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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화제]조한혜정 연세대 교수의 '아시아를 욕망하기-글로벌 시대 대중문화 횡단과 정체성의 정치학'
[학술화제]조한혜정 연세대 교수의 '아시아를 욕망하기-글로벌 시대 대중문화 횡단과 정체성의 정치학'
  • 정리 최익현 기자
  • 승인 2002.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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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13 15:57:07

제 34회 한국문화인류학회 전국대회에서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인류학자로서 한국 학문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담은 발제문 '아시아'를 욕망하기 : 글로벌 시대 대중문화 횡단과 정체성의 정치학'을 발표했다. 기존의 학문적 글쓰기와는 다르지만, 인류학에 대한 반성부터 시작해 자신의 학문 활동,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느끼는 문제점들에 대한 생생한 고민이 엿보이는 글이다. 체험을 바탕으로 한 성찰이 돋보이고 또 다른 학문적 글쓰기의 방식을 제출한 것으로 읽고, 발제문의 일부를 게재한다.

"제 34차 한국 문화 인류학회 전국대회," "인류학과 대중문화, 문화 산업," "제 1부 문화의 경계넘기와 지역화," 그리고 글로벌……. 나는 지금 학회 팜플렛을 보고 있다. 한국문화인류학 전국대회를 간 기억이 아득하다.
1979년 문화인류학으로 학위를 하고 귀국했을 때, 그때가 그렇다면 '한국문화인류학회'가 막 만들어졌을 때란 말인가? 그때는 아주 재미있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격조한 걸음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7-8년 전에 인류학의 패러다임을 좀 바꾸어보려는 움직임이 있어서 경주였던가, 워크숍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갔던 기억이 있고, 4-5년 전 '탈분단 시대를 열며: 남과 북, 문화공존을 위한 모색'이라는 주제로 정병호 선생과 분과 모임을 조직해서 인류학전국대회에서 발표했던 기억이 있다.

함한희 선생이 이번 전국대회 주제를 '대중문화와 문화산업'으로 잡으려 하는데, 주제발표인지 기조발제인지를 해 달라고 전화를 했었다. 마침 '한류 열풍' 연구를 하고 있던 때라 해보자고 답은 했지만 좀 막막했다. 학문공동체란 언어가 조율된 공동체를 말하는 것, 오랫동안 조율을 하지 않았으니 어디서 어떤 말을 풀어낼까…….

포지셔닝 페이러를 준비할 생각이었다. 적당한 제목을 기획팀에 보내고는 그 날까지 이야기꺼리를 준비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편집간사가 미리 원고를 달라고 독촉을 한다. 프로그램을 보니 나도 논문발표를 하는 것처럼 되어 있다. 까탈스럽게 굴고 싶지는 않다. 늘 친정처럼 생각하고 있는 곳이니, 오랜만에 내 스타일로 만나보도록 하자.

애초부터 전형적인 형식의 논문 쓸 생각은 없었다. 한국 인류학의 패러다임 전환에 대한 이야기를 대중문화와 문화산업이 '문화'의 지형을 뒤바꾸어 놓은 시대를 놓고 하려던 참이었다. 이것은 실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회인문학자들의 고민이기도 할 것이다.

1) 문화는 인간·인류의 자기형성능력과 관련한 어떤 것이다. 외부세계를 경험하고 인식하고 성찰하는 행위이며 이를 통해 인류·인간은 외부세계를 변화시키면서 생존을 유지해왔다고 우리·인류학자들은 믿어 왔다. 그런데 그 자기 형성 능력은 기술복제세대에, 소비논리와 대중매체와 문화산업 논리에 의해 좌우되는 현대사회에서 급격히 소멸, 퇴화되고 있다.

2) 이는 물론 인류학의 '진화'와 관계가 되는 질문일 것이다. 기술복제시대와 아우라를 이야기한 벤야민과 스펙타클 사회를 이야기한 기드보르와 근대를 만드는 장치들을 섬세하게 기술한 푸코와 아비투스와 상징자본, 그리고 구별짓기를 이야기한 부르디외는 내게는 인류학자들이다. 전지구적 문화지형을 이야기한 아파두라이나 오리지널과 복제품의 구분자체가 소멸한 시대를 읽어낸 보드리야르나 언어체계 밖에서 변화하는 존재를 보자던 들뢰즈 역시 인류학자이다. 그러나 항간에서는 그들을 문화인류학자라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도 나를 인류학자라고 그렇게 열심히 못박지는 않는가 보다.

3) 아파두라이는 똑같은 문화현상이라고 해서 어디나 동일한 것은 아니며 중요한 것은 지역 안에서의 시간성, 근대가 형성되는 역사성임을 강조한다. 지역내의 시간성과 세계차원에서의 시간성이 교차하는, 다중적인 흐름을 읽어내기. 상업주의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이미지들 속에서 역사와 주체가 구성되는 메커니즘을 읽어내기. 개봉 후 금방 80만 명 관객을 동원했다는 '집으로…'의 인기를 분석하는 것은 영화평론가들의 몫일까?

