『한국의 난과 식물도감』펴낸 이남숙 이화여대 교수

 

 

큰방울새란, 으름난초, 광릉복주머니란, 애기천마, 보춘화, 영아리난초, 지네발란, 풍란 .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103종의 난과 식물(난초)를 분류학적으로 정리한『한국의 난과 식물도감』(이화여대출판부, 2011.5)이 출간됐다. 저자는 식물분류학을 전공한 이남숙 이화여대 교수.  

 

책은 364쪽 분량으로 그렇게 두텁지 않지만, 출간되기까지 10년 시간이 걸렸다. 저자가 직접 십여 년 동안 한라산에서부터 백두산까지 한국 야생란의 서식지를 찾아다니며 문헌과 표본 조사, 서식지 조사, 난의 다양성 확보와 실험을 바탕으로 한반도에 자생하는 난과 식물을 학술적으로 총정리한 난과 식물 도감의 결정판이다. 난과 식물 전공 학자에 의해 처음으로 집필된 이 도감은 한국에 자생하는 난과 식물의 종류와 식물명, 특징 및 분포가 체계적으로 정리된 정통 한반도 난과 식물지로서 값지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10년 누빈 결실

사진 위주인 기존의 도감들과는 달리 이 도감의 가장 큰 특징은 서식지에서 촬영한 식물 사진과 함께 난의 세밀화와 꽃의 해부도를 나란히 배치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는 점이다. 이 세밀화들은 난과 식물만 25년 이상 그려온 일본의 원로 세밀화가 나카지마 씨가 직접 한국을 방문해 현미경으로 꽃을 관찰하면서 그린 것으로, 난과 식물의 형태적 특징을 쉽고 정확하게 보여준다.

세밀화를 어째서 일본 작가에게 맡긴 것일까. “세밀화 전시회에 가서 가격을 알아보니 단가가 너무 높아 엄두를 내지 못했죠. 일본 츠쿠바 식물원에서 열리는 심포지엄에 참석했다가 거기서 나카지마 선생을 알게 됐어요.”나카지마 씨는 네덜란드에서 라인 드로잉을 제대로 공부한 일본 작가로 알려져 있다. 세밀화와 더불어 해당 난을 빼어나게 보여주는 사진들도 일품이다.

이 교수의 전문가적 설명, 나카지마 씨의 세밀화, 그리고 김유성 씨의 많은 사진들이 이번 도감 완간의 숨은 공신이다.10년의 시간이 걸린 데는 사연이 있다. 대학원에 진학했을 당시 난을 공부하고 싶어 했지만 재료 확보가 안 돼 있어 포기해야 했다.

 

 

애기천마, 천마와 같은 속으로 오해될 수 있으나 난아과에 속한다. 제공=이화여대출판부

 

“식물 공부를 시작한지 이십수 년이 지난 후에야 첫사랑이었던 난에 다가갈 수 있는 기회와 용기가 생겼어요. 지난 십여 년간 한반도에 자생하는 야생란을 분류학적으로 정리하고, 자원을 여러 각도에서 확보하며 유전자 은행을 구축하겠다는 일념으로 전국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1992년 브라질 리우에서의 생물다양성 협약이 한 계기가 됐다.활용할 수 있는 자원에 관한 정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당시 국내에서는 식물 자원이 어느 정도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2000년 무렵 국가에서 진행한‘식물지’를 만드는 프론티어 사업도 그에게 힘이 됐다.

이후 한국 야생란의 종 보전을 위해 고심하던 이 교수에게 2007년 당시 학술진흥재단 정책과제(한국동식물도감 편찬)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식물학자들의 로망은‘식물지’를 집필하는 것이죠. 그걸 생각하면서 도감 원고 작업을 수행했는데, 이번 도감의 바탕이 된 거죠.”

난은 관상용과 약용으로 쓰여 민간에서 마구잡이 채취로 몸살을 앓고 있는 식물이다.“난은 국제적으로도 무역 규제 대상 식물입니다. 연구를 위해 채집하지만 ,일일이 다 환경부에 보고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죠.”연구를 위해 난을 보유한 주민들을 찾아가보면 딜레마에 빠지기도 한다.

