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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경화' 원인 먼저 생각해봐야
'우경화' 원인 먼저 생각해봐야
  • 박유하
  • 승인 2011.04.18 13: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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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 교수의 '일본 리버럴' 비판, 이의 있다
‘재일조선인’ 서경식 도쿄게이자이대 법학부 교수(사진)가 최근 출간한 책『언어의 감옥에서』(돌베개)는 오늘의 한일관계를 정면에서 응시하면서 ‘계속되는 식민지주의’와의 싸움이라는 문제의식을 집약한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우에노 지즈코, 하나자키 고헤이, 이양지, 박유하, 와다 하루키 등 한일 지성인들을 ‘가혹하게’ 비판하고 있다. 특히 서 교수는 박유하 세종대 교수가 제기한 ‘화해’의 방식을 일본 리버럴과 연결해 그것이 ‘폭력적’임을 일관되게 지적한다. “박유하의 모든 레토릭은 궁극적으로 한일 간 불화의 원인이 ‘일본’이 아니라 ‘한국’의 불신에 있다는 박유하식의 가짜 ‘화해론’으로 수렴한다”라는 서 교수의 비판에 박유하 교수가 반론을 제기했다.

서경식 교수의 비판에 대답하기 전에 먼저 문제의 배경에 대해 정리해 두기로 한다.

1990년대 초반에 이른바 ‘위안부문제’가 불거지면서 사죄와 보상을 둘러싼 논란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문제가 20년이 다 돼가도록 해결되지 않는 이유를 한국인의 대부분은 ‘일본이 사죄도 보상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이 1993년에 공식 사죄를 하고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는 말과 함께 ‘아시아여성 국민기금’이라는 것을 만들어 1997년부터 보상을 시작했고 2003년의 기금해산시점에서 위안부피해자의 ‘반 가까이’가 보상금을 받았다는 사실은 한국에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물론 위안부 문제에 관여해 온 단체나 학자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일본이 ‘보상’하려 했다는 사실을 한국사회에 알리려 한 흔적은 없다.

일본은 왜 ‘국가적 책임’을 표명할 ‘국회’의 의결을 끌어내지 못하고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면서 국민기금을 조성했을까. 그것은 1965년의 한일조약이 한일 간의 과거에 대해 서로 간에 과거에 관한 요청을 ‘영구히' 하지 않겠다고 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식민지배 책임을 느끼지 않거나 1965년의 ‘조약’을 들어 반대하는 이들이 많은 가운데 그 시점에서 가능한 ‘보상’을 하고자 일본 정부는‘국민기금’을 조성했던 것이다.

문제는 이 때 일본의 진보가 양분됐다는 점이다. 국민기금을 ‘책임회피’의 ‘술책’으로 간주한 이들은 ‘국가보상’을 주장하며 기금을 격렬히 반대했고 이후 일본의 진보는 오늘까지 이 문제를 놓고 대립상태다. 서경식 교수의 비판은 기금을 반대했던 이들의 생각을 대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본의 사죄도 보상도 없었다는 인식이 일반화 돼 가는 속에서 나는 한국에 좀 더 충분한 정보제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정보의 양과 질에 따라 논의의 기반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화해를 위해서’라는 말에 담은 것은 그런 생각이었다. 말하자면 제대로 된 논의가 가능한 기반을 만들고 싶었을 뿐, ‘무조건 화해’가 필요하다고 말한 적은 없다. 그리고 내 책(『화해를 위해서』의 일역판『和解のために』, 平凡社, 2007)의 반은 일본 우파 비판이었다.

그런 내 책을 일본의 진보는 대부분 높이 평가해주었지만 예상대로 국민기금반대운동을 했던 이들은 격하게 비난했다. 그리고 비판들은 대부분 ‘기금’에 대한 비판에서처럼 어떤 정치적 ‘의도’를 찾으려 했다. 그러나 이들은 ‘화해를 위해서’가 한국을 향해 먼저 집필된 책이라는 점을 간과하거나 무시하고 있다. 한국에, 일본의 ‘사죄와 보상’의 현황에 대해 알리고 그 배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현대일본과 전후일본에 관한 기본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책이라는 점을. 나는 다만 ‘전후일본’이 ‘자민당’ 일당체제이긴 했어도 평화헌법과 민주주의체제를 도입하고 ‘새로운 일본’을 만들려 했다는 점을 말했고 위안부 문제에 관해 좀 더 진전된 논의의 장을 마련하고자 했을 뿐이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비판-일본의 우파가 받아들일 수 있는 비판-도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 교수는 최근 출간한『언어의 감옥에서』(돌베개)에서, 일본의 리버럴이 ‘국민주의’의 틀에 안주하고 있고 실은 식민지 책임을 질 생각이 없으며 ‘도의적 책임’이라는 말로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본의 우파와는 구별되고 싶어하고 그러던 터에 나의 책이 그들이 말하고 싶었던 ‘화해 ’(그냥 흘려보내기 정도로이해한다)를 말했기 때문에 환영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은 피해자에 대한‘폭력’이고 식민지배 책임을 묻는 세계적 조류에 저항하는‘위험한’움직임이라는 것이 책에 수록된「화해라는 이름의 폭력」이라는 글의 요지다.

