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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 산다는 것의 의미
지방에 산다는 것의 의미
  • 홍덕률 대구대
  • 승인 2002.06.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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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로 세평
전국의 주요 지방신문사 간부들이 며칠전 한자리에 모였다고 한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으니, ‘지방선거와 지역언론의 역할’ 같은 주제가 논의됐을 것 같은데, 내용과 결론은 뜻밖이었다. 지금의 지방신문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지방신문 육성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돼야 하고 그를 위해 노력하자는 것이었다. 지상파의 위성 재전송 법안을 놓고 지역 방송인들이 격렬하게 들고 일어난 것이 불과 몇 달 전 일이었는데, 지방언론이 위기긴 위기인 모양이다.

하지만 지방의 위기감이 단지 언론계만의 현상은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작년 3월에는 전국의 지방대학 총장들이 경주에 모여 지방대학의 위기 상황에 공감하고, ‘지방대학 육성을 위한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법안을 다듬은 뒤, 국회에서 공청회를 열고 교수서명까지 첨부해 활발한 입법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만큼 지방대학은 절박한 위기에 처해 있다.

전국의 우수한 학생들은 무조건 ‘서울에 있는 대학들’로 진학하려 한다. 전국의 대학들은 한 개의 ‘서울대’와 그 외의 ‘비서울대’가 아니라, 서울에 있는 ‘서울대학들’과 지방에 있는 ‘지방대학들’로 분류되고 있다. 한 때 지방의 명문대학 교수와 학생들이 가졌던 자존심도 옛날 얘기다. 심지어 열악한 지방 사립대학들은 문을 닫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존의 위기를 고민하고 있다.

지방의 언론과 대학이 위기에 빠져 있으니 지방의 문화가 살아날 리 만무하다. 지방 경제가 심각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IMF 위기는 특히 지방의 중소기업들에게 가혹했고, 지방 경제를 철저하게 유린했다. 지방의 많은 중소기업들은 지금도 IMF 위기중이다.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니 선거 이야기도 좀 해야겠다. 엄연히 생활정치의 축제여야 할 지방선거인데, 정작 지역민이 겪는 생활상의 불편과 지역의 쟁점은 사라지고 정권 교체나 수구세력 심판이라는 중앙당의 구호가 전국을 휩쓸고 있다. 지방선거도 대선의 전초전에 불과하고, 지방민은 지방선거 국면에서도 자기문제를 고민할 수 없는 실정인 것이다.

‘지방에 산다는 것’은 그래서 종종 슬픔으로 다가온다. 서울에 사는 사람이 일류 국민이라면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이류 국민, 심지어는 지방 식민지 백성이란 자괴감까지도 갖고 있다. 엄청난 사명감으로 소화해 내지 않고서는 버텨내기 힘든 고통이기까지 하다. 이렇게 좁은 땅에 살면서 ‘남과 북’, ‘동과 서’에 이어 ‘수도권과 지방’으로까지 나뉘어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면 한없이 착잡해질 뿐이다.

다행히 최근 지방을 살리자는 운동이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고 있다. 작년 9월, 전국의 각계 지식인 2천7백57명이 ‘지방분권 실현을 위한 전국 지식인선언’을 발표한 것이 의미있는 첫 출발이었다. 이류 국민 취급받는 것에 대한 감상적 항의가 아니라, 지방이 계속 이래서는 나라도 제대로 설 수 없다는 이성적 분노이자 경고였다. 그 뒤 선언에 참여한 전국의 지식인들은 각 지역별로 지방분권을 실천해 가기로 했다.

잠시 대구경북의 이야기다. 지식인선언에 참여한 대구경북의 지식인들은 지역의 NGO와 지방분권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과 전략에 대해 토의했다. 호남의 지식인들과도 몇차례 만나 의견을 교환했다. 그 뒤 지난 4월 13일에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를 출범시켰다. 교수 외에도 변호사, 교사, 언론인, NGO, 기업인, 의사 등 중앙집중의 체제 하에서 신음해온 지역의 각계 인사들이 발벗고 참여했다.

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는 우선 6·13 지방선거를 지방분권운동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는 계기로 삼기로 했다. 지방선거를 위한 정책 및 분권 캠페인을 지역 언론사와 함께 추진하기로 했으며, 대구시장과 경상북도지사 후보 토론회를 개최해 후보들의 지방분권 의지를 검증하기로 했다. 지난 달 30일에는 시내 중심가에서 ‘지방분권 실천 후보 결의대회’도 개최했다. 대구시장과 경상북도지사에 출마한 후보들은 물론 기초자치단체장 후보들도 상당수 참가시켜서, 앞으로 지방분권을 위해 적극 노력할 것이라는 다짐과 서명을 받아내기도 했다.

‘지방에 산다는 것’이 결정적으로 손해인 체제여서는 곤란하다. 지방대학에서 지방의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보람이요 자존심이야 못될망정 부끄러운 일이어서도 안된다. 지방의 언론은 마땅히 지역의 자존심이어야 하며, 대기업 본사도 지방에서 불편없이 가동될 수 있어야 한다. 노벨상을 꿈꾸는 젊은 학도도 지방대학의 실험실에서 연구에 매진할 수 있어야 한다. ‘지방에 산다는 것’, 아니 ‘지방에서 열심히 산다는 것’은 그런 균형잡힌 사회를 만들어 가는 보람이기도 한 것이 아니겠는가.

홍덕률 대국대·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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