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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모든 추억을 깡그리 지워간다 할지라도…
세월이 모든 추억을 깡그리 지워간다 할지라도…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 승인 2011.06.07 1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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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42> 쥐

쥐는 무엇보다 남다르게 왕성한 번식력을 지닌 多産하는 포유동물이다. 보통 임신기간은 24일로 한배에 새끼 6~7마리를 낳으며 6주 후면 젖을 떼고, 그것들이 한 달 후면 다시 새끼를 밴다. 말 그대로 幾何級數로 늘어나니 말해서 ‘성공한 동물’이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 그래도 자식 많은 집안이 繁盛하고 인구가 넉넉한 나라가 昌盛한다. 중국과 인도가 말하지 않는가. 우글우글 천덕꾸러기로 여겼던 씨알들이 곧 국력이렷다! 언제나 수업시간에, ‘아들 딸 구별 말고 5~7!’하고 외쳤을 적에 남학생들은 푸근하게 배시시 웃는데, 여학생들은 놀라 나자빠지면서 나를 짐승으로 취급하였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적어도 셋은 낳아야 한다고 평생을 애써 힘줘 말해 왔건만 이제 그만 우리나라인구가 줄게 생겼다. 이일을 어쩌지. 누군가는 멸종하고 말 것이라고 엄포를 놓더라.

쥐 하면 집 주위에 사는 집쥐와 들쥐, 생쥐, 시궁쥐, 곰쥐들을 일컫는데, 쥐는 분류학적으로 설치목(齧齒目, 쥐목, rodent), 쥣과(科)에 들며, 여기서 ‘齧齒’라는 말은 ‘갉아대는 이빨’이란 뜻이다. 끌 모양을 하는 앞니 한 쌍씩이 위아래에 나있어서 그것들이 끊임없이 자라는지라 그것을 닳게 하느라고 잇따라 딱딱한 나무나 전선을 쓸고 갉아댄다. 그러나 그들은 (잡식성이지만) 주로 딱딱하고 야문 곡식이나 열매, 나무줄기들을 먹기에 이가 자꾸 자라지 않으면 시나브로 닳아빠져 몽당이빨이 되고 만다. 

쥐는 세계적으로 약 1천800종이나 돼 젖빨이동물(포유류)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하며, 우리나라에는 다람쥣과 4종과 쥣과 12종을 모두 합해서 16종의 쥐 무리가 살고 있다. 쉬궁쥐를 길들인 ‘래트(rat, 속명은 Rattus)’, 생쥐를 길들인 것을 ‘마우스(속명은 Mus)’(래트가 마우스보다 훨씬 크고 꼬리가 길다), 햄스터(hamster), 기니아픽(guinea pig), 모르모트(marmot) 등 아주 많다. 책상바닥에다 밀었다 당겼다, 이리저리 쓱쓱 움직거리는 컴퓨터손잡이도 ‘마우스’요 미키마우스(Mickey Mouse)도 쥐 아닌가.

흔히들 ‘쥐꼬리만 한 월급’이라고 하는데 사실 얼토당토 않는 빈말이다. 집쥐꼬리는 제 몸통보다 훨씬 더 길쭉한데 어찌 쥐꼬리를 짧다거나 작다·적다하겠는가. 어쨌거나 긴 꼬리는 높은 곳을 감고 오른다거나 전깃줄 따위에서 몸의 균형을 잡는 등 생존에 큰 몫을 한다. 이쪽 바지랑대에서 저쪽 끝으로 이어진 가느다란 빨랫줄을 타고 쪼르르 내달리는 외줄타기 재주꾼 쥐이다!

녀석들은 야행성이라 어둑해지기 시작하면 난데없이 사랑방천장에서 ‘도르르 와르르’ 떠들썩하게 이리 누비고 저리 날뛰기 시작한다. 뿔이 나도 힘겹게 꾹꾹 누르며 한동안 참다가 도저히 더 못 견디고 드디어 헐레벌떡 일어나 할아버지담뱃대로 천장을 꽝꽝 쳐서 호통을 쳐보지만 그 때만 잠시 잠잠할 뿐 금세 판치고 쏘다니니 사람이 제풀에 지치고 만다. 차라리 내가 귀를 닫는 수밖에.

發情期에 걸린 암컷(♀) 한 마리가 먼저 앞서 또르르 달려가면 떠돌이수놈들(♂)들이 떼거리로 허덕허덕 우르르 기를 쓰고 끈질기게 암컷을 바짝 뒤따르니 짝짓기에 눈이 뒤집힌 것이다. 어이없게도 녀석들을 꼬드겨 달래보겠다고, “鼠生員, 잠 좀 잡시다”하고 달래보기까지 하지만 들은 체 만 체다. 오죽했으면 천장구석을 잘라내고 거기에다 맑게 빛이 통하는 유리판을 붙여놔 보기도 했을까.

이 고얀 놈들이 천장을 짓밟으며 마침내 아무데나 오줌을 찔끔찔끔 깔겨대니 종이에 번져 어디 하나 성한 데가 없이 누렇게 얼룩덜룩 지저분한 추상화를 그려놓기 일쑤다. 쥐 무리나 토끼들은 콩팥에서 물을 세게 재흡수하기에 소변이 아주 적고, 그래서 오줌이 무척 진하며, 때문에 지린내가 코를 톡 쏜다.

쥐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생뚱맞게도 어머니가 가위로 싹둑싹둑 내 머리카락 잘라주던 옛날생각이 새삼 떠오른다. 조금도 ‘쥐 뜯어 먹은 것’ 같지 않게 맨둥맨둥 곱게도 까까머리 깎아주셨지. 하염없이 흐르는 모진 세월이라는 지우개가 모든 추억을 깡그리 지워가건만 엄마 생각은 못내 잊혀지지 않고 속속들이 化石처럼 오롯이 남아있는 것이 참 신통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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