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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으로의 초대] 농부 판화가 이철수
[지면으로의 초대] 농부 판화가 이철수
  • 김정아 기자
  • 승인 2000.12.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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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2-18 13:32:20
예술이 세상에 관심을 두지 않던 80년대에 민중미술로 현실에 다가갔던 이철수 화백이, 난해한 현대미술이 삶을 밀어내는 90년대에 곱고 쉬운 칼그림으로 평범한 관객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2000년 겨울, ‘내 식구(아내)와 둘이 3천평 조금 못되는 땅에다’ 농사 짓는 틈틈이 목판에 새겼던 그림을 가지고 5년만에 개인전을 열었다.

흔히 그의 판화를 일러 시서화가 어우러지는 禪畵라 한다. 이번 전시회에선 그가 즐겨 쓰는 불교적 소재도 선문답 같은 단상도 촌부의 자연스러운 일상에 녹아있다. 법정 스님이 그의 임종게에 감동한 것도 김진호 목사가 그의 그림을 한백교회에 십자가 대신 걸어놓은 것도 촌부의 순박한 신심이 그리 깊기 때문일 터이다.
해뜰 때 일어나 일하고 해 지면 밭일도 그림도 손놓는다는 이 화백.

하지만, 농부의 삶에 대한 도시 사람의 선망과 존경을 그는 영 마뜩찮아 한다. “전원생활과 청정한 삶을 겹쳐놓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무근입니다. 농사도 돈 벌려고 지으면 직장 다니는 것과 똑같고요, 욕심 사나우면 산골 토굴에 살아도 소용없지요.”
80년대 9시 뉴스에서 운동권에 대한 압수 수색 뉴스가 나올 때면 그의 그림이 단골로 등장하곤 했었는데, 지금 이 화백은 작가적 명성과 대중의 사랑을 한꺼번에 누리는 운 좋은 미술가이다. 과거에 그가 보여준 치열한 저항 정신이 아쉬운 관객들도 적잖지만, 이 화백은 이제 민중미술이 거칠고 조악한 형태로 계속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회하고의 싸움만을 독려해야 운동인가 하는 생각을 오래 했습니다. 다시 그런 운동을 하게 될 것 같지 않습니다. 세상의 도둑놈에게 손가락질하느라 내 눈의 들보를 못 보면 어쩝니까.” 농부로 살며 농촌의 열악한 상황에 안타까워하지만, 농민의 성찰 없는 구호에 손을 들어줄 순 없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세상은 큰 도둑들 때문이 아니라 내 안의 욕심 때문에 나빠집니다. 운동은 이런 깨달음에서 시작돼야 합니다.” 마음이 탓이다. 인간이 행사한 모든 억압의 책임은 결국 인간 모두에게 있다는 그의 깨달음은 온몸으로 억압에 저항했던 그이기에 여전히 마음을 움직인다.

그는 이제 우리 모두 가난을 연습해야 하는 시대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자녀들이 가난하게 살기를 축원한다 (“아이 둘 이름으로 / 등 두 개를 밝혔다 / 가난하고 아름답게 / 살아가게 되라고” ‘등’ 중에서). “내 아이들에게만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림으로 그려서 보이려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아름다운 삶을 풍요로운 삶이라고 생각하고, 또 풍요로운 삶을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성적으로 생각해도그런 삶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온전한 정신을 가졌다면 가난해져야지요.” 그는 자기 그림이, 시절이 어려워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위로를 주기를, 동시에 노동 속에 깨어있을 힘을 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의 칼그림에나타난 주제는 치열한 일상인의 성찰보단 진리를 깨달은 도인의 지혜를 닮았다. 이 화백 자신도 그림만큼 아름답겐 못 산다고 한다.

깨달음과 생활의 간극을 메우는 작업, 그것은 그의 창작이기도 하고 삶이기도 하다. “잠시 스치는 생각이 깊어 보인대서 제가 깊어질 리 없고드러낸 말이 아름답다 해서 제 삶이 온통 아름다워 질 리도 만무합니다. 결국 처녀를 데리고 사단이 났으니 장가를 들어야 하는 총각 신세가 되었습니다. 마음을 온전히 가다듬어서, 진작에 해놓은 아름답고 순정한 그림 속 이야기에 책임을 지겠습니다. 그림이 시킨 대로 살겠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김정아 기자 anonio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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