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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정치학 교육은 어떻게 가능한가
새로운 정치학 교육은 어떻게 가능한가
  • 김봉억 기자
  • 승인 2011.05.02 11: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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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_ 2011 한국정치학회 춘계학술회의 ‘한국 정치학의 위기와 기회’

지난달 22일부터 이틀간 정치학자들이 '정치학이란 학문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를 두고 머리를 맞댔다. 학부교육과 대학원 교육까지 겨냥한 논의가 이어졌다.  사진 제공 : 한국정치학회
정치학은 제왕학(master science)이라 했다. 찌질한 세간살이나 다루는 학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삶을 궁극적으로 규정하는 정치공동체, 즉 국가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구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삶의 한 절정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가 동서양 철학의 기원이라고 하는 플라톤이나 공자의 저술도 따지고 보면 모두 ‘정치공동체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라는 정치적 질문과 응답인 것이다.

정치적 질문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던 시절, 정치학은 그런대로 인기 있는 학과였다. 군사독재에 저항하기 위해 민주주의 정치이론이 필요했다. 마르크시즘이든 자유주의든 기본적으로 보다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정치적 실천, 투쟁의 과정으로 정치학은 존재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던 시절 그런대로 정치학은, 그리고 정치학과 학생들은 시대를 주도한다는 자부심을 포기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 점에서 한국에서 정치학의 위기는 민주화의 실현과 정치의 실종이라는 이중적 현상의 결과로 보인다. 1987년 이후, 더 나아가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사실상의 문민정부의 탄생 이후 더 이상 정치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촌스러워 보이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IMF 경제위기에 봉착하면서 민주주의 담론은 슬그머니 도서관의 책장 깊숙이 숨어버렸다. 90년대 들어서면서 대학은 그 어떤 변혁의 이념이나 실천을 주조하지 못하고, 기성세대의 문화적 욕망을 소비하는 거대한 소비 집단으로 변절해버렸다. 학생들이 입학하자마자 취업준비에 매달리는 상황에서 ‘공동체적 삶을 고민하는 정치학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한국정치학회(회장 박찬욱 서울대?정치외교학부)가 지난달 22일부터 이틀간 트레블러스호텔 제주에서‘한국정치학의 위기와 기회’라는 주제로 한국 정치학 교육의 현실과 미래를 고민하는 세미나를 마련한 것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박 회장은 정치가 실종된 시대에 정치학 교육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작년부터 이 세미나를 준비해 왔다. “정치의 가치와 의의를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고 실용적 수요의 압력이 가중되는 교육 풍토에서도 민주 시민, 공공 지도자, 정치학 연구자를 육성해야 하는 정치학 교육의 목표를 대학의 안과 밖에서 어떻게 살려 나갈 것인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박 회장의 결의가 묻어나 보이는 발언은 두 가지 명제로 집약된다. ‘사회적 경쟁력 확보’와 ‘정치학의 위상 제고’다.

학부교육에 대한 신기현(전북대), 하세현(경북대), 황지환(서울시립대) 교수의 분석은 신랄한 현실인식에서 출발했다. 정치외교학과 졸업생의 34.4%만이 전공공부가 직무와 관련 있는 것으로 응답했으며, 전공유용성도 절반 이하만 인정했다. 유사 학과의 경우 긍정적인 인식이 60%대에 이르는 것과 비교할 때 심각한 괴리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정치외교학과의 전망을 묻는 질문에 43.9%가 비관적(나쁘다)고 대답했고, 또 나머지 절반에 가까운 학생들이 보통수준이라고 응답했다. 학과 전망이 좋다고 대답한 비율은 10.2%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도 국제관계학과의 경우, 학생들의 26.3%가 긍정적인 전망을 제시했다.

그러나 타 학과와 비교하면 이러한 비율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연구자들은 정치학 학부교육의 직무 연관성을 높이기 위해 실질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예컨대 정치학 관련 각종 자격증 제도를 설치해 정치외교학과나 국제관계학과 졸업생들이 사회에 진출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나, 각종 공무원 시험에 정치학 교과를 포함시키는 방안 등이다. 물론 이런 방안이 유용할 수도 있지만, 한 가지 애매한 것은 한국 대학의 정치학 교육이 지향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도움은 되겠지만 한국대학의 정치학 교육이 지향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학생들이 어떤 자질과 능력을 갖추게 되는지에 대한 의문이 해소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교육목표가 분명하지 않다면,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보다 현실적인 대안으로 제시된 것은 법학전문대학원 진학을 늘이자는 주장이었다. 임성학(서울시립대), 이정철(숭실대) 교수가 발표한 내용에는 국가고시와 법학전문대학원에 정치학과 졸업생들이 보다 많이 합격할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에 대한 실질적인 제언이 담겨있다. 미국의 사례를 볼 때 변호사의 많은 수가 정치학과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매우 현실적이다. 문제는 정치학 교육이 고시준비로 전락할 가능성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양자를 조화롭게 연결하는 것이 정치학계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한다.

정치학자들의 고민은 ‘대학원 교육’에도 이어졌다. 관련된 논의에선 보다 구체적인 문제점들이 제기되었다. 최영진(중앙대), 김남국(고려대) 교수가 발표한 대학원 교육에 대한 논의는, 유수 대학원의 교과과정에 대한 매우 소상한 소개와 함께 한국 대학원 학생들의 실질적인 목소리를 전달했다.

국내외 대학 간의 교환프로그램을 활성화하자는 것과 장학금 지원을 보다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한국 대학원 교육의 세계적 경쟁력 확보 방안으로 공동학위제와 같은 국제적 교류프로그램을 활성화하자는 ‘오래됐지만 중요한’ 주장이 수면 위로 제기된 것이다.

그와 함께 국내 대학원간의 학점교류를 활성화해 전공별 세부 교과목을 수강할 수 있는 기회를 제도적으로 늘이자는 주장이 설득력 있었다. 한국 대학원의 장점은 역시 지리적 근접성이라 할 수 있다. 수도권 대학원의 경우, 어디나 갈 수 있기 때문에 대학 간 조정을 통해 보다 다양하고 세부적인 교과목이 개설될 경우, 학점교환을 통해 보다 심도 있는 교육이 가능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문제는 역시 현실적 가능성 여부인데, 여러 대학 정치학 교수 간의 교과목 조정 노력이 있어야 하고 학점 교류에 대한 보이지 않는 장벽을 제거할 수 있다면, 실현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쳐 볼 수 있을 것이다.

대학원 교육에서 학위심사를 강화하기 위해 박사학위를 학회에서 심사하자는 안도 제시됐다. 일종의 국가박사 제도로, 세계적 경쟁력 있는 박사를 양성하기 위해 박사학위 심사를 개별 대학에 맡기지 말고, 학회가 담당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학원 과정도 순수전문연구자(teaching)과정과 직장과 병행해 연구(research)하는 과정으로 구분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이어졌다.

한국 대학교육의 문제는 문제인식보다는 실천이었다. 물론 문제인식과 결의가 반복될수록 실천의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얼마나 많은 교수들이 공유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실천적 노력을 ‘감행’하느냐에 따라 해결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정치학과 정치가 구분돼야 한다면, 더 이상 말만 하는 정치에서 벗어나는 것이 문제해결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한국정치학회가 모처럼 실속 있는 고민을 던졌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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