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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장 큰 즐거움은 그들의 마음, 내면, 영혼에 담긴 위대함을 담는 것”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은 그들의 마음, 내면, 영혼에 담긴 위대함을 담는 것”
  • 손영실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 승인 2011.05.09 1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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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사진의 거장, 유섭 카쉬

카쉬가 포착한 우아한 악동 무용수 루돌프 누레예프. 육감적 입술을 가진 이 무용수는 짓궃게 입을 가린 대신 눈웃음을 터드려 보였다.    Rudolph Nureyevⓒ 1977 Yousuf Karsh

지난 3월 22일부터 이달 2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인물사진의 거장 카쉬 展'이 열리고 있다. 과연 카쉬의 인물 사진은 어떤 차별성을 지니고 있을까. 그가 추구한 사진 미학, 그의 독특한 장르 해석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손영실 경일대 교수(사진학)가 카쉬 인물사진의 특성을 읽어낼 하나의 독법을 제시한다.   

 

사진이 발명된 이래로 인물 사진을 지칭하는 포트레이트((portrait)라는 장르는 사진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왔다. 19세기에 특정 계급의 사람들만이 소유할 수 있었던 회화 포트레이트와는 달리 저렴한 가격대의, 대중에게 널리 공급이 가능한 사진 포트레이트의 등장은 사진 포트레이트의 대유행을 가져오기도 했다.

포트레이트라는 용어 속에는 사람들의 자취를 고정시키려는 욕구와 이미지 생산이라는 욕구가 내포돼 있다. 프랑스의 미학자인 띠에리 그릴레(Thierry Grillet)는 "사진 포트레이트의 특징은 개인의 예술이라는 점에서 주체 혹은 자아에 대한 찬사이며 동시에 예술 장르로서 이미지의 예술"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러한 이중적 속성은 자전적 숙고뿐만 아니라 미학적 고려가 사진 포트레이트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게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진의 역사를 통해서 볼 때 인물을 사진적 대상으로 삼는 포트레이트라는 장르는 지시대상으로부터의 장르라는 인식 때문에 오랜 기간 외연적인 투명성의 환상을 주었다. 다시 말해 사진은 현실의 대상을 가장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 재현해내는 매체로 인식됐고 여기에 가장 지대한 공헌을 한 장르가 바로 포트레이트라는 장르라는 의미이다.

포트레이트, 회화적 모델에서 벗어나다

사진 포트레이트의 역사적 기능은 근대적인 주체가 존재의 시뮬라크르(simulacre)를 만드는 장치였고 이는 얼굴에 의해 표현되거나 신체에 의해 환유적으로 나타난다.

사진 포트레이트 예술은 점차 회화적 모델로부터 해방되면서 사진만의 고유한 어휘를 만들어내며 진보를 거듭해왔다. 그리하여 오히려 역으로 사진 포트레이트는 회화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사진 포트레이트의 역사와 미학은 진보하는 가운데 굴절을 거치게 됐고 그러한 가운데 우연적인 혹은 자발적인 변형들을 초래하며 발전했다.

근대와 현대의 사진 포트레이트의 대다수는 얼굴을 중심으로 제작됐고 작품들의 양태는 사회적, 개인적인 문맥의 다원성과 의도의 다양성에 따라 다원화됐다.

20세기 사진 포트레이트의 역사에 중요한 획을 그은 인물로 유섭 카쉬(Yousuf Karsh)를 들 수 있다.  카쉬의 인물 사진은 피사체를 바라보는 카쉬 만의 창조적 시각으로 다양한 인물들을 자신만의 열정과 독창적인 촬영 방식을 통해 사진 속에 담긴 인물의 내면을 포현해내는 것이 특징이다.

1930년대부터 카쉬는 초상 사진관을 운영하면서 인물을 촬영하기 시작했고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20세기에 획을 그은 정치가, 예술가, 배우, 과학자들을 촬영하는 기회를 얻게 됐다. 그가 캐나다를 방문한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을 찍은 사진이 <LIFE>지에 실리면서 그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질 수 있었다. 처칠을 촬영할 때 그는 처칠 특유의 카리스마를 담기 위해 처칠이 입에 물고 있던 시가(cigar)를 낚아챘다. 카쉬는 인상을 쓰며 화를 내는 처칠의 표정을 포착해내어 셔터를 눌렀는데 인물 본인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습관이나 무의식 속 표정을 잡아내며 인물 그 자체를 포착하는 그 만의 독특한 작업 방식을 보여주는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잠시 잠깐의 순간에 인간의 영혼과 마음이 그들의 눈에, 그들의 손에, 그들의 태도에 나타난다. 이 순간이 기록의 순간이다”라는 그의 말에서 확인되듯, 그는 단 한 순간도 인물로부터 시선을 떼지 않고 대상에 집중하는 방식을 취했다.

