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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적 이동'이 만들어낸 풍경의 변화 앞에서
'신자유주의적 이동'이 만들어낸 풍경의 변화 앞에서
  • 윤영도 성공회대 HK연구교수
  • 승인 2011.03.27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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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윤영도 성공회대 HK연구교수
3월 11일 일본 동북지방의 지진과 쓰나미 직후에 발생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전 세계를 긴장시켰다. 연일 원전 사고의 상황을 알려주는 뉴스가 보도되는 와중에 시선을 끄는 뉴스가 하나 있었다. 방사능 유출이 심각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 속에 커다란 재앙을 피해 일본에 체류 중인 외국인들과 일본인들이 가까운 이웃나라인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고 있다는 기사였다. 기자는 이를 가리켜 ‘일본 엑소더스’라 이름붙이고 있었다. 뭔가 과장스러운 제목을 지닌 이 기사에 왠지 시선이 끌렸던 이유는 아마도 필자가 현재 ‘이동’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바라본 ‘문화로서의 아시아’라는 공동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시아 지역은 물론 한국에서도 이민족의 집단적인 ‘이동’은 항시적으로 존재해왔다. 이번 ‘일본 엑소더스’와 같이 자연재해로 인한 일시적인 ‘이동’에서부터 대한제국 시기를 전후로 한 중국 화교의 유입이나, 식민지 시기 일본인의 진출에 이르기까지. 독립 이후 근대 국민국가 건설과 냉전시기 동안 남한 땅에서 이민족에 대한 배타적인 배제의 과정이 진행됐고 또한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선 인적인 ‘이동’이 자유롭지 못했기에, 그러한 이민족의 존재나 ‘이동’에 대한 기억을 거의 망각하다시피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21세기 현재, 남한 사회에는 수많은 이민족들이 ‘이동’해왔고, 또한 일상 속에서 그들을 아주 쉽게 만날 수 있다.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주한 미군을 제외하면 남한 땅에서 피부 색깔이 다른 외국인을 본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던 것과 비교해보면, 상당한 변화라 할 만하다. 1994년부터 2006년까지 시행된 산업연수생 제도를 통해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들을 비롯해 한국으로 시집온 아시아 각 지역의 이주 여성들에 이르기까지, 현재 한국에 120만이 넘는 외국인들이 체류하고 있다.

이 같은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선 일상적인 ‘이동’이라는 변화의 배경에는 신자유주의가 있다. 산업연수생이라는 제도 자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자유주의 질서 하의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바로 현 시대의 ‘이동’을 추동하는 가장 강력한 힘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과 시장의 논리에 따라 국민국가라는 장벽과 경계를 넘어선 일상화된 현 시대의 ‘이동’을 ‘신자유주의적 이동’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자본의 논리에 따른 노동 유연화는 단지 공업이나 농ㆍ어업과 같은 산업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대학 역시 자본의 합리화라는 논리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대학들의 전반적인 변화 역시 그러한 틀 안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교육노동자 계층의 서열화 내지는 양극화 역시 그러한 변화의 한 측면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전공분야인 중국어문학의 경우 상대적으로 노동 유연화에 적합하고 원어민이라는 장점을 지닌 중국인의 체용이 늘고 있는 추세인 것 또한 그러한 신자유주의적 ‘이동’과 관련이 없다 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신자유주의적 노동 유연화와 ‘이동’으로 인해 현 시대를 살아가는 비전임 교육노동자들은 글로벌한 경쟁이라는 짐을 하나 더 짊어져야만 하는 셈이다.

그런데 인문학을 하는 이로서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이동’이 만들어내는 경쟁이라는 부담보다 더욱 곤혹스러운 것은 과연 내가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내고 있는 현 시대 문화풍경의 급속한 변화를 제대로 쫒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또 이를 제대로 해석해내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는 사실이다.

최근의 급격한 정치ㆍ경제ㆍ사회적 변화들은 우리의 아시아 상상과 심상지리에도 심각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최근의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도 이주 노동자나 이주여성을 다룬 작품들이 드물지 않고, 또한 다문화 가정에서 빚어지는 여러 사건과 현상들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인적 교류나 이동 자체와는 다소 거리가 있기는 하지만 한류와 같은 대중문화 차원의 교류 현상이 커다란 이슈가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최근 일본 대지진에 대해서는 피해 복구를 위한 모금운동에 한국인들이 커다란 호응을 보이는 현상 역시 신자유주의적 변화와 관련이 있다고 하겠다.

이 같은, 최근의 양가적이면서도 복합적인 인문풍경의 변화를 제대로 읽어내고 그 학문적 성과를 교육을 통해 사회로 환원시켜야 한다는 인문학자로서의 책임감은 신자유주의적 ‘이동’이 던져주는 또 하나의 부담이라 하겠다.

윤영도 성공회대ㆍ중문학
연세대에서 박사를 하고,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에서 HK연구교수로 있다. 역서로 '중국 경제지리를 읽는다'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 문화연구(Cultural Studies)를 주요 연구과제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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