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04:30 (목)
명품 정치가 프란티셰크 팔라츠키
명품 정치가 프란티셰크 팔라츠키
  • 김장수 관동대 교수
  • 승인 2011.05.16 15: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學而思] 김장수 관동대 서양사

김장수 관동대 교수(서양사)
한 명품가방회사가 이번 달에 가격인상을 예고함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매장을 찾아 인상전의 가격으로 가방을 구매했다는 단신을 며칠 전에 읽은 후 필자는 명품이 매우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신변치장구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했다. 또한 필자는 많은 사람들이 명품을 통해 자신들의 사회적 신분 역시 자동적으로 업그레이드된다는 환상적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필자는 명품에 대한 세속적 애찬론을 거론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명품’이라는 단어를 역사적 인물에게도 사용할 수 있지 않을 까라는 생각에서 명품에 대한 세속적 개념을 거론했을 뿐이다. 필자는 명품정치가라는 단어를 사용하고자 하는데 이것은 분명 기존의 통속적 개념과는 다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즉 어떤 정치가가 자신에게 주어진 정치적 과제나 임무를 올바르게 수행하거나 또는 동시대 다른 정치가들의 귀감적 역할을 할 때 그는 명품정치가라는 명칭을 부여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체코 민족의 국부로 추앙받고 있는 프란티셰크 팔라츠키(F.Palack´y:1798~1876)는 위에서 언급한 명품정치가의 기준에 충분히 부합되는 인물이다.

팔라츠키는 오스트리아 제국에서 3월 혁명(1848)이 발발한 후 그동안 제국 내에서 견지됐던 슬라브 민족의 법적·사회적 불평등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이 인물은 3월혁명 이후 쟁점화됐던 오스트리아 제국의 해체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체코 민족을 비롯한 제국 내 슬라브 민족들의 권익 향상이 오스트리아 제국에서만 가능하다는 자신의 판단에서 비롯된 것 같다.

여기서 그는 슬라브 민족들이 민족주의 원칙에 따라 오스트리아 제국을 이탈해 독립국가를 형성할 경우 과연 그러한 국가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해 강한 의구심도 제기했는데 그것은 그가 러시아의 범슬라브주의와 그것에 따른 슬라브 세계의 통합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팔라츠키는 제국 내 슬라브 민족들이 주어진 체제를 인정하고 거기서 그들의 민족성을 보존하면서 권익 향상을 점차적으로 도모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견해를 제시했는데 이것이 바로 그가 제시한 친오스트리아슬라브주의(Austroslavism)의 핵심적 내용이라 할 수있다.

이렇게 당시 중부유럽의 권력구도 하에서 체코민족을 비롯한 약소민족들이 나아가 길을 올바르게 제시한 팔라츠키에 대한 필자의 관심은 1980년부터 시작됐다.

필자가 이 인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강대국에 둘러싸인 체코의 상황이 당시 우리 한반도의 그것과 너무도 흡사하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같다.

실제로 팔라츠키는 당시 체코민족을 둘러싸고 있는 열강간의 역학적 구도를 정확히 파악했기 때문에 민족의 독립보다는 자치권확보를 우선시했던 것이다. 물론 이 인물은 자치권확보를 최종적 목표가 아닌 한시적 목표로 설정했는데 그것은 체코민족이 독립국가로서 활동하는데 필요한 모든 여건을 갖춘 후 민족적 독립을 모색해야 한다는 그의 관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필자는 팔라츠키의 객관적이고 현실주의적 판단을 오늘날의 유사한 국제적 상황에 대입시킬 경우 문제해결에 필요한 방법 역시 찾을 수 있다는 확신도 가지게 됐다.

이후부터 필자는 팔라츠키의 탁월한 정치적 식견과 그것을 토대로 한 정치 활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기서 필자는 생소한 인물과 낯선 국가의 언어 및 역사도 배워야 한다는 선행적 과제에 직면하게 됐다. 또한 이러한 것이 향후 우리나라에서 학문적 가치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에 대해서 의문이 제기됐던 것 역시 사실이었다.

필자가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1980년대 후반 우리나라 역사학계는 체코를 비롯한 동유럽의 역사에 대해서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팔라츠키를 비롯한 일련의 체코 주제를 가지고 학문적 활동을 한다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동유럽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후 이 지역에 대한 우리나라의 관심 역시 이전보다 크게 확대됐고 그것은 이 지역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계기도 됐다.

2000년도에 접어들면서 동유럽과 관련된 연구들이 일부 대학에서 체계화되면서 학문적 업적들도 나오기 시작했지만 아직까지 걸음마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동유럽연구자들은 자신들의 연구가 본격적인 궤도에 진입할 수 있게끔 노력해야 하는데 이러한 것은 오랜 시간이 필요한 학문적 과제라 하겠다.

김장수 관동대ㆍ서양사
베를린자유대에서 박사를 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의 체코사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프란티셰크 팔라츠키의 정치활동』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