4) “애완동물을 없애면 강남 가족이 해체하고 텔레비전을 없애면 강북 가족이 해체된다.”더 이상 가족이라는 틀이 문화적 재생산의 주요 현장이 아니다. 대중문화와 문화산업이 생산해내는 이미지들과 인터넷 공간은 그간의 지역과 물질적 조건과 가치관들을 지워버리고 있다. 그래서 기존의 인류학자들이 상정해온 경계가 명확한 '지역'이라는 장에서 개발했던 방법론의 '약발'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일상의 변화, 문화의 변동을 이야기하기 위해 글로벌한 미디어와 초국적 자본의 흐름을 읽어내지 않으면 안되고, 하이퍼텍스트 차원에서 현상 읽기, 징후로서의 현상 읽기를 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

5) 특히 터보자본주의적 '발전'을 거친 한국사회에서 문화적 성찰성이 들어설 자리는 극히 협소하다. 성찰적이지 않았으므로 기적적 경제 발전을 할 수 있었던 나라. 한국 문화인류학은 이런 위기 논의가 오가는 시대에, 예기치 못한 일들이 마구 터지는 상황에, 기존의 분석개념이 그런 현실의 뒷북만 치는 시대에, 어떤 이론적 개념을 가지고 어떤 시대를 읽어내고 있는가? 한국 문화인류학은 이렇게 '비성찰적인 문화'의 시대를 읽어내기 위해 어떤 이론과 도구를 만들어내고 있는가?

6) 이는 다시 인류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점검으로 이어진다. '근대 국민 만들기 프로젝트'가 여전히 굳건하게 버티고 있던 시대에, 미국과 소련을 정점으로 한 냉전체제의 인류학을 배우고 귀국한 1960-1970년대 유학파가 만들었던 한국 문화인류학회. 이 학회는 박현수 교수 같은, 1980년대 '민족민중주의적' 성향의 국내산 인류학도들의 욕망을 얼마나 수렴했으며, 김은실·김현미 교수와 같은, '경계 넘기 시대 글로벌·지역 주민 만들기 프로젝트' 시대의 비판적 문화인류학·문화 연구적 인류학을 배우고 귀국한 1990년대 유학파의 욕망을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수렴해 왔을까?
7)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류학 전공자들이 먹고 살 곳이 많아져야 한다면서 전경수 교수는 종종 박물관을 장악해야 한다는 말을 내게 했었다. 박물관을 장악하면 되는가? 인류학도들은 박물관에도 있어야 하지만, 대중매체와 문화산업 분야에, 국가의 문화정책 분야에, 외교관저에, 그리고 경계 넘기를 하는 글로벌 시대의 정체성의 정치학을 논하는 자리에 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 한국의 문화인류학 학부생들은, 또는 대학원생들은 어떤 훈련을 받고 있으며, 졸업 후 무엇을 하면서 즐겁게 일하면서 먹고 살수 있게 될까?
8) 20년 전부터 사회학과에 속해있으면서 인류학과를 만들어볼 시기를 찾아온 나는 그간 서울시내 대학 인원제한에 걸려서 그것을 이루어내지 못했다. 이제 상황은 달라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의 지점 역시 달라졌다. 이제 고민해야 할 지점은 문화인류학이라는 '이미지'이다. 문화인류학이 국민국가시대의 패러다임을 고수하는 학문분과로 이미지화 돼버렸다면? 글로벌 체제를 다루는 개념을 부지런히 개발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주고 있는, 그리고 실제로 그런 연구를 하고 있는 '문화연구'는 어떤가? 연세대에선 이미 협동과정으로 대학원에 '문화학과'를 만들었다. 내가 아직도 문화인류학과를 만들고 싶어한다면 그 이유는 뭘까? '인류학'이 '맥락'과 '기술·스토리텔링'을 중시하기에? 여전히 유효한 '현장연구'에 대한 믿음 때문에?
9) 지금의 현실은 구조기능주의적 관점으로 읽어내기에는 너무 복합적이고 혼돈스럽다. 카오스의 시대. 프렉탈의 시대. 리좀의 시대. 조각들을 맞추어 큰 틀을 보려다가는 아무 것도 못 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작은 주름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오히려 전체가 보일 수 있다. 토론자들이 토론거리를 위해 읽어야 할 글이 필요하다면 문화인류학회지 이번 호에 실릴 나의 논문, '동·서양 정체성의 해체와 재구성: 글로벌 지각변동의 징후로 읽는 '한류 열풍' 담론'이나 아래의 작은 여행기를 읽으면 한다. 내가 오늘 이야기해야 할 주제는 아래의 작은 여행기 속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풀어내는 방식이 다를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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