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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영양소 잔뜩 들어있고 방부제 역할까지
유익한 영양소 잔뜩 들어있고 방부제 역할까지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1.04.25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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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39> 양념은 본디 식물의 노폐물

“입맛은 사람마다, 지역 따라 사뭇 다르고, 기를 쓰고 동족·동향과 혼인하려 드는 것도 같은 먹이문화를 변함없이 함께 하려 하는 것일 터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사람이 밥만 먹고 못 산다’는데, 삶이 너무 팍팍해선 안 되고 뭔가 좀 넉넉함과 남음이 있어야 한다는 말일 것이고, 음식에는 맛을 돋우는 양념이 흠뻑 들어가야 맛깔 난다는 뜻일 것이다. 양념거리에는 고추, 마늘, 생강, 파, 양파, 부추, 후추, 설탕, 깨소금 등등 이처럼 천지로 널려있다. 누가 뭐라 해도 총 중에 苦草가 으뜸이라 우리네 반찬은 온통 고추 범벅ㆍ칠갑이다. 정녕 잠시만 먹지 않아도 그것이 끌리고 당기니 고추 유전자(DNA)가 우리 세포에 꽉 틀어박혔다. 아무튼 사람이 딴 것은 다 바뀌어도 입맛 하나는 그대로이니 외국에 살아보거나, 오랜 여행을 해보면 뼈저리게 느낀다. 여행가방 한 구석에 숨겨둔 고추장!? 아, 워낙 까다롭고 고집불통으로 변할 줄 모르는 혓바닥, 포기하지 않는 바보다.

양념감은 본디 꽃식물(顯化植物)의 꽃, 뿌리, 과일, 씨앗, 줄기, 껍질에서 얻는데, 이 물질은 모두가 물질대사의 결과 덤으로 생긴 二次産物로, 세포가 늙을수록 커지는 액포(液胞, vacuole) 속에 차곡차곡 넣어둔 노폐물이다. 액포는 모든 식물과 菌類(fungi), 일부 원생동물과 세균에도 들었으며, 현미경적인 세포소기관(細胞小器官·organelle)으로 나이 든 세포에서는 80% 넘게 차지하며 번번이 그 모양까지 바꾼다. 말 그대로 ‘막으로 둘러싸인 터질듯 팽팽한 작은 주머니’로 양념물질 말고도 안토시아닌(화청소), 당류, 유기산, 단백질, 효소 및 숱한 무기물질이 듬뿍 깃들었고, 세포를 팽팽하게 부풀게 하는 팽압(膨壓, turgor pressure)과 pH를 일정하게 유지케 한다.

이 글의 핵심인데, 여러 생물들이 쓸모없는 찌꺼기인 양념을 세포에 넣어 둬서 바이러스나 세균, 곰팡이들의 번식을 막고 심지어 곤충들에게 먹힘을 피하고 막는다. 사실 양념이란 음식의 빛깔을 내고, 육류의 노린내나 잡냄새 없애는 일 말고도 우리 몸에 유익한 영양소가 고루 잔뜩 들었기에 입맛을 돋운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음식에 갖가지 양념(조미료)을 넣어 먹는 것이요, 마젤란도 香辛料(spice)를 찾아 세계를 누비지 않았던가.

하느님 맙소사! 근데 동남아시아나 대만, 인도 등지의 찌는 듯 더운 곳으로 갈수록 여러 양념에다 그 짙기가 엄청나서 너나없이 비위가 제아무리 좋아도 듣도 보도 못한 요리에 절레절레 체머리를 흔든다. 아닌 게 아니라 모처럼 맛 본 음식에 안절부절 어리둥절 기절초풍한다. 우리나라만 해도 남도지방은 음식이 무척 짜고(소금도 일종의 양념으로 세균을 죽임) 매우며, 방아풀이나 초피(제피)나무 같은 향이 짙은 열매껍질을 콩콩 찧어 가루를 물김치, 겉절이, 순대에 시도 때도 없이 막 넣어 먹는다. 냉장고가 없었던 그 옛날의 한여름을 떠올려 보면 추호도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양념(향미료)은 음식의 썩음을 막는 방부제역할을 하는 것. 하여, 줄곧 오래오래 자꾸자꾸 먹다보면 나름대로 오롯이 인이 박힌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흔히들 키우는 ‘허브(herb, ‘푸른 풀’이란 뜻임)’나 제라늄(geranium)같은 풀을 그냥 제자리에 가만히 두면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지만 센 바람이 불거나 얼씬만 해도 이내 침입자를 쫓을 요량으로 이상야릇한 냄새를 물씬 풍긴다. 그리고 감자 싹에 들어있는 솔라닌(solanine)의 독성이나 마늘ㆍ양파에 든 항균성물질인 알리신(allicin)도 말할 것 없이 모두 다 그들의 방어물질인 것이다.

“설사 십리만 떨어져도 아예 물과 바람이 다르다”라고 하지 않는가. 솔직히 고백건대 안타깝게도 우리 집사람은 애당초 방아풀이나 제피를 도무지 모르고 자란 터라, 그것을 줄곧 꺼리니 덩달아 글 쓰는 이는 애통하게도 내내 그 맛을 잃고 산다. 그도 그럴 것이 남자 입맛은 어차피 여자 손맛에 매인 것. 경북의 靑松과 경남의 山淸이 멀다면 멀지만 가깝다면 가까운 이웃인데 말이지. 이렇게들 입맛은 사람마다, 지역 따라 사뭇 다르고, 여러 까닭이 있겠지만 기를 쓰고 同族ㆍ同鄕과 혼인하려 드는 것도 뭣 보다 같은 먹이문화 를 변함없이 함께하려 하는 것일 터다. 정말이지 요놈의 만고불변, 간사한 혓바닥이 어이없게도 나라ㆍ지역을 편 가르기도 한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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