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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 불안 속 전통형식 탈피한 巨匠...음악이 피부에 스며들게 연주 들으면 OK
세기말 불안 속 전통형식 탈피한 巨匠...음악이 피부에 스며들게 연주 들으면 OK
  • 이영진 음악 칼럼리스트
  • 승인 2011.05.16 15: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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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거 100주기 맞는 구스타프 말러, 어떻게 다가갈까

“머지않아 나의 시대가 올 것이요.” 1902년 그는 자신의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찬란한 앞날을 장담했다. 그의 말은 오십년이 지난 뒤에서야 서서히 실현되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1869.7.7-1911.5.18). 새로운 세기에 들어와 확실하게 그의 시대가 도래했다. 공공 공연장과 개인 집, 어디서나 말러의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다.

한번 중독되면 헤어나기 힘들다고 음악 애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예찬하는 말러 음악의 비밀은 무엇일까. 왜 오케스트라들의 연주 프로그램에서 말러의 음악이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왜 음반사들은 앞 다투어 말러 음악을 녹음한 앨범들을 줄지어 내놓을까. 왜 말러일까. 그의 음악은 예측을 불허하는 묘한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교향곡 같은 경우 엄숙한 장송행진곡으로 출발하다 갑자기 민속 음악에서 빌려온 태평스러운 가락이 흐르는가 하면, 어린아이의 순진무구한 노래와 죽음에 사로잡혀있는 듯한 기괴한 선율이 몽타주처럼 뒤섞여 나온다. 19세기말 유럽을 지배했던 퇴폐와 불안의 정서가 짙게 깔려있음에도 안정적인 조성과 전통적인 형식에서 탈피하고 있어 20세기 음악으로 가는 통로로서도 기능을 한다. 그러므로 말러는 과거를 함축하는 동시에, 현재를 반추하고 미래를 지향하는 예술 분야의 거대 담론으로도 존재 의의가 있는 것이다.

1860년 7월 7일 태어나 1911년 5월 18일 운명했으니 작년은 말러 탄생 150주년에 해당하고 올해에는 서거 100주기를 맞이하니 이 대작곡가와 관련한 해가 연속되는 셈이다. 전세계 음악계에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한 각종 행사가 잇달아 열리고 있다. 독일의 경우 말러가 살아 생전 잠시 머물렀던 도시 라이프치히는 5월 17일에서 29일 사이 국제 말러 페스티벌을 개최할 예정이다. 리카르도 샤이, 에사 페카 살로넨, 데이비드 진먼, 다니엘 하딩 등 쟁쟁한 탑 클래스의 현역 명지휘자들이 총출동해 본거지 라이프치히를 대표하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중부 독일 방송교향악단,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등 국제적인 수준의 명문 오케스트라들과 단 2주 사이에 교향곡 전곡을 완주할 계획이다. 해외뿐만이 아니다. 국내에서는 5월 12일부터 3주간에 걸쳐 ‘말러의 부활’이라는 명칭의 시리즈 공연이 열린다. 지난 12일에는 TIMF 앙상블이 실내악 편성으로 규모를 줄인 교향곡 4번을 연주했고, 19일에는 바리톤 박흥우가 피아니스트 신수정의 반주로 연가곡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를 노래할 예정이다.

말러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방법

말러 음악은 사람에 따라 ‘어렵고 지루하다’라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그가 남긴 대부분 작품이 곡의 길이가 길고 모차르트나 베토벤 같은 고전파 작곡가의 음악처럼 구조가 명쾌하지 않아서이다. 말러 음악이 좋다하여 레코드 가게에서 덜컥 음반을 구입했다가 끝까지 듣지도 못하고 후회하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해서 겁먹을 것 없다. 전공자가 아니면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음악용어와 악보 일부분이 잔뜩 적혀있는 음악 해설서니 책이니 그런 것을 사서 머리를 쥐어잡고 읽을 필요 없다. 그에게 접근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실제 콘서트장에 가서 음악을 감상해보는 것이다.