인물 내면에 숨겨진 섬세함과 절제미 포착

카쉬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오드리 햅번, 엘리자베스 테일러 등의 여배우들의 사진에서는 내면에 숨겨진 섬세함을, 그레이스 켈리와 재클린 케네디의 사진에서는 절제미를 통한 여성적인 우아함을 드러내었다. 마더 테레사 수녀의 사진에서는 그녀의 옴폭 패인 눈, 굵은 주름, 거친 손을 통해  인류를 위해 숭고한 희생을 하며 살아온 그녀의 인생을 한 장의 사진에 응축시켜 내었다.

혼란한 시대상으로 인해 숨죽이며 살아야 했던 힘겨웠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경험은 그가 인물의 눈을 통해 영혼과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그만의 사진 미학을 이뤄내는 밑거름이 됐다.

인물 사진의 거장이라 평가받는 카쉬의 진면목은 사진의 대상이 되는 인물과의 소통을 통해 다양한 인물들의 세심한 표정과  동작 하나하나를 관찰하고 빛의 명암을 고려하며 얼굴에서 조차 잘 드러나지 않은 인물의 내면까지 포착해내는 것에서 발견된다.

카쉬는 조명과 소품을 인물의 특징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며 인물을 표현하는데 화면 구성에 있어서는 얼굴과 손의 위치에 주의를 기울인다.  

특히 그의 조명술은 매우 독창적이라 할 수 있는데, 카쉬는 당시 유행하던 스튜디오 조명의 효과에 만족하지 않고 스튜디오의 인공조명과 자연광을 적절히 조화시키려고 시도했다. 인물의 머리 뒤에서 비추는 태양광의 효과를 내기 위해 백라이트(back light)를 사용하는 등 렘브란트(Rembarndt) 조명 기법을 사진 작업에 도입했으며, 빛을 비스듬히 비추어 배경을 어둡게 하거나 사진 프레임의 1/4 정도를 어둡게 하는 방식의 매우 실험적인 방식의 조명 사용을 통해 인물을 극적이고 두드러지게 하는 자신만의 인물사진 촬영 스타일을 창조했다. 

우리가 사진관에서 보는 인물사진의 조명이 대부분 카쉬의 조명을 토대로 하고 있으며 그의 인물 사진 조명술은 오늘날까지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는 이러한 독특한 조명술과 흑백의 어두운 배경을 사용해 인물의 모습을 더욱 효과적으로 부각시키는 한편  8x10 대형 카메라를 마치 35mm 카메라처럼 자유자재로 다루며 인물의 머리카락 한 올 한 올까지 섬세하게 포착하여 인물의 특징들과 내면의 고뇌를 표현해내었다. 작곡가 시벨리우스의 얼굴에 드러난 극명한 질감묘사에서 명백히 나타나듯이, 강렬한 흑백의 대비, 극적이며 사실적인 묘사로 요약될 수 있는 카쉬의 사진이 갖는 미학적 독자성이야 말로 그를 인물의 내면을 담아내는  ‘영혼을 찍는 사진가’로 각인시키기에 충분한 이유가 될 것이다.

카쉬는 인물의 얼굴을 사진으로 찍는 작업 이외에도 인물의 ‘손’만을 사진으로 많이 기록하기도 했는데 이는 그가 사람의 성품과 직업에 따라 달라지는 손의 모습을 그 사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얼굴이라고 간주했기 때문이다.

흑백의 강렬한 대비, 풍부한 계조와 독특한 조명술로 특징지어지는 카쉬의 인물 사진은 카쉬 자신의 사진에 대한 사고와 삶의 경험에 근거한 철학을 드러내는 가운데 사진을 보는 이에게 각 인물의 눈빛, 손짓 등에서 느껴지는 인간의 내면에 마주하게 하며 아날로그 사진이 주는 깊이 있는 사유의 공간에 다가가게 한다.

손영실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필자는 프랑스 파리8대에서 박사학위를 했다. 「흐릿한 이미지의 담론 분석」,「현대 사진포트레이트의 변화: 투명성에서 타자성으로」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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