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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취재 : 어느 재임용 탈락 교수의 하루
동행취재 : 어느 재임용 탈락 교수의 하루
  • 박나영 기자
  • 승인 2002.06.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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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05 12:53:36
지난 3월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한 김동우 세종대 교수(시각디자인과)의 1인 시위가 70여일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다. 김 교수는 법인 이사장이 그의 ‘母子立像’에 대해 “여인의 머리가 너무 커 인체 비례가 5등신밖에 안 되니 머리를 작게 하고 다리를 늘려 8등신으로 바꾸라”라는 주문에 불복, 재임용에서 탈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당한 재단의 권력 행사에 문제를 제기하며,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고단한 일상을 살아가는 김 교수의 하루를 함께 했다.

5월 29일 9시, 세종대의 시계가 막 돌아가기 시작하는 아침. 벌써 두 달이 넘도록 정문을 들어서는 학생들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주명건 재단 이사장 퇴진! 김동우 교수 복직!!’이라는 피켓을 둘러맨 김동우 세종대 교수의 모습. 김 교수가 재임용 탈락 후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한지도 벌써 70일이 넘었다. ‘왜 교수가 노동자처럼 시위를 하고 있냐’는 주변의 속삭임에는 이제 내성이 생겨간다 하더라도, 해가 길어질수록 점점 검어지는 얼굴은 정말 노동자의 그것인 것만 같다.

전근대적인 대학구조에 맞서

“안녕하세요” “수고하세요” “이따 수업에서 뵈요” 당연한 걸로만 생각했던 학생들의 인사가 이리도 고맙고 뿌듯한 것이었는지. 지나가는 할머니의, 청소부의, 멋모르는 초등학생들의 아래위로 훑는 시선도 견뎌낼 수 있게 하는 힘. 그러나 길 하나 건너에서 휘날리는 거대한 태극기의 위용,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는지.

10시 7분, 조각 수업을 위해 조소실로 향하다 잠시 연구실에 들른다. 문 앞에 붙여진 ‘204호 김동우 교수’, 아직 ‘교수’인 것처럼 느끼게 하려는 듯 버젓이 남아 있는 ‘김동우 교수’의 씁쓸한 흔적. 아침에 읽다 책상에 얹어 놓은 ‘말러’. 브람스와 쇤베르크, 후기 낭만파와 근대, 보수와 진보를 연결한 말러. 세상은 끊임없이 보수에서 진보로, 또 그 진보가 보수가 되어 다시 새로운 진보로 이어지게 마련이거늘.

조소실에는 이미 학생들이 모여 점토 두상을 다듬고 있다. “교수님, 아무개는 쌍커풀 있는 남자 싫대요. 교수님은 없으시죠?” “난 없지.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마음이지 쌍커풀이 아니야. 혹 마음의 쌍커풀이라면 모를까.” 까르르 학생들의 웃음, 그 속에서 느끼는 아주 잠깐의 휴식.

석고 작업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 마무리 단계에서 가장 많이 하게 되는 잔소리는 위, 양옆, 밑에서도 세심히 다듬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작품을 다양한 각도에서 완벽하게 검토하는 것은 조각가의 기본적인 자세. 재임용 탈락 이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각도를 알게 된 것은 조각가로서 얻은 하나의 성과일까.

점심시간 즈음, 황철민 전 세종대 교수(영화예술학과)가 조소실에 도착했다. 부산 단편 영화제 심사를 위해 공항으로 가던 중 점심이라도 함께 하려 들러준 마음이 고맙다. 그러나 가슴 한켠의 두려움, ‘황 교수 없이 어찌 일주일을 버틸 것인가’. 학교 근처 식당으로 들어가 순두부를 시킨다. 1인 시위를 하며 느끼는 가슴속의 虛함이 뱃속의 虛함으로 化하는 것인지 오늘도 밥은 두 공기.

식당에서 합류한 몇몇 교수들과 연구실로 올라간다. 복도에 붙어있는 대자보,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기다리지 않겠습니다. 이런 불행한 일이…너무도 서글픈 일이…정말 다시는 우리 회화과에 일어나지 않도록 강경하게 대처하도록 하겠습니다” 강경한 대처? 학교측의 시선이 두려워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그들이.

삶의 무게를 뒤로한 채 작업장으로

1시 20분, 다시 조소실에 들러 학생들의 작업을 돌본다.

2시, 대운동장 옆 천막 농성장. ‘주명건 이사장 퇴진! 김동우 교수 원직 복직! 민주대학 건설!’ 늘 황 교수와 함께 지키던 자리이기에 오늘따라 허전함이 더하다. 학생회 임원들 몇 명이 합류한다. 그들의 조심스런 이야기, 오늘은 선생님 없이 자기들끼리 할 이야기가 있으니 일찍 들어가시란다. 학생들 사이에 이사장 퇴진이 우선이냐 김동우 교수 복직이 우선이냐 하는 문제로 논란이 있나보다. 그래서 5시 20분경, 여느 때보다 40분 가량 일찍 농성을 접는다.

1인 시위를 계속해 오면서 잃은 것이 있다면 바로 작업할 시간. 오랜만에 경기도 광주 작업장에나 들러보려 한다. 스스로 떠안은 삶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지만, 작업장으로 향하는 발걸음만은 가벼우려 애쓴다.

박나영 기자 imnar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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