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17:20 (토)
'잡담회'가 낳은 중국문학사의 또 다른 가능성
'잡담회'가 낳은 중국문학사의 또 다른 가능성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1.05.23 16: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텍스트로 읽는 책갈피_

중국어문학 연구자들이 '잡담회'라는 이름으로 모여 자유롭고 유쾌하게 소통했다. 그 결과는? 김월회 서울대 교수를 비롯, 서경호(서울대), 염정삼(서울대), 홍상훈(인제대), 박소현(성균관대), 박지현(서울대), 김상호(대전대), 류창교(서울대), 이정재(서강대), 나선희(서울대), 백광준(서울시립대), 민정기(인하대) 교수가 내놓은 책 『중국의 지식장과 글쓰기』(소명출판, 2011.5)이 대답을 준다. 이 책은『논어』와『노자』의 글쓰기 분석을 시작으로 중국의 근대적 글쓰기에 이르기까지 중국문학을 폭넓게 가로지는 14편의 논문을 담고 있다. 사전에 준비된 공동연구의 결과물은 아니지만, 다소 띄엄띄엄 놓여 있는 징검다리 모습을 통해 중국문학사의 얼개를 제시했다. 이러한 방식은 우리 학계의 연구 지평을 더 넓힐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서울대학교 중국어문학연구소 연구총서' 두 번째 책이다. 김월회 교수(중어중문학과)의 글 「『논어』와『노자』의 글쓰기 분석」이 초석처럼 놓여 있다. 김 교수의 글을 발췌했다.
 
문제의 연원을 밝히고자 한 이들의 선행 논의를 참고하면, 先秦시기 제자의 문제는 『논어』의 어록체에서 『묵자』, 『맹자』, 『장자』 등의 대화체를 거쳐 『순자』, 『한비자』 등의 논설체로 계승, 발전됐다고 한다. 이러한 시각에는 『논어』를 산문 문체의 표준으로 보고자하는 선입견 혹은 욕망이 깔려 있다. 그렇기에 비슷한 시기에 전혀 다른 풍격을 구현한 『노자』가 운문 위주요, 그 결과 함축적이게 됐다는 그럴듯한 명분 아래 배제돼 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봤듯이 춘추시대만 놓고 보면 『논어』만이 표준적인 글쓰기라 주장할 근거는 없으며 『노자』역시 함축적이라기보다는 무척 논증적이다. 단지 구전 전통과 문전 전통의 길항이 본격화됐던 춘추시대에 들어 『논어』는 구전 전통에 충실하고자 했던 ‘오래된’ 글쓰기였고, 『노자』는 새로이 발흥한 문전 전통을 수용한 ‘새로운’ 글쓰기였을 따름이다.

그래서 『논어』의 개념 정의 방식에서는 앎과 삶이 일치된 곧 언어가 사람의 실제 생활과 혼융돼 있던 구술문화의 특이성이 목도되고, 『노자』의 논증방식에는 앎이 독자적 영역을 구축한, 다시 말해 언어가 자신의 독자적 영역을 구축하기 시작한 문자문화의 특이성이 구현됐던 것이다. 그렇게 『논어』는 현실적이고 실제적이며 실용적인 성향의 글쓰기를 수행했다. 그리고 그 근저에는 각각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에 대한 ‘지적 재산권자’와 그 후예들의 지지 혹은 거부의 입장이 서려 있었던 것이다.

한편 이 글의 문제의식은 다음의 후속 연구가 진척될 시 더욱 구체화되고 실증적일 수 있다고 판단된다. 첫째는 노자는 어떻게 그런 다채로운 시도를 할 수 있게 됐는가에 대한 분석이다. 글쓰기 차원에서 『논어』에 보이지 않는 『노자』의 여러 성취를 문자문화시대의 본격적인 개막이라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와 환원주의적 편향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예컨대 노자의 글쓰기와 지적 경험 사이의 상관성이라든지, 그것과 당시 지식생산제도 사이의 상관성 등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아울러 『논어』와 『노자』의 수사법에 대한 다면적인 비교 분석도 필요하다. 물론 이 글에서 살펴본 논증방식 역시 넓게는 수사법에 포함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공자와 노자의 사뭇 다른 발상의 형식이 언어 차원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구조화되는지, 대답할 수 없게 된다.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더욱 다양한 층위에서 이 두 텍스트에 구사된 수사법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둘째는 초간본 『노자』와 통행본 『노자』의 논증방식을 비교 분석하는 작업이다. 이를 통해 도가 글쓰기의 역사에서 초간본 『노자』에 구사된 논증방식의 수준과 위상을 가늠할 수 있게 된다. 만약 비교 결과 초간본 『노자』의 논증방식이 통행본 『노자』의 그것과 대동소이하다면, 이는 초간본 『노자』를 어엿한 개인의 저술로 볼 수 있다는 의미임과 동시에 춘추시대에 이미 상당할 정도로 문자전승 기반의 글쓰기 환경이 갖춰졌음을 시사한다.

반면에 비교 결과 그 둘 사이에 많은 차기가 난다면, 개인의 저술이란 글쓰기가 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와 한대를 거치면서 발달해온 궤적을 추적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춘추와 전국시대의 글쓰기 환경을 실증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외에도 곽점 楚墓에서 나온 유가 계역의 서적과 『논어』의 논증방식을 비교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를 통해 『논어』에서 『맹자』, 『순자』로 전개되는 유가 계열의 글쓰기 전개양상을 실증적으로 고찰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상고시대부터 선진시기에 걸친 출토유물에 대한 분석도 요청된다. 갑골문이라든지 수많은 청동기에 새겨져 있는 銘文을 고찰함으로써, 특히 구술문화시대의 글쓰기 환경과 방식에 대한 실증적인 정보를 얻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