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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분위, 견제받지 않는 기형적 권력
사분위, 견제받지 않는 기형적 권력
  • 정대화 상지대 교수
  • 승인 2011.06.07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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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_ '사분위'를 폐지해야 하는 이유

정대화 상지대 교수(정치학)
사학분쟁조정위원회는 줄여서 사분위라고 한다. 사분위처럼 막강한 권한을 가진 정부기구도 찾아보기 어렵지만 권한에 비해 이렇게 덜 알려진 기구도 없다. 그러나 사분위는 법률적으로 미비하고, 행정적으로 모호하고, 정치적으로 조화롭지 않은 기구며, 드러난 그 모습은 공정성과 중립성은 물론 최소한의 교육성마저 저버린 괴물기구다. 은밀하게 운영되면서 자의적인 판단으로 수많은 학교를 황폐화시킬 수 있는 기구가 존재한다는 것도 문제지만, 이러한 반교육적인 기구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된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할 뿐이다.

"은밀하게 운영하면서 자의적 판단"

법률적인 관점에서 사분위는 수많은 위헌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 권력분립의 원칙에 반한다. 임시이사가 선임된 학교에 대한 정이사 선임은 관할청인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의 감독권의 문제로, 행정사항임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장이 11명 중 5명을 추천하게 해 그 추천인사가 위원장에 선임되도록 한 것은 권력분립의 원칙에 반한다.

둘째, 명확성의 원칙에 반한다. 법률의 규정은 국민 누구나 그 내용을 알 수 있도록 명확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상화에 대한 판단 기준이나 정상화됐을 때 누구를 정이사로 선임해야 하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도 없이 모든 권한이 사분위에 백지 위임돼 있다.

셋째, 권한과 책임의 불일치 문제가 있다. 실질적인 결정은 사분위가 하는 반면 교과부는 아무런 권한도 없이 사분위의 결정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떠안는 기형적인 구조다. 권한은 사분위가 행사하고 책임은 교과부가 지는 불일치 상태인 것이다.

넷째, 헌법상 체계정당성의 원리에 반한다. 3부의 수장이 구성하는 헌법기관이나 독립행정기관이 아니면서 사분위와 같은 구성 형태를 취하는 입법례가 없는데, 사분위는 교과부 장관의 소속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장관을 배제하고 3부의 수장이 조직을 구성하는 기형적인 조직이다.

다섯째, 법률유보의 원칙에 반한다. 정이사를 선임하는 문제는 학교법인의 정체성은 물론?교육의 자주성과 공공성의 측면에서 본질적인 사항인 만큼 위임할 수 없는 입법사항임에도 불구하고 사분위에 백지위임하고 있다는 점에서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은 물론 법률유보의 원칙에도 반한다.

행정부 소관인 교육 문제를 사법부에서 책임지도록 한 것은 사분위의 파행성을 극대화시키는 기형적인 법률적 장치다. 결정권을 독점한 사분위가 일체의 권한을 박탈당한 허수아비 교과부 장관을 전면에 내세워 책임 소재에서 벗어나는 기형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기형적인 구조가 무소불위, 안하무인의 사분위를 만든 요인이다.

실제로 사분위는 해당 대학의 요구를 무시하는 것은 물론 국회의 감독이나 교과부 장관의 행정지도까지 거절하는 오불관언의 자세로 일관하고 있으며, 정이사 선임이라는 중차대한 결정과정에서 변변한 청문절차나 현장 확인 없이 자의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다.

사분위가 이렇게 치명적인 결함을 갖게 된 이유는 사분위에 내재한 두 가지 철학적 결함 때문인데, 학교를 교육의 현장으로 바라보지 않고 물건으로 파악하는 교육철학의 부재와 더불어 학교를 사적 소유의 관점에서 운영자의 사유재산으로 간주하는 학교법인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 때문이다. 사분위가 천민자본주의의 소유 관점에 종속돼 교육의 공공성 측면을 파기해 버린 것이다.

탄생 배경부터 운영, 철학까지 기형적

문제의 근원은 사분위가 2007년 당시 무원칙한 정치적 거래의 사생아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당시 로스쿨 입법을 추진하던 열린우리당과 임시이사 파견대학의 문제를 사유재산권의 관점에서 해결하기를 원하던 한나라당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가 자칭 ‘준 사법기관’인 사분위로 실현된 것이다.

사분위의 제도적 결함은 정권의 개혁의지가 작용하던 시점에서는 일부 균형 잡힌 인사로 방어됐지만 보수정권 출범 후 인사의 방어선이 무너지면서 기형적인 제도가 보수적인 인사와 결합되자 즉시 극대화됐다. 사분위가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이 돼 모든 학교를 퇴출당한 비리재단에게 되돌려주는 무소불위의 횡포를 부리기 시작한 것도 이 시점이다. 이 과정에서 사분위는 스스로의 목적 실현을 위해 대법원의 판결을 곡해하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사분위의 문제점은 특정 영역의 결함이 아니라 탄생 배경은 물론 법률, 제도, 운영, 교육철학 등 모든 영역에 걸쳐 나타나는 종합적인 기형성인데다 지금은 스스로 견제 받지 않는 권력으로 자립해 버린 만큼 해체 이외의 방법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정대화 상지대ㆍ정치학
서울대에서 박사를 했다. 『양김시대의 한국정치』를 썼으며 한국정치학회 이사, 한국NGO학회 부회장, 총선시민연대 대변인 등을 지냈다. 상지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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