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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 종로서적 부도 파문
[출판] : 종로서적 부도 파문
  • 교수신문
  • 승인 2002.06.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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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12 16:42:28
김장근 / 출판저널 기자

2002년 6월 4일 오후. 종로와 광화문 일대는 서서히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로 물결을 이루기 시작했다. 2002 월드컵에서 한국이 폴란드를 상대로 첫 경기를 벌이는 날이었다. 종로에서도 광화문으로 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그러나 종로서적 앞을 지나는 이들 중에 종로서적의 셔터가 굳게 내려진 것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셔터에는 ‘종로서적 재단장 안내문’이라는 종이 한 장이 달랑 붙어 있을 뿐이었다. “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독서인 여러분들을 모시고자” 일주일 정도 재단장에 들어간다는 내용이었다. 종로서적 주변으로는 사람들이 군데군데 모여 있었다. 출판사 영업자들이었다. 영업자들은 새벽부터 종로서적 앞에 모여 대책을 고심하고 종로서적에 위탁으로 맡겨놓은 책들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지난 6월 4일 종로서적이 부도를 냈다. 종로서적은 지난 3일 주채권 은행인 외환은행 종로지점에 돌아온 어음 2천 만원과 국민은행 광교지점에 돌아온 어음 40만원을 결제하지 못해 1차 부도를 내고, 4일 추가로 만기가 돌아온 2천8백 만원을 막지 못해 최종 부도를 냈다. 종로서적 쪽은 이날 5천여 만원을 결제하더라도 5일 만기가 예정된 6억 여원의 어음을 막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해 부도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방만한 경영, 예견된 부도
종로서적은 1907년 탄생한 기독교서점을 모태로 1931년 ‘종로서관’으로 출범했으며 종로 한복판에 자리잡아 국내 서점의 상징으로 자리잡아 왔다. 그러나 매장이 여러 층으로 나뉘고 주차 시설이 없어 현대식 매장과 지하철에 바로 연결되는 교보문고, 영풍문고 등 주변 큰 서점들과의 경쟁에서 밀린 데다, 인터넷 서점의 도서 할인판매 전략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해 경영의 어려움을 겪어왔다. 여기에 노조와의 갈등, 창업자 가족간의 갈등이 보태져 능동적 변화를 꾀하지 못한 형편이었다.
출판영업인회의 측은 지난 4월부터 종로서적의 사정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장덕영 사장을 접촉했다고 밝혔다. 장 사장은 이때 “외자유치를 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5월초에 입장표명을 약속했다. 그러나 5월 10일 아무런 통보 없이 출판사들의 지불을 연기했고 5월 17일에야 일부 출판사들에만 지불했다. 이날 7천 만원 정도를 지불하지 못했다. 종로서적 측은 “새로운 인수자가 실사과정 중”이러고 밝혔을 뿐 아무런 공식 입장도 표명하지 않았고 이미 직원들은 50여명으로 줄든 상태였다. 이미 6월초에 부도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출판영업인회의 쪽과 접촉한 장 사장은 “제삼자가 인수 의지를 밝혔다”고만 얘기했다.

“살려내겠다” 대책위 의지
종로서적이 아무런 통보 없이 부도를 내자 각 출판사 영업인들은 당일 아침부터 종로서적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종로서적에 남아 있는 책들이라도 속히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종로서적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종로서적으로부터 어떤 공식입장도 발표되지 않았다. 다만 종로서적의 카드결제 통장을 직원들이 가압류한 상태라는 소식만 전해졌다. 출판영업인회의 측은 급히 장 사장 접촉을 시도했지만 만날 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 출판영업인 회의는 장사장과 피해 출판사, 음반사, 문구회사 등을 참여시키는 대책회의를 소집했다. 그러나 장사장은 이 날 회의에 나타나지 않고 “며칠만 말미를 달라”는 메시지만 전해왔다.
회의에 참석한 3백여개 출판사들은 종로서적 대책을 위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출판사들의 가장 큰 관심은 당연히 종로서적에 남아 있는 책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였다. 물리적인 방법으로 확보하자는 말도 나왔지만, 대책위를 꾸려 협상을 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종로서적이 오래되다 보니 위탁을 증명할 만한 계약서가 대부분의 출판사에 남아 있지 않다는 것도 대책위로 힘을 모으게 된 중요한 원인이었다. 대책위는 음반사, 문구회사 등을 포함 출판단체, 출판유통, 영업 등 출판계 각 분야가 참여해 20여명으로 꾸려졌다. 그러나 현재 출판사들의 정확한 피해액이나 종로서적의 자산규모는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는 상태다.
종로서적의 부도는 2∼3년 전부터 예견된 것이었다는 게 출판사들의 반응이다. 지난 해 1차 부도설이 있었고, 그 뒤로 종로서적은 자구책 마련에 고심을 했지만 결국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지난 5월 도서의 출고정지를 해놓은 출판사들도 많았다고 한다. 대책회의에서 한 출판사 대표는 “종로서적은 (이미 부도를 예상했지만) 오랜 시간 지켜봐왔다. 이번 부도는 1997년 보문당 부도나 2001년 청용서점 부도와는 다르다. 종로서적은 대표서점이기 때문이다. 출고정지를 해놓고도 책을 회수 안 한 것도 그런 이유”라고 말했다.
출판계는 종로서적의 부도가 출판계의 연쇄부도로 이어질까 걱정하고 있다. 종로서적 측은 하루 빨리 입장 표명을 하고 출판계와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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