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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 대학들의 사이버 공간 들여다보기
진단 : 대학들의 사이버 공간 들여다보기
  • 교수신문
  • 승인 2002.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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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갈 물린 ‘자유’게시판의 역설…잡종의 공간을 살려라
시공을 초월하는 매개체. 소비와 생산의 쌍방향적 기폭제.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만들어낼 전자민주주의의 촉매제. 지역과 국가를 아우르는 방대한 정보의 집합체.

오늘날 인터넷이 만들어내는 강력한 기능들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클릭 한번만으로 모든 정보에 접속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다양성은 인터넷의 가장 큰 장점이지만 그 중 최악의 시나리오들은 우리를 움츠러들게 한다.

사이버 훌리건이나 마초들의 글, 광고 등으로 게시판이 몇 번 난장판이 되고나면 관리자들은 고육지책으로 회원가입제도나 주민등록번호 로그인 제도를 이용한다. 개인들은 정보유출이나 스팸메일이 두려워 여러 사이트에 회원가입하기를 꺼린다.

‘지적재산권’도 문제가 되고 있다. 정보화시대의 새로운 권리(right)인가, 소수자에 의한 배타적 독점인가가 화두가 되는 요즘 정보와 지식의 사유재산화를 반대하고 있는 정보공유연대 IP LEFT(Intelletual Property Left)의 ‘IP LEFT 선언문’은 의미심장하다. “정보와 지식은 ‘사적으로 소유될 수 있는 재산’이 아니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사회환경’이 돼야 한다. 지적재산권은 현실 정보사회의 모순을 반영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일 뿐이며, 공유적 내용으로 새롭게 재구성돼야 한다.”

열린 대학과 닫힌 홈페이지

대학 홈페이지 게시판의 상황은 일반적인 인터넷 게시판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광고성 글들이 게시판을 도배하는가 하면 일부 여자대학 게시판에서는 사이버 마초들의 난동이 일어나 학생들이 ‘학번 로그인’제도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유야 어찌됐건 각 대학의 홈페이지에는 몇 단계의 보호벽이 설치되기 시작했고 이제 외부인이 그 속내를 들여다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분규가 있던 대학에서 자유게시판이 ‘학번 로그인’ 게시판으로 바뀐 경우는 좀더 민감한 문제이다. 이사장의 비리로 오랜 내홍을 겪어온 서일대에서 총학생회의 한 관계자는 “로그인을 하고 들어가도 이젠 학생들의 활동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이 학교에서는 작년 겨울 교수협의회 링크가 삭제되는 일이 있었다. 교수협의회 이창수 회장(일어과)은 “게시판의 글이 진실인지는 읽는 사람이 판단할 몫”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와 관련 이 학교의 홈페이지 관리자는 “학장의 폐쇄 지시로 교수협의회 측에 공문을 보냈는데 응답이 없어서 삭제한 것 뿐”이라고 해명하며 “온라인상의 근거없는 비방이나 욕설 등은 지양돼야 한다”고 말해 그 ‘근거’의 기준을 누가 정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생각해볼 여지를 남겼다.

한편 청주대의 사이트에는 ‘참여마당’이라는 카테고리 아래 ‘학교생활토론장’, ‘불편건의함’, ‘질의응답’, 기타 ‘벼룩시장’ 등의 게시판이 있다. 글은 모두 실명이고 1달 정도의 분량 밖에 없다. 총학생회의 한 학생은 “자유게시판에서 학내 문제나 총장문제 등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는 점에는 모두가 공감하나, 그러한 글을 올리면 곧바로 삭제조치 당한다. 글들의 유효기간도 1달 여밖에 되지 않아 게시판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며 “학교의 홈페이지 운영이 단지 외부에 대한 ‘보여주기’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 학생이 실명으로 ‘학교생활토론장’에 올린 “김윤배는 판공비를 공제하라”는 글은 이틀 뒤 게시판에서 자취를 감췄다. 학내 문제나 총장에 대한 글도 모두 사라졌다.

이 대학의 홈페이지 관리자는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한달 단위로 없애는 이유를 묻자 “게시판에 글이 너무 많아지면 다 못 읽지 않느냐”고 해명했고, 글을 삭제하는 이유를 묻자 “모른다”, “말씀드릴 수 없다”로 일관했다.

이봉재 서울산업대 교수(인문자연학)는 “배운다는 것은 자기와 다른 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규정하며 사이버공간도 그러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는 오랜 유교적·가부장적 문화, 단일민족성에서 비롯된 제노포비아, 일제 식민 통치와 군사독재를 받으며 공고화된 ‘폭력’과 ‘권위주의’의 논리 등 많은 부분에서 토론문화를 저해하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과도기 넘어서기

인터넷이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부분적으로나마 바꾸어 나가는 ‘훈련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이 말은 거꾸로, 아직은 인터넷 환경이 ‘성숙’으로 나아가고 있는 ‘과도기’에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현재 사이버공간에서의 풍속도가 마냥 옳다고 볼 수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홈페이지’만은 我와 非我의 경계를 명확하게 긋지 말아야 한다. 그곳은 我와 다른 무수한 非我들의 사고가 만나 서로의 벽을 허물며 튼튼한 잡종으로 자라야 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18세기에 볼테르가 말한 ‘진리의 부싯돌은 부딪쳐야 빛이 난다’는 경구는 21세기인 지금도 우리의 대학이 지향해야 할 유용한 덕목임에 틀림없다.

설유정 기자 syj@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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