지난번 내한해 말러 못지않게 난해하다고 평해지는 브루크너 교향곡을 지휘한 리카르도 샤이는 당부했다. “곡을 꼭 알아야만 들을 수 있다는 선입견을 버려야 합니다. 머리로 따지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열려있는 마음으로 자신의 감정이 그냥 곡에 따라 흐르도록 놓아두십시오. 음악이 피부에 들어와 모든 감정을 앗아가 버린다는 자세로 연주를 들으십시오." 이 말은 말러에게도 고스란히 해당된다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 각지에서는 교향곡을 비롯한 다양한 말러 음악 공연이 열리고 있다. 콘서트장에 가본 적이 드물다고 긴장하지 말라. 객석에 앉아서 중간에 졸면 어떠랴. 다른 관객에게 방해만 되지 않으면 괜찮다. 그러다 연주 도중에 분명히 무언가 가슴을 두드리는 것 같은 순간이 한번쯤은 오리라 장담한다. 음악에 반응하는 바로 그때 말러에 개안하게 되는 것이다.

그 다음에 온라인 클래식 음악 동호회 같은 곳에서 음반을 추천받아 감상해 보라. 그런데 말러 음악을 연주한 지휘자들이 무수히 많다. 사람마다 어떻게 다를까 알아두면 도움이 된다. 말러 음악에 심취했던 지휘자들은 대개 두 가지 타입으로 나뉘어진다. 첫 번째는 감정 이입을 극대화해 격하고 드라마틱하게 말러를 연주하는 지휘자이다. 미국 출신의 거장 레너드 번스타인과 독일 출신의 거장 클라우스 텐슈테트가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쥐락펴락하는 정도가 심해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울렁거림증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듣는 이의 귀를 확 잡아끄는 힘도 대단하다. 두 번째는 온건하고 정중하게 말러를 연주하는 스타일의 지휘자이다.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그러한 인물로 고상한 품위가 남다르다.      

주체할 수 없는 감동

말러 음악은 교향곡을 중심으로 국내외 오케스트라들이 앞 다투어 연주하고 있다.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공연들도 여럿 된다. 작년만 해도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명지휘자 정명훈이 서울시립교향악단과 멋진 콘서트를 열어 자리에 참석한 청중들에게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을 선사했다. 8월에는 교향곡 2번 ‘부활’이 공연됐다. 125명에 달하는 엄청난 수의 단원들과 독일의 메조 소프라노 페트라 랑, 소프라노 이명주, 국립합창단 등 네 팀이 연합한 150명의 합창단이 엮어내는 장엄한 하모니는 그야말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전체를 뒤흔들었다. 모든 연주자들이 하나 돼 건축하는 마지막 대단원에 압도된 관객들은 전원 기립 박수로 환호했다.

10월에는 미국의 베테랑 지휘자 제임스 드프리스트가 서울시립교향악단을 지휘해 교향곡 10번을 연주했다. 작곡가가 미완성 유작으로 남겨 일반적으로 1악장만 연주되는 이 작품을 음악 학자 데릭 쿡이 보완해 만든 전곡 버전으로 국내 초연을 하는 쾌거를 이루어내었다. 11월과 12월에는 다시 정명훈이 지휘봉을 잡고 교향곡 1번과 3번을 공연했으며, 올해 1월에는 교향곡 4번과 5번을 연속 공연해 기염을 토했다.  

말러 연주를 공연장에서 듣고 난 뒤 그의 음악에 매료됐다 느끼면 이미 당신은 말러 애호가가 된 것이다. 호주머니 사정에 맞추어서 적당한 레코드를 구입해 듣고 즐겨라. 억지로 말러가 쓴 모든 작품에 도전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분량에 질려 그의 음악으로부터 다시 멀어지게 되는 역효과가 생길 우려가 있다. 한 편의 곡이라도 차근히 곱씹어야한다. 이럴 때 곡이 어떻게 만들어졌나, 그 스토리와 상세한 내용이 궁금해지면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된다. 작품을 설명하는 글들이 쏟아져 나온다.

몇 가지를 챙겨 음악을 들으면서 함께 읽으면 곡에 대한 지식이 증가하며 더욱 심도 있게 작품을 알게 될 것이다. 무료 동영상 사이트에서 나오는 명연들의 영상을 시청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대편성 관현악에 동원되는 갖가지 악기들을 보는 재미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렇게 한 곡씩 찬찬히 입문하게 된다면 당신은 자연스레 말러 음악을 사랑하는 중증 마니아들의 대열에 끼게 될 것이다. 당연히 이 과정을 억지로 하려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음악은 어디까지나 행복한 인생을 향유하는데 아름다운 동반자 역할을 하면 충분하니까.

이영진 음악 칼럼니스트/의사
필자는 고려대 의대를 졸업했다.  <월간 객석>에 ‘이영진의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연재하고 있으며, <뷰티풀 라이프> 등 각종 매거진에 공연 리뷰, 음악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지은 책에는『내가 좋아하는 클래식 음반』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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