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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경의 세계만화읽기] ‘어두운 도시들 연작'은 계속된다
[성완경의 세계만화읽기] ‘어두운 도시들 연작'은 계속된다
  • 교수신문
  • 승인 2000.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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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2-18 13:30:04
멀티미디어와 인문적 상상력의 만남

□ 프랑스와 스퀴텐(1956- ): 벨기에의 만화가 겸 시나리오 작가, 화가, 건축가. 그림은 ‘어두운 도시’ 연작 중 ‘성탑’(1987)의 한 장면. 삽화는 스퀴텐의 ‘자화상’(1992).

만화는 인간 활동의 어떤 창조적 영역에 인접해 있는가. 벨기에의 만화가 프랑소와 스퀴텐과 시나리오 작가 겸 이론가 베노와 페터즈가 공동창작한 ‘어두운 도시들’ 연작은 이 질문에 대해 놀라운 방식으로 답을 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만화는 제목 그대로 여러 도시들에 대한 이야기를 연작으로 엮은 것이다. 각각의 도시에 대한 묘사는 놀라우리 만치 꼼꼼하고 생생하다. 마치 고고학과 도시설계학, 신화학과 역사학의 모든 분야의 지식을 가지고 현존하는 (혹은 현존했던) 도시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듯하다. ‘도시’ 자체가 개개의 등장인물과는 비교되지 않는 비중을 가지고 살아 숨쉬는 진짜 주인공이다.

스퀴텐의 만화에는 늘 건축과 도시가 등장한다. 이것은 건축가를 아버지로 두었던 그의 색다른 성장배경과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건축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펜이며, 붓, 연필을 들고 종이 속에 파묻혀 살았으며, 실제로 그는 세비야 만국박람회의 뤽상부르관 디자인을 했고 최근 열렸던 하노버 박람회에도 한 전시관 설계를 맡아 했을 만큼 유명한 건축가가 되었다. 거대한 도시계획의 설계도처럼 장대하면서도, 또한 섬세하고 사실적인 그의 그림 스타일은 상당 부분 그의 건축적 표현력에 의존하다.

또한 스퀴텐은 지하철 미술장식, 조각 및 실크스크린 전시, 영화의 미술감독 등으로 다채로운 재능을 펼쳤다. 이렇듯 그는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에 대한 백과전서적인 폭넓은 지식과 탁월한 그래픽적 표현력이 만화라는 장르에서 극적으로 집약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만화가다. 멀티미디어라 하면 우리는 즉각 컴퓨터를 떠올린다. 그러나 스퀴텐이 주목하는 것은 이보다 훨씬 폭 넓은 창조의 영역이며 또 그 영역들의 전통과의 연속성의 문제다. 그의 만화개념 속에서는 건축, 인테리어, 그래픽 디자인, 도시설계, 전시디자인, 제품디자인, 공공미술, 사진소설(포토 로망) 등이 자연스럽게 인접되어 있다.

수많은 장르를 아우르는 그래픽적 표현력과 이에 상응하는 종횡무진의 고고학적 철학적 성찰, 이 양자가 결합된 그의 작품은 보르헤스적 은유의 세계에 버금가는 예술 세계를 보여준다. 스퀴텐이 건설한 도시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도시가 아니라 이 세계와 병행하여 존재하는 다른 차원에 속한 도시들이다. 따라서 현실 세계와 매우 흡사하지만 무언가 다른 것이 있다. 그것들은 실재의 그림자로서의 도시며, 실제 세계를 ‘은유’하는 도시라 할 수 있다. 스퀴텐은 이 ‘도시’를 통해서 광범위한 인류의 지식체계와 유토피아에 대한 꿈, 그리고 그것의 실패와 노스탤지어 등을 만화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 메타포는 거의 편집광적일 정도로 정교하고 방대하게 구성되어 있다. ‘어두운 도시들 안내서’라는 편람 형식의 가이드북까지 출간되어 있을 정도다. ‘어두운 도시들’ 연작은 83년에 시작되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아직도 생성 진화 중인, 하나의 거대한 세계이자 꿈 혹은 메타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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