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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들의 절망
유학생들의 절망
  • 이노미 성균관대 비교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 승인 2011.06.08 15: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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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방대학의 한 강의실에 들어서다 중국 유학생과 한국인 과대표가 서로 목소리를 높여 언쟁을 벌이는 장면을 목격했다. 두 명의 학생을 불러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과대표가 정한 시험시간에 중국인 유학생이 불만을 토로했다는 것이다. 어렵사리 결정한 시간을 중국 유학생이 바꾸어줄 것을 요청하자 과대표가 역정을 내며 “중국인 주제에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며 공개적으로 망신을 준 모양이었다. 중국인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미엔츠(체면)를 상실했을 경우의 수치심을 한국인과대표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중국과 한국의 문화적 차이를 설명한 뒤 두 학생이 서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일로 매듭을 지었지만 이러한 캠퍼스내의 문화적 충돌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국내 대학의 국제화를 위해 정부의 주도하에 2004년부터 시행된 ‘Study Korea Project’로 인해 당시 1만 7천여 명에 불과하던 유학생 수가 2011년 현재 8만8천670명에 달해 2012년 10만 명 유치목표에 근접하고 있다. 하지만 외국 유학생의 양적 팽창에 비해 실질적인 다문화 이해에 대한 커리큘럼은 아직 초보적인 단계로 캠퍼스내의 문화적 다원화는 멀어만 보인다.

칸트는 이방인이 다른 사람들의 영토를 방문할 때 적대적으로 대우받지 않을 권리를 ‘환대(hospitality)’라 논명했다. 데리다 또한 이방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환대’를 주장하지만 캠퍼스에서의 이방인인 유학생에 대해서는 여전히 편견과 견제가 암암리에 도사리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특히 유교문화권인 아시아 지역 유학생과는 달리 최근 급증하고 있는 중동지역 이슬람 문화권의 유학생들은 학업의 어려움과 함께 차별과 편견으로 인한 이중적 고통을 겪고 있다. 실제 국내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이슬람의 이미지 조사결과에 의하면 전체 응답자의 약 70%가‘테러’와‘폭력’의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내고있다. 이슬람에 호감이 있다는 의견은 9%에 못 미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예컨대 부산의 한 대학에서는 무슬림 학생들이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MT에서 음주를 강요하거나 심지어 대구의 한 대학에서는 우즈베키스탄 학자들을 초청해 삼겹살로 저녁을 접대하다가 아무도 손을 대지 않자 급히 음식을 바꾸는 소동을 벌인 적도 있다. 무엇보다 무슬림들의 갈등이 더욱 심각한 것은 한국 학생뿐 아니라 교수들과의 문화적 갈등이 함께 중첩돼 있다는 점이다.

우연히 무슬림 유학생들과 함께 한 모임에서 서울의 한 명문대에 다니는 파키스탄 학생은 강의 중 ‘이슬람을 테러집단’이라고 한 교수님께 항의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대구의 한 대학에서 박사과정 중인 이집트 학생은 교수가 “교회에 나오면 추가 점수를 더 주겠다”라고 말해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아프가니스탄 출신 학생은 강의에 쫓겨 면도를 못해 수염이 자라자 학생대표와 교수가 함께 “테러리스트 같아 무서워 보인다”라며 수염을 깎을 것을 종용하며 심한 모욕을 주어 충격을 받고 결국 면도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 같은 오해와 문화갈등은 문화적 지식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데서 비롯되므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국 타문화의 문화적 차별성과 보편성을 정확히 꿰뚫어 보아야 한다. 아울러 문화적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담당교수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터이다.

“이질적인 문화가 들어와 융합함으로써 상이한 문화가 서로 섞이고 어우러지는 캠퍼스의 혼종성은 미래교육의 창조성을 향한 생명력의 잉태를 의미한다.”

외국인 유학생들은 이미 우리 안에 들어온 또 다른 우리들이다. 서로 다르지만 연동돼 있으며 서로를 역동적으로 변화시키는 다양성은 우리 교육의 미래이다. 즉 단일문화의 반복적인 복제보다는 이질적인 문화가 들어와 융합함으로써 상이한 문화가 서로 섞이고 어우러지는 캠퍼스의 혼종성은 미래 교육의 창조성을 향한 생명력의 잉태를 의미한다. 주지하다시피 21세기 지식기반 산업에 필수적인 창의성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에서 만개된다. 때문에 세계시민의 지위가 부여되는 사회적 실현을 위해서는 더 이상 이유 없는 혐오감이 표출돼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외국인 유학생들 또한 한국적 가치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진정한 배려의 상호문화주의(Interculturalism)적 태도를 지향해야 한다.

상호문화주의는 우리와 다른 타자의 그 무엇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관심이며 호기심으로 서로에 대한 연대의식과 소통의 발로이다. 이는 마치 우리의 전통놀이인 ‘널뛰기’와 흡사하다. 상대 몸무게에 맞추어 널판의 길이를 조정해야 널을 뛸 수 있으며 혼자서는 결코 널을 뛸 수 없다. 양보와 타협이 없어도 안 되며 욕심을 부리면 높이 뛰어 오를 수 없다. 서로 발을 굴러 주고받지 않으면 고립되는 것이다. 먼 곳을 보기 위해 함께 힘차게 발을 구르는 널뛰기는 차이에 대한 존중이며 다르지만 평등하게 살기위한 상생의 모색이다. 서로에 대한 편향을 제거하고 서로의 올바른 앎이야 말로 우리와 그들 유학생의 리좀식 연대관계를 향한 경계 넘기의 시작인 것이다.

캠퍼스의 ‘주인’과 ‘유학생’으로서의 권력관계에 의한 ‘한국인’과 ‘외국인’이 아닌 ‘새로운 우리’라는 연대의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결국 만사는 변화하며 우리도 함께 바뀌어 갈 것이다.

이노미 성균관대 비교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성균관대에서 문화학으로 박사학위를 했다. 지은 책으로는『시티컬쳐노믹스』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비교문화의 이론과 실제」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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