그러나 ‘화해를 위해서’는 서 교수가 말하는 ‘식민지배 책임을 묻는 세계적 조류’와 무관한 책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기금 역시 마찬가지다. 위안부 문제란, 서 교수가 말하는 것처럼 설사 ‘강제로’ 끌려가지 않았다 해도 위안부 문제는 식민지배 구조 속의 일이다. 그런데 그런 지적은 이미 6년 전에 ‘화해를 위해서’에서 내가 한 말이기도 하다. ‘법적으로’ 1965년에 식민지배에 대한 보상이 끝났다 하더라도, 1990년대에 정부가 예산의 반을 출자하며 다시 보상을 한 것이었으니 ‘국가보상’의 형태를 취했으면 좋았을 거라고도 나는 분명히 썼다, 그러나 서 교수는 나의 책에 그런 지적이 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런 글쓰기가 내 책이나‘일본 리버럴‘에 식민지배 책임의식이 없는 것으로 독자들이 생각하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내 책의 내용 절반이 일본 우파 비판이라는 것을 고작 한줄로 처리하는 것도 그런 글쓰기의 결과다.

물론 ‘국민기금’에 숨어 있을지 모르는 의식적/무의식적 ‘식민지주의적 의도’를 묻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 작업은 기금에 참여한 이들의 순수한 의도를 보는 일과 병행돼야만 공평하다. ‘일본의 리버럴’과 ‘국민 대다수’가 국민기금에 참여한 것을 두고 그저 식민주의 책임을 질 생각이 없어서 한 행위로 간주하려면 먼저 그들이 그런 형태로나마‘책임을 지려 했'다는 사실도 말하는 것이 공정하다.

서 교수와 나의 근본적 차이는 ‘전후일본’과 ‘현대일본’에 대한 인식 차이뿐 아니라 주장의 ‘방식’과 ‘순서’에도 있다. 서 교수는 전후일본이 ‘양심적 지식인’을 낳은 일도 없었고 일본국민의 ‘대다수’가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인가. 물론 나 역시 ‘전후 일본’의 모순과 한계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작업을 나 역시 20여 년 전부터 해왔다(곧 발간될『내셔널 아이덴티티와 젠더』는 그 작업의 일환이다). 그러나 그런 모순과 식민지주의에 대한 비판을 ‘전후일본의 가능성’조차도 일반인식이 되고 있지 않은 장-한국을 향해 말하는 일은 한국을 기만하는 일일 뿐이다.

내가 ‘전후일본’에 관해 긍정적으로 말한 이유는 단 한 가지, 앞서도 말한 것처럼 ‘기본정보’의 공유를 위해서다. ‘전후일본’의 모순과 한계를 말한다 해도 그 이전에 ‘전후일본’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뤘는지는 알고 비판하는 것이 논의의 수준을 심화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 교수의 ‘전후일본’ 비판은 후쿠자와 유키치와 마루야마 마사오를 같은 도마 위에 올려놓고 비판하는 것처럼 모순된다. ‘진보의 한계’를 말하는 일은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진보’와 ‘보수’에 대한 비판이 같은 문맥에서 다루어지는 것은 과연 옳은가. 서 교수가 ‘일본진보’와 나에 대한 비판 속에서 일본 우파에 대한 이야기를 간간이 섞어 독자를 혼란시키는 일에 대해서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나 역시 식민주의 비판이 필요하다는 서 교수의 주장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세계가 변하지 않는 이유를 오로지 세상의 ‘레토릭’과 ‘책략’으로 간주하는 서 교수의 비판 ‘방식’은 옳은가. 서 교수의 말처럼 서 교수의 책이‘인기가 없’다면 그것은 ‘일본국민의 대다수’가 ‘국민주의’나 식민주의에 젖어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주장 속에 선입견에 근거한 곡해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서 교수는 천황제유지가 곧 식민지배 긍정인 것으로 간주하지만 전후일본이 천황제 유지를 조건으로 헌법 9조를 선택했다는 사실은 모르는 듯하다. 1910년의 조약이나 1965년의 조약에 관한 현재 진행 중인 구체적인 논의에 대해서도 서 교수는 무관심한 것으로 보인다.

‘在日’에 대한 차별이나 그 밖의 일본사회의 모순을전부 일본 리버럴까지 ‘식민지배에 대한 책임의식’이 없기 때문으로 단정하는 일은 그래서 ‘폭력’적이고 ‘위험’하기까지 하다. 자신과 조금 다른 생각에 대해 쉽게‘반동’의 딱지를 붙이는 ‘폭력’은 그가 말하는‘세계평화’에 기반이 돼야 할 ‘신뢰’ 아닌 ‘불신’을 조장할 뿐이기 때문이다. ‘일본 리버럴’의 ‘우경화’를 비판하려면 무엇이 그들을 ‘우경화’로 몰고 가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일본 리버럴’을 적으로 돌리는 일은 보상을 점점 더 어렵게 할 뿐이라는 점이다.

나는 2010년 일본의 신문에 쓴 칼럼에 위안부문제의 보상이 필요하다고 썼다. 또 보상을 거부하는 우파의 사고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책을 준비 중이다. 다만 서 교수와는 다른 방식의 말걸기가 될 것이다. 딱지붙이기와 선입견으로는 그들을 변화시킬 수 없을 것이기에.

박유하 세종대·일어일문학과

박유하 세종대·일어일문학과

필자는 일본 와세다대에서 일본근대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반일민족주의를 넘어서』,『 화해를 위해서-교과서·위안부·야스쿠니·독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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