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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무엇이 위기인가 - 3. 교수가 떠나간다
2. 무엇이 위기인가 - 3. 교수가 떠나간다
  • 손혁기 기자
  • 승인 2002.06.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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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대 교수' 유혹하는 서울, 각종 평가도 부추겨
지방소재 ㅇ대학은 해마다 2월이면 몸살을 앓는다. 올해는 또 몇 명의 교수가 서울로 자리를 떠나는지 확인해야 하고, 빈자리를 다시 메워야 한다. 지난해까지는 급한대로 교수초빙공고를 내고 신임교수를 뽑아서 새 학기를 시작했지만, 올해부터는 원서마감 2개월 전까지 공고를 내도록 교육공무원임용령이 바뀌어 이마저 불가능하게 됐다. 그렇다고 강좌를 폐기할 수도 없고, 결국 시간강사를 전국에 알아봐 빈자리를 채워야 한다. 이것도 마땅치 않으면 서울로 옮겨가는 교수에게 부탁해서 이번 학기만이라도 강의를 맡아달라고 사정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는 그간에 쌓인 ‘정’을 앞세우고, “제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며 ‘읍소’하는 수밖에 없다.

지방대에서 교수가 떠나고 있다. 교수신문이 2002년 상반기 신임교수임용현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서울·경기지역 신임 교수 6백37명 가운데 타 대학에서 자리를 옮긴 교수는 1백64명으로 이 지역 전체 신임교수 가운데 25.7%에 달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이동했다. 서울 소재 대학의 입장에서는 연구성과가 ‘검증된’ 교수를 뽑는다는 점에서 ‘안전한’ 선택이지만 지방대 입장에서는 그만큼 후유증이 클 수 밖에 없다. 올해 지방의 ㅎ대학에서는 10명의 교수가 한꺼번에 빠져나갔고, 3명 이상 빠져나간 대학도 수두룩하다.

교수들이 떠나간 대학을 자세히 살펴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법인의 전횡으로 내홍을 겪었던 대학도 일부 있지만 상당수는 교수임용과정이 투명하고, 특성화를 위해 우수한 연구자를 영입하는데 노력했던 대학에서 교수들이 이탈하는 경향이 더욱 크다는 점이다. 대학발전을 위해 우수한 교수를 영입해 놓고 보니 이들에게는 서울의 대학에서 유혹하는 손길도 그만큼 많고, 나름대로 연구환경을 마련하고자 해도 학계가 서울중심으로 흘러가는 상황마저 개별 지방대들이 어쩔 도리가 없다. 그렇다고 신임교수를 뽑을 때부터 수도권 대학에 뺏길 염려가 있으니까 상대적으로 연구성과가 떨어지는 인물을 뽑을 수도 없다. 결국 지방대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우수교수 영입할수록 이직 많아

적자생존의 냉험한 시장논리가 지배하는 상황이다 보니 더 나은 연구·교육환경을 찾아 떠나가는 교수들을 만류할 수 없다. 그러나 수도권과 지방대의 차이는 대학차원의 노력으로 풀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다. 올해 3명의 교수가 서울로 옮겨간 ㄷ대학에서는 신임교수에게 대학에서 역점을 두고 있는 ‘센터’의 일을 맡기는 등 나름대로 교수가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나 부인이 서울에서 직장을 다녀, 주말 부부로 지내던 이 교수는 올해 서울에 자리가 마련되자 결국 옮겨갔다. 교수 입장에서는 자녀교육 등 가정적인 측면을 고려하면 월급이 줄어들어도 옮겨야 할 상황. 게다가 서울지역 대학으로 가면 전공관련 프로젝트를 따기에도 훨씬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다. 전북 지역 대학에서 올해 서울로 옮긴 김 아무개 교수도 “서울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학문 연구자로서 자기발전의 꿈을 펼치려면 서울로 옮겨야만 했다”고 말했다. 결국 지방대에 재직하면서도 자녀교육이나 기타 문제 등을 고려해 주말 부부로 지내는 교수들이 김 교수와 같은 기회가 생길 경우 어떠한 선택을 내릴지 예상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정부의 각종 정책도 교수들의 지방이탈을 부추기고 있다. 지방대학이 그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학부제. 학부제로 학생들이 경영학 등 취업에 유리한 전공으로 몰리다 보니, 대학들마다 관련분야 교수들을 충원하게 됐다. 이러한 사정이야 서울이나 지방 모두 마찬가지지만, 수도권대학들이 지방대에 재직하고 있던 교수들을 뽑아가다 보니 지방대는 이중고를 겪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올해 서울의 ㅅ대학에서는 상경계열에 6명의 신임교수를 뽑으면서 5명을 지방대학에 재직하고 있던 교수들로 채웠다.

학문분야별 평가나 정부가 지원하는 각종 사업들도 교수이동을 부추긴다. 학문분야 평가에서 교수들의 연구성과가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면서 수도권 대학들이 지방대 우수교수로 수혈하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서울의 ㄷ대학에서는 법학분야 평가를 앞두고 탁월한 연구업적을 보이던 교수들을 지방대 곳곳에서 영입했다. 법학전문대학원 도입이 가시화 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자 한 것. 반면, 교수가 떠나간 ㅇ대학은 몇 년전 부터 차근차근 준비해오던 평가에서 크게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학부제와 학문평가의 그림자

교수가 빠져나간 지방대는 자리가 한학기 비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최근 정부가 대학원생들에 대한 연구비 지원사업을 늘려가면서 대학원생의 연쇄이동을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BK21사업 등 정부지원이 늘어난 이후 사업에서 제외된 지방대에서 대학원 신입생 부족현상은 훨씬 극심해 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결국 지방대들은 교수와 대학원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울로 향하면서 연구기반마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손혁기 기자 pharo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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