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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풍경> 디지털 시대의 문턱에서 만난 '21세기의 인권'
<책들의 풍경> 디지털 시대의 문턱에서 만난 '21세기의 인권'
  • 최익현 기자
  • 승인 2000.10.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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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인권 Ⅰ·Ⅱ(한국인권재단)

세계인권선언 50주년 기념사업위원회가 기획하고 한국인권재단이 펴낸 ‘21세기의 인권 Ⅰ·Ⅱ’는 지난해 2월 제주도에서 열린 학술행사의 성과를 집약하고 있다. ‘성과’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우리 사회의 인권 현황을 폭넓게 점검하고 그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보고서’로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유교적 왕권시대, 일본제국주의 식민통치, 6·25전쟁이후의 반공·냉전·군사독재를 지나오면서 형성된 反인권의 사막이 연출한 그 황량하고도 살벌한 풍경을 다양한 학문적 시각으로 복각해냈다는 점에서 이 작업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시각으로 복각해낸 인권후진국의 살풍경들

알려져있다시피, 세계인권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은 1948년 6월 국제연합(UN) 인권위원회에 의해 제출된 뒤, 몇 차례의 수정을 거쳐 1948년 12월 10일 파리에서 개최된 총회에서 만장일치(소비에트 진영에 속한 6개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남아프리카 연방은 기권)로 채택된 선언이다. 이 속에는 민주적인 헌법이 인정하는 인간의 주요한 시민적·정치적 권리와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가 포함되어 있다. 인간의 시민적·정치적 권리에는 생명·자유 및 신체의 안전에 관한 권리, 즉 임의의 체포, 구금 또는 추방으로부터의 자유, 독립적이고 공평한 재판소에서 공정하고 공개적인 재판을 받을 권리, 사상과 양심 및 종교의 자유, 평화적인 집회·결사의 자유 등이 포함된다. 이 선언에서 채택된 새로운 권리 항목에는 사회보장권, 즉 노동권, 교육권, 공동체의 문화생활에 참여할 권리, 예술을 향유할 권리, 그리고 과학의 발전과 그 혜택을 함께 누릴 권리 등이 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이 위해서 필요한 것으로서 당연히 인정된 기본적 권리’로 요약할 수 있는 이 선언은 역설적이게도 ‘선언’을 에워싼 무수한 폭력의 존재를 환기해낸다. ‘당연히 인정된 기본적 권리’를 위해하고 제약하는 직접적인 폭력은 국가장치와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획일화된 사유의 閉塞이다. 우리의 경우 지난 역사의 상처가 여기에 보태지는데, 그만큼 상황은 열악하기만 하다. 기본권을 제약할 수 있는 발상은 이미 헌법에서부터 엿보인다.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라는 조항이 그렇다. 비상사태의 정의가 포괄적이기 때문에 권력의 자의성이 개입할 수 있다. 생명권과 직결된 사형제도 폐지론이 불거지고 있지만, 아직 국가적 의제로 진지하게 다뤄지지 않고 있다. 가장 큰 문제점으로는 국가 공권력에 대응한 인권 보호라 할 수 있다. 최근 발생한 전교조 교사 알몸 수색과 같은 인권침해행위는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21세기의 인권’은 제1부 인권의 기본문제들, 제2부 국가권력과 인권, 제3부 국가정보활동과 인권, 제4부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제5부 여성의 인권, 제6부 소외된 계층의 인권, 제7부 인권외교와 국제연대, 제8부 과거청산과 인권문제 등으로 구성됐다. 책의 구성을 꼼꼼이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행간의 욕망을 읽어낼 수 있다. 그것은 단순한 인권침해상황을 적시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상황을 개선하려는 욕망이다. 이 욕망을 두고 우리는 ‘인간의 의무’에 대한 한국 지식인의 자기 반성쯤으로 해석해도 좋을 것 같다. 일찍이 웰즈가 ‘인간의 권리’를 공동집필한 뒤 간디에게 의견을 청했다가 면박당한 그 사실을 기억해보자. 간디는 “올바른 길을 제안하지요. ‘인간의 의무’에 대한 선언으로부터 시작하십시오.”라고 회신하지 않았던가. 결국 이 인권상황보고서와 개선론은 국가로하여금 국가의 일과 의무에 대해, 여성과 소외된 계층을 ‘소외시키는’ 이 사회의 의무에 대해, 그리고 지식인들의 의무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던져준 셈이다.
한가지 짚고 넘어갈 대목. 디지털시대의 문턱에서 새롭게 마주친 판옵티콘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깊은 성찰을 요구하는 문제다. 김주환 연세대 교수(신문방송학과)의 글 ‘국가정보의 전자화와 민주주의와 인권―기본권의 하나로서의 私民權의 개념정립을 위한 시론’은 이점에서 시의성 있는 글이 분명하다. 그는 “어딘가에 국민 개인에 대한 비밀스런 파일이 따로 존재하는 한, 감시의 시선은 국가권력에서 사적 시민에게 향하기 마련이며 이때 주민재권의 원칙은 공염불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면서 사생활보호권, 의사소통의 사민권, 정보의 사민권을 제안했다.

그러나 디지털시대의 판옵티콘은 국가감시체제말고도 달리 존재한다. 이른바 ‘몰카’와 같은 천박한 선정적 상업주의조차 흉물스러운 괴물로 전락했다. 국가권력뿐만 아니라 사회적 주체들도 감시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감시의 주체가 되어 버렸다. 한 사회학자의 지적대로 이제 특수장비를 이용한 엿듣기와 엿보기는 사악한 국가 권력의 문제만은 아닌 상황이 되었다. 중요한 정보를 다루는 사무실은 물론이고 일반 국민의 침실이나 거실에도 엿듣고 엿보기 위한 장치들이 넘쳐난다.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도 엿듣기를 할 수 있고, 멀리 떨어져서도 얼마든지 엿보기를 할 수 있다. 엿듣고 엿보는 것 자체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흥미진진한 볼거리가 되고 있다.(홍성태, ‘국가감시통제 매카니즘과 사회적 의미’, 감시시스템과 프라이버시 국제토론회, 2000. 10. 18)

디지털 시대의 문턱에서 다시 생각하는 인권

‘21세기의 인권’은 우리 시대의 중요한 화두이다. 그것은 성장주의 신화에 가려진 삶의 그늘을 원상태로 복원해내는 일이며, 역사를 다시 쓰는 일이기도 하다. 이때 디지털시대의 문턱에서 비대해진 국가의 전자감시체제와 개인의 사적 생활영역까지 스며들고 있는 보편화된 감시-배설주의를 극복해내는 작업을 어떻게 확대하느냐가 문제의 초점이다. 주민등록제폐지 주장이 국가 감시시스템에 대한 역감시 운동이라면, 한층 일상적이고 미시적인 위악을 재생산해내는 선정적 상업주의에 물든 사회적 주체들간의 감시를 걷어내는 또다른 운동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다면, 본격적인 인권 논의는 지금부터라 할 수 있다. <최익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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