한 번은 지네발란을 찾아 남쪽 지방을 갔을 때다. “그분들이 고무 다라에 지네발란을 가득 채워놨더군요. 야생 군락지에서 통째로 캐왔다는 걸 알수 있었어요. 아찔했죠. 야생화를 팔아 생계를 꾸려가는 분들인데, 표본 조사를 할 수 없으니 이 분들 찾아가는 거고, 그러면 결국 또 불법을 묵인하는 일이 되는 딜레마가 있죠. 법적으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멸종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야생란은 가져다 기를 수 없다고 한다. 그렇게 건강하고 아름답게 자라기 위해서는 난 자체의 힘만으로는 안 된다는 설명이다. "난이 잘 자라려면 상호 작용하는 균이 필요하거든요. 옮겨 기르면 3년 정도 밖에 못 살아요.”

제주도에서 백두산 까지 직접 현장을 누벼야 했기 때문에 에피소드도 많았다. 백두산 갔을 때 북방 진드기에 물려 되게 혼이 난 적도 있었다. 진드기는 북쪽으로 갈수록 해가 크다. “처음에는 단순한 감기 몸살인 줄 알았죠. 갑자기 열나는 걸 보고, 아 이게 진드기에 감염된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감염내과를 찾아갔어요.”

사흘 분량의 약을 처방받았다. 처음에는 약이 잘 드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약을 먹지 않았더니 다시 39도까지 열이 올라 응급실에 입원하고 말았다. 25일을 꼬박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갑자기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도감을 출간했지만 걱정거리가 많다. 하나는 남획과 개발사업으로 점점 자리를 잃어가는 야생란의 생존에 대한 고민이다. 환경부 등에서 사라져가는 야생란을 조직배양을 통해 복원하는 작업을 하고 있지만, 이렇게 작업하면 유전자 다양성이 떨어진다고 우려한다.

“개체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전자 다양성 확보가 더 중요합니다. 유전자가 단순하면 쉽게 멸종할 수 있기 때문이죠. 유전자가 5개 있는 것과 10개 있는 것, 후자가 더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겠죠.”이 교수가 이후 작업 과제로 한국의 야생란과 외국 난을 비교 연구하고 싶어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또 하나 이 교수가 걱정하고 있는 문제는 식물분류학을 공부하는 후속세대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학문적 상황이다. “요즘 산에 가고 땀 흘리는 거 좋아하는 학생 별로 없어요. 의전문대학원같은 곳으로 다들 눈이 가죠. 베트남, 인도 등에서 학생 유치하는데 어려움이 많죠.”이 교수는 정부가 좀 더 기초과학에 구체적인 지원을 해주길 기대한다.

“장학제도를 잘 마련해줬으면 좋겠어요. 전에는 교수들이 각종 프로젝트로 학생들 서포트 많이 했어요. 그런데 과제와 학문은 다른 거 잖아요. 때로는 누굴 위해 하고 있나, 하는 회의도 들죠. 장학제도를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야생란’은 척박한 기초과학의 메타포 

『한국의 난과 식물도감』이란 力作은 이 교수 혼자만의 결과물이 아니다. 열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 기초를 튼튼히 다진 사람들이 함께 한 결과다. 이 교수의 연구실 창가에는 난초 화분이 하나 놓여 있다. 난이 꽃을 피운지 세 달째다. 연구실 복도에도 난 사진이 걸려 있어, 연구기기로 가득한 공간의 분위기를 바꿔주고 있다. 집에도 난초가 잘 자라고 있다.

 비결을 묻자 특별한 게 없다고 대답했다. 볕이 잘 들게 하고, 물을 제때 줄 것, 그리고 적절한 비료를 주는 일. 어쩌면 이 교수가 대면해왔던‘한국의 야생란’은 한국 기초과학의 메타포라는 생각이 퍼뜩 스쳐갔다. 기초학문 육성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세달 째 맑고 고운 꽃을 맺고 있는 난초를 가꾸고 있는 이 교수는 그 정답을 알고 있는 것 같다.

 

글·사진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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