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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바람·미술 대중화가 ‘신화 박수근’ 낳았다”
“투기바람·미술 대중화가 ‘신화 박수근’ 낳았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1.05.30 13: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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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박수근 正典化분석한 논문 화제_강정화씨 학술대회서 발표

 

‘불우했던 천재화가 박수근’. 정식 미술 교육을 받지 못했던 화가 박수근(1914~1965. 사진)이 세상을 떠난 것은 1965년. 그리고 꼬박 20년이 지난 1985년 그는‘신화 박수근’으로 화려하게 되돌아왔다.

 

박수근의 신화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하나의 ‘정전’이 구축된 것이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언론과 평단의 관심이 미미했던 그가 왜 이렇게 화려하게 ‘신화’로 재구성됐을까.

지난 27일 한국비교문학회·부산외국어대 비교문화연구소·부산대HK 고전번역+비교문화학연구단이 공동 주최한 학술대회‘정전과 비교문학의 과제’에서 박수근 정전화를 분석한 논문이 발표돼 눈길을 끌었다. 강정화 씨(고려대 비교문학비교문화협동)의「서구적 시각체계를 통한 박수근의‘정전화’와 그 과정」이란 논문이다.

불우한 삶을 살다간 박수근은 정확히 사후 20년 뒤‘한국 근대화가의 정상’에 우뚝 서게 된다.“ 메이저 신문의 광고를 통해 전국에 흩어진 박수근의 작품을 대대적으로 다시 모으고, KBS의 후원을 받았던 1985년 20주기 추모전은‘불우했던 화가’에서 ‘신화 박수근’을 창조하는계기가 된다.” 이 추모전은 한국 작가의 작품 전시사상 최고 관람객수를 기록하고, 그해 8월부터 11월까지 20건이 넘는 기사를 내보내며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1970년에 유작전을 할 때 다른 작가들의 작품보다 헐값에 팔리던 박수근의 작품이 1985년에 이르러서는 각계각층의 인사들에 의해 불티나게 팔렸다.”발표자는 이 무렵 박수근이 ‘국민화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고 보았다. 바로 여기서 그는“무엇이 박수근을 한국 근대회화의 ‘정전’으로 만들었던 것일까”라고 묻는다.

발표자에 의하면, ‘불우한 삶’을 살다간 화가 박수근의 정전화 이면에는 그의 미술 세계에 일찍이 매료됐던 마가렛 밀러와 현대화랑 박정자 씨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가렛 밀러는 박수근의 그림을 정기적으로 구입하는 한편 외국에 소개했으며, 현대화랑은‘세상에 주목할 화가들을 소개하는 자리’ 역할을 했던 것이다. 하나 더 덧붙인다면, 박정희 정권에 의해 추진된 근대화(서구화) 프로젝트에 따른 결과도 한몫한다. 즉 당시 대중들이 앓았던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향수’와 이 상실감이 박수근의 작품과 겹쳐져 ‘신화’를 탄생시키는 배경이 된다. 그의 전통적 소개가 향수의 대상으로 치환된 것이다.

그러나 발표자는“신화가 된 박수근의 이면을 살짝 들춰보면, 주변의 소박함을 캔버스에 그려내어 가장 한국적인 화가라는 영예를 얻었지만, 그가 ‘팔기위한 그림’을 그렸으며 그 대상이‘외국인’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서구의 시선에 맞춰 ‘풍경화된 전통의 모습’을 그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라고 조심스럽게 평가한다. 즉 그림을 구매하는 사람들, ‘후원자의 시선에서 그가 자유롭지 못했다’는 평이다. “경제성장과 미술시장의 형성, 그리고 서구화된 시선 속에서 전통으로의 주목은 화가 박수근을 ‘발견’하게 했고, 언론과 상업화랑의 활성화는 신화 박수근을‘발명’하게 한 것이다.”

미술시장에 쏠린 투기바람과 미술의 대중화, 그리고 서구화된 시선을 갖게 된 대중의 향수가 박수근을‘정전’으로 탄생시켰다는 강 씨의 주장이 평단으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을 지 궁금하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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