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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황혼 … 거북등을 밟고 지나온 시간들은 꿈이었을까
책들의 황혼 … 거북등을 밟고 지나온 시간들은 꿈이었을까
  • 이창남
  • 승인 2011.04.18 1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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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신은 죽었다”라는 말을 우리는 오래 전부터 익숙하게 들어오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책은 죽었다”라는 말을 듣게 된다. 책이 잘 안 팔린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서고에 가득 찬 읽히지 않는 책들, 도서관에서 먼지를 덮어쓰고 있는 책들, 헌책방에서 폐휴지와 책 사이의 간발의 편차 속에 명목상 책일뿐인 책들, 이 많은 책들은 의미를 담고 있었고, 의미를 지시하고 있었고, 의미를 구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의미가 무의미해지는 시대에 책들은 이른바 종이와 잉크로 다시 분해된다.

책의 역사는 길지만, 근대적 의미의 책은 불과 300년 정도의 역사를 가지고있다. 이 시간 동안 수많은 책들이 씌어져 왔고, 쓰레기가 되는 책이 있는가하면, 미라처럼 도서관에 오래 보존되는 책들도 있었다. 독일에서 사람의 손이 한 백년간 닿은 적이 없어 보이는 책을 만지는 희열을 경험하면, 손끝이 저리고 머리가 어지럽다. 때로는 중세 수사의 손때가 묻어 있을 듯도 한 책들도 있었다.

중세의 책은 세계였고 자연이었다. 그 자연은 하느님의 계시가 임재해 있는 어떤 상징이었다. 근대의 책은 이성의 빛이나 자연의 목소리를 담는 그릇이었다. 오늘날 데리다와 드 만이 말하고 있는 책의 죽음은 이러한 자연의 현존과 신적인 목소리의 상실을 전하고 있다. 신이 죽은 것처럼 그 계시의 매개체인 책도 죽었다. 전통적 상징의 논리를 파괴하는 데리다의‘차연’의 논리에 사용되는 a가 거대한 무덤인 피라미드 A가 되듯이, 문자들이 전기신호로 날아다니는 시대에 오히려 전통적 의미의 의미 완결적인 책과 독서에 대한 기대는 사라져가는 것 같다.

이제 어디에서 책을 찾을 것인가. 책이 없는 세상은, 의미 없는 세상처럼 심심할 것이다. 한 때 나와 세상을 이어주는 징검다리였던 책들, 무의미의 심연 위에 떠있던 조그마한 거북등과 같이 아련한 곳으로 나를 데려가던 책들, 책이 죽고, 독서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이제 사라져버린 세계와 나의 아름다운 가교, 세계와 나의 행복한 만남이 다 환영이었던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마흔을 넘기니 그 아름다운 거북등들을 밟고 지나온 시간들도 사실 잠속의 꿈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와 독서는 나란히 변해가는 것 같다. 이제는 그런 가짜 환상들을 선전하는 책들은 지겹다. 차라리 죽은 듯이 쓰러져서 분해를 기다리는 헌책방의 책들이 좋다. 요즘은 물론 헌책방도 드물다. 칠순의 중반을 넘긴 아버지와 삼촌은 틈틈이 종이를 모아서 파신다. 때로 오래된 책들이 그 사이에 끼어 있으면, 어린 시절 책벌레였던 내게 꼭 그 책들이 필요하지 않은지 물으신다. 문학전집, 사전, 외국어 교재 등등…… 한 때 꼭 필요하던 책들도 시효가 지나면 폐휴지로 사라진다.

어떻게 보면 지나온 시간들처럼 책들은 한 장 한 장 폐휴지가 돼 가는 듯하다. 책에 설사 신의 계시는 아니라 하더라도, 세상은 책 속에 있었고, 책은 세상의 길을 밝히는 조그만 나침판이었다. 그 나침반, 그 거북등이 잠 속의 꿈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은 비단 해체론자 만은 아니다. 예전의 환상과 꿈들이 나이와 더불어 황홀한 빛을 잃어가듯이, 책들이 설파하는 희망의 행간들과 정돈된 목소리들 속에 허접한 삶의 속살들이 드러나 보이는 것은 왜일까.

‘책을 읽을 수 없는’難讀症환자처럼, 아니 정확히 말해서‘책이 말하는 대로 읽을 수 없는’내게 책은 정말 죽은 것일까. 푸쉬킨은“세상이 그대들을 속일지라도 결코 슬퍼하거나 분노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이제는 잘 속아지지 않아서 슬프거나, 화날 때가 더 많다. 그렇다고 쉽게 속아주기에는 너무 뻔해 보이는 구호들과 선전들. 책도 예외가 아니다.

오늘날 ‘책의 죽음’에 대한 해체론적 선언은 냉철한 독서에 대한 요청이기도 하다. 모든 거짓된 가상과 허위를 떨쳐버리고도 살아남는 책이 있을까. 그런 책은 없을 것이다. 다만 책의 아우라를 벗겨낸 상태에서도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는 독자들이 있다면, 그런 독자들과 더불어 책들은 오늘날의 가혹한 황혼을 건너갈 수 있을 것이다.

 

이창남 서평위원 / 한양대 비교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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