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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기획] 2000년 문화계 흐름
[테마기획] 2000년 문화계 흐름
  • 김정아 기자
  • 승인 2000.12.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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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생산의 정치적·경제적 맥락이 공론화된 한 해
2000년은 문화가 정치적 경제적 맥락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새삼 확인한 한해였다. 작품생산의 맥락에 대한 이해는 작품성 제고를 위한 정지작업의 의미를 가졌다.

영화: 저예산 방식의 원년, 제도적 장애는 여전

흥행성 오락물과 구분되는 영화가 예술계에 데뷔한 이래 영화 장르는 우리나라 새로운 세대의 예술적 에너지를 꾸준히 흡수하고 있으며,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비상업적 영화의 경우, 고급인력도 증가했고 제작비 지원도 늘었지만 관객의 숫자는 그대로인 모순을 보였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지원한 영화가 등급보류 판정을 받은 사건은 이러한 모순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예이다. 현행 영화진흥법에 따르면 모든 영화는 사전검열의 대상이며, 심지어 인권영화제도 불법행사다. 규제개혁위원회는 실질적인 사전검열제도인 등급보류제를 폐지하고 제한상영관을 설치한다는 영화진흥법 개정안을 의결했고 정부는 개정안을 정기국회에 제출한 상태지만, 파행국회에서 개정안을 처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저예산 디지털 제작방식의 원년으로 기록될 2000년은 심의·검열 등 배급과 상영에 대한 제도적 제한을 넘어설 가능성을 엿보인다는 의미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임상수 감독의 ‘눈물’ 등 주류적 작품에서 문화게릴라와 아마추어 인력풀을 아우르는 인디영화까지, 디지털영화는 저항적 에너지의 다양한 형상화를 실험 중에 있다. 이런 맥락에서 스크린쿼터제의 의의도 재고된 한해였다. 공적자금의 투입으로 유지되는 스크린쿼터제로 보호받는 콘텐츠가 제작비 40억의 헐리우드식 블록버스터라면 문제가 된다는 것. 스크린쿼터의 대상을 저예산 작가주의 영화로 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리기 시작했다.

공연: 비효율적 지원 속에 사라진 진지함

연극을 비롯한 공연예술 전반의 대형화 상업화 경향은 올해도 계속됐고, 그렇지 않은 작품들은 대부분 문화관광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금에 의존하는 양상을 보였다. 지원 받은 작품들의 질도 대부분 의심스러웠다. ‘소액다건식’ 지원제도가 극단과 예술가의 적당주의를 조장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제작환경이 비교적 나아진 한해였지만, 공연의 공공성에 대한 정책적 인식의 부재는 아쉬움으로 남았으며, 지원의 증가는 연출가, 배우, 극작가로 이루어진 예술가들이 작가주의를 회복해야 한다는 주문에 설득력을 싣는 계기가 됐다.

작품내적 측면에선, 연극 고유의 언어로 순발력 있게 현실에 반응하는 작품들을 찾아보기 어려운 한해였다. 오태석 연출의 ‘잃어버린 강’ 등이 통일과 민족 문제에 대한 진지한 형상화로 평가되지만, 연극계가 반응한 현실적 사안의 범위는 대체로 제한돼 있었다.

올해 역시 연극계의 고질적인 병폐들은 해결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원전의 이해 없는 실험극의 난맥상, 제도권의 파행적 드라마 교육, 나아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공소하고 천박한 수사 등은 올 한해 연극계의 부실에 또 하나의 맥락을 제공했다. 청소년의 문학예술교육과 직결되는 발본적인 정부 지원과 함께, 연극계의 자성이 요구되는 한해였다.

미술: 이벤트성 공룡 전시, 비평은 침묵

올해는 광주와 서울과 부산에서 ‘2000광주비엔날레’ ‘미디어시티_서울2000’ ‘부산국제아트페스티벌’이 열려 총 280억원이라는 천문학적 예산이 투여됐다. 그러나 비엔날레에 들이는 엄청난 인적 물적 자원에 비하면 효과 없는 함량 미달의 전시였다는 것이 미술계의 공통된 견해였다. 무엇보다 비엔날레 자체의 위상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많았다. 행정가는 엑스포 같은 대중동원행사를, 전문가는 수준 높은 예술축제를 기획했다는 것. 미술계 인사들이 지방자치단체의 수지타산과 제휴했다는 비난도 있었고, 기획자들은 그들대로 ‘1회용 이벤트’에 내몰려 ‘해결사’로 이용당한 셈이라고 한탄했다.

초대형 비엔날레의 실패는 미술계의 병폐를 직시하고 반성하는 계기도 되었다. 많은 이가 부대행사를 줄이고 예산을 감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행정가의 프로퍼갠더로 시작된 비엔날레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 전문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것. 이런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미술계 내부의 무관심과 정치적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광주 비엔날레 총감독 경질을 둘러싼 잡음들 사이에서 ‘문화권력 사이의 바리게이트’를 극복하고 인재를 활용해야 한다는 자성도 들렸다. 비엔날레에 대한 본격적 비평의 부재가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됐다. 비평과 창작 사이의 생산적 피드백은 다음 전시를 기약하며 숙제로 남았다.

문학: 문학권력의 탈신비화, 공정한 권력행사 기대

올해 문화권력 논쟁이 본격적으로 불붙은 것은 문학계에서였다. 인신공격으로 흐른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문학판’의 권력구조에 무반성적이었던 그간의 문학내적 담론의 한계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유익했다. 권오룡 씨의 ‘권력형 글쓰기에 대하여’에 대한 비판으로 촉발된 ‘문학과지성사’ 에콜 논쟁이나, 황석영 씨가 조선일보가 주관하는 동인문학상 수상을 거부한 사건으로 촉발된 ‘조선일보’ 문언권력 논쟁 등이 대표적인 쟁점으로 떠올랐다. 문단, 문학상, 문학적 관행 등 우리나라 문학제도를 둘러싼 치명적인 문제점들이 공론화되었으며, 문학권력 일반에 대한 공허한 비판이 아닌 권력 행사의 공정성과 정당성에 대한 반성으로 나아갈 가능성도 엿보였다.

문학이 문화사업의 바깥에 있을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이 공론화되면서, 출판자본과 저널리즘의 결정적 영향력에 대한 자성도 나왔으며, 이런 분위기 속에서 기존의 문학권력 구도는 어느 정도 탈신비화됐다.

김정아 기자 anonio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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