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이사] ‘서편제’ 또는 ‘쉬리’?
[학이사] ‘서편제’ 또는 ‘쉬리’?
  • 김환석 국민대
  • 승인 2002.06.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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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03 00:00:00

해로 ‘사회학’이라는 학문을 접한 지 약 30년이 돼간다. 한 세대에 해당하는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다. 물론 처음부터 사회학을 알거나 꼭 좋아해서 선택했다기보다는 우연적 요소도 많았고, 또 그 동안 줄곧 사회학의 본류에 해당하는 것만을 공부하기보다는 곁길로 샌 기간도 꽤 됐다. 하지만 대학교로 옮긴 후 8년 이상이나 사회학이란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려고 비지땀을 흘려 왔으므로, 이제 사회학이 몸에 잘 맞는 옷처럼 느껴지고 나만의 독창적인 옷맵시를 낼 줄도 아는 때가 됐건만 아직 그 길은 멀게만 느껴진다.


그것보다 요즘 수업시간과 평소에 자주 떠오르는 것은 ‘내가 왜 이 학생들 앞에서 굳이 이런 지식을 가르치고 있나’ 하는 질문이다. 학부제 이후에 학생들이 전공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고 대학이 점점 취직학원과 고시학원처럼 돼가는 것 같다. 특히 사회학처럼 취직에 도움이 안 되는 비인기전공 기초학문의 경우 가히 ‘위기’라고 표현될 만큼 그 토대가 무너지고 있고 장래가 불투명한 신세가 돼가고 있다. 그러나 나의 질문은 이런 상황 때문에만 떠오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보다 더 근본적으로 ‘사회학은 지금 여기에 사는 우리들에게 과연 무엇인가’ 또는 더 구체적으로 ‘나는 왜 사회학을 공부하나’란 깊은 의문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년 전쯤 석사과정 공부를 할 때 ‘종속이론’이란 것을 알게된 것도 결국 사회학을 통해서였지만, 정작 사회학 자체가 서구의 근대성을 이루는 한 문화적 산물이요 서구가 우리와 같은 제3세계를 종속적인 방식으로 ‘근대화’시키는 과정의 한 부분이란 것을 그리 크게 깨닫거나 중요한 문제로서 생각해보지는 않은 것 같다. 사회학의 선구자라 불리는 콩트와 스펜서, 맑스, 베버, 뒤르켐 등은 서로 다양하지만 결국 모두 서구 백인남성의 시각에서 근대사회를 이해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왜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나 자신 그 동안 해온 공부라고 하는 것은 이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수많은 책을 읽으며 허겁지겁 따라가고, 또 아직 소화가 덜된 그 지식을 무관심한 학생들에게 어떻게든 전달하기에만 급급해왔던 것은 아닐까.

이런 질문을 던지면 금방 떠오르는 대답중 하나는 ‘서구의 것을 배격하고 우리의 것을 찾아야 한다’는 민족주의적인 생각이다. 사실 이것이 종속이론의 함정이자 한계이기도 하다. 내가 그것을 올바른 대안으로 보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과연 실현가능한 것이냐의 여부를 떠나서, ‘지금 여기에서의’ 우리 문제를 푸는 데 결코 바람직한 대안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최근 유교나 동양사상에서 ‘한국적 사회학’의 단초를 찾으려는 시도들은 이러한 민족주의적 대안의 일부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그것이 서구에서 들여온 생소한 사회학적 개념과 이론들에 비해 우리 문화에 뿌리를 내린 지가 좀더 오래됐고 때문에 우리에게 친숙하다고 해서, 과연 ‘지금 여기’ 우리가 가진 새롭고 복합적인 문제들에 대한 올바른 답을 준다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탁석산은 ‘한국의 정체성’이란 책에서 오늘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서편제’보다는 ‘쉬리’가 더 한국적인 영화라고 주장해 신선한 문제의식을 던져준 바 있다. 과거의 것 또는 소수가 즐기는 것이 아닌, 현재 한국의 대중이 자기의 것으로 즐기는 문화가 ‘한국적’이라는 용어에 더 합당하다는 말이다. 더구나 ‘서편제’에서처럼 판소리를 지키기 위해 딸의 눈을 멀게 하는 것과 같은 결론은 지금 우리의 문제해결을 위한 올바른 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중추수주의로 흐를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시각이 학문에 대해서도 음미해볼 가치가 많다고 생각한다.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우리들은 서구 사람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우리도 아니다. 따라서 근대화와 세계화로 집약되는 서구지향도, 그 반대로 민족주의에 기초한 전통지향도, 모두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를 위한 진정한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사회학의 미래는 그 개념과 접근의 뿌리가 서구의 것이든 우리 전통의 것이든 가리지 않고, 지금 여기의 다양한 우리 문제들을 이해하고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새롭고 다양한 지식의 창출에서 찾아야 한다.
<국민대·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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