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6 15:20 (화)
연구과정에서 진실성과 객관성을 지키려면
연구과정에서 진실성과 객관성을 지키려면
  • 이상욱 한양대 교수
  • 승인 2011.05.02 12: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텍스트로 읽는 책갈피_ 이상욱 조은희 엮음, 『과학윤리 특강』(사이언스북스, 2011.4)

과학 연구에 대한 바람직한 태도는, '순수'과학과 '응용'과학을 편집증적으로 구분하는 데 있지 않다. 연구 과정에서 과학자 사회 내적인 가치 판단과 연구 주제 결정이 보다 넓은 사회적 맥락과 건강하게 상호작용해야 과학 지식의 성장과 유용한 사회적 파급 효과의 생산에 도움이 된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과학 연구 윤리와 보다 넓은 의미의 윤리가 서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학 연구 윤리는 연구 수행 과정에서 진실성과 객관성을 지키고 동료 연구자들에 대해 책임 있게 행동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에 더해 과학자 사회의 규범을 준수하고 과학자 사회의 일원으로서 과학 지식의 성장과 긍정적인 사회적 파급 효과를 목표로 연구를 수행하는 일도 포함된다.

하지만 무엇이 '긍정적인' 사회적 파급 효과인지를 순수한 과학자의 시각에서만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 경우도 있다. 전염 매개체인 모기를 분자 유전학적으로 불임 처리해서 무서운 질병인 말라리아를 퇴치하려는 연구는, 관련 분야 연구자들에게는 매력적인 연구 주제인 동시에 인류 복지라는 고귀한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정작 말라리아로 인한 사람들의 피해는 이처럼 다소 요란한 첨단 기술을 사용하기보다는 모기약이 발라진 모기장을 보다 많이 보급하거나 거주지 주변 환경을 정비함으로써 극적으로 감소될 수 있다.

매력적인 첨단 과학에 종사하는 연구자일수록, 자신의 연구가 지니는 잠재적 공익은 쉽게 상상하지만 예기치 않은 부작용이나 다른 방식으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잘 모르거나 무관심하기 쉽다.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은 인류의 복지에 기여한다는 거창한 목표보다는 이와 같이 자신의 연구가 지니는 과학 내적, 외적 파급 효과에 대해 보다 넓은 맥락에서 생각해보고 그로부터 얻은 깨달음을 자신의 연구 수행에 통합하려 시도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윤리학은 당위의 문제를 다루는 규범적 윤리학과 개별 사회의 윤리적 관행을 경험적,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기술 윤리학으로 나뉜다. 하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과학 연구에 대한 윤리적 논의는 우리 사회의 기존 윤리적 관행을 존중해야 하는 동시에, 순수하게 기술적 분석에만 머물 수도 없는 성격을 가진다. 특정 과학에 대한 윤리적 평가는 사회를 운영하는 정책과 필연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데다가, 궁극적으로는 어떤 사회가 바람직한지에 대한 규범적 판단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과학과 관련해 윤리적 고찰을 할 때는 과학의 미래에 대한 경험적 근거와 규범 윤리적 판단을 적절히 결합해야 한다.

이러한 결합이 정확히 어떤 형태가 돼야 하는지에 대해 섣불리 일반적인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현대 과학처럼 전문적인 내용이 복잡한 윤리적 고려 사항과 연관돼 있는 경우에는 기존 규범 윤리의 전통적 논의를 새롭게 수행하는, 일종의 연습 문제 풀이(puzzle solving, 특정 패러다임에 맞추어 문제를 해결하는 활동)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새로운 과학이 등장하고 발전하며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과정에 대한 역사적, 철학적 분석에 기초한 윤리적 분석 틀이 더 유용하다.

이 글「과학 연구 윤리의 규칙」의 필자는 이상욱 한양대 교수(철학과)다. 그는 런던정경대에서 자연현상을 모형을 통해 이해하는 작업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가 조은희 조선대 교수(생물교육과)와 함께 엮은 『과학 윤리 특강』은 연구 윤리, 과학자 사회, 과학 학술 논문의 이해, 논문 출판의 윤리, 공학 윤리 등 모두 12편의 글을 수록하고 있다. 김재영(카이스트 한국과학영재학교), 김형순(인하대), 김호(서울대 보건대학원), 송성수(부산대 기초교육원), 양재섭(대구대), 홍성욱(서울대) 교수 등이 함께 참여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