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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공립대 전업강사 일부만 구제 가능성…사립대 재정지원 전혀없다
국공립대 전업강사 일부만 구제 가능성…사립대 재정지원 전혀없다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1.03.27 22: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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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강사 교원 지위 얻는 것 맞나?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위원장 임순광 경북대)은 지난 3월 24일 정부 중앙청사 후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기만적인 개정안을 즉각 철회하고 시간강사를 비롯한 비정규 교수에게 내실 있는 교원지위를 부여하라”고 요구했다.  사진 권형진 기자

 

시급 받는 1년 기간제에 처우도 기존 ‘비정년 강의전담교원’보다 못 해

1977년 10월 교육법이 개정되면서 시간강사는 교원 지위를 잃었다. 1997년 교육법을 폐지하고 고등교육법을 제정할 때에도 전임강사까지만 교원 지위를 인정받았다. 지난해 5월 조선대 서 아무개 박사(45세)까지, 98년 이후 8명의 시간강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34년 만이다. 2011년 3월 22일, 정부는 교원의 종류에 강사를 추가하는 내용의 ‘고등교육법 일부 개정안’을 확정했다. ‘시간강사 제도 폐지’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4월 임시국회에서는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정작 당사자인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은 화가 단단히 났다. ‘지금까지 나온 최악의 안’ ‘사립대만을 위한 안’이라는 평가를 서슴지 않는다. ‘정부가 기만적인 개정안을 즉각 철회하거나 임시국회에서 내실 있는 교원 지위 부여를 먼저 약속하지 않을 경우 현 정부 규탄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반발한다.

‘교원 외 교원’ … 교원인가 아닌가
정부가 이날 국무회의에서 확정한 고등교육법 개정안의 핵심은 ‘시간강사’라는 명칭을 ‘강사’로 바꾸고, 교원의 종류에 강사를 추가하는 것이다. 임용기간은 1년 이상으로 하고, 재임용 심사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지난해 11월 입법예고했던 정부안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입법예고안은 교원의 종류(고등교육법 제14조 2항)에 ‘교수ㆍ부교수ㆍ조교수 및 전임교수’ 외에 강사를 추가해 교원 지위를 부여하는 안이었다. 이날 확정된 안은 ‘제14조의2(강사)’를 신설해 ‘제14조 2항의 구분에 따른 교원 외에 교원’으로 강사를 따로 규정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기술적인 문제’라고 설명한다. 교과부 관계자는 “2008년에 전임강사를 폐지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인데, 기존 정부안과 충돌할 수 있다는 법제처 지적에 따른 것”이라며 “강사들에게 교원지위를 부여하는 것에는 달라진 게 없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두 법안을 병합 심사할 때 이 조항(14조의2)만 삽입하면 되도록 하기 위해 따로 조항을 신설한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임순광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위원장은 “‘교원 외 교원’이란 ‘선생 아닌 선생’이라는 말인데, 어떤 대우를 받고 어떤 명칭을 갖든 ‘고등교육법 14조2항의 교원의 범주에 들어가야 제대로 된 교원이라 볼 수 있다”라며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발의됐던 법안들은 모두 고등교육법 14조2항에 시간강사를 포함했던 것”이라고 반박했다.

실제 이 고등교육법 14조 1항과 2항에 따라 대학에 두는 교원은 총장과 학장, 교수, 부교수, 조교수, 전임강사로 구분된다. 지난 77년과 97년, 이 조항에서 제외되면서 시간강사는 교원으로서의 법적 지위를 잃었다.
‘교원 외 교원’으로 강사를 두면서 “교육공무원법, 사립학교법 및 사립학교교직원연금법을 적용할 때에는 교원으로 보지 아니한다”라는 단서조항을 단 것도 의구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사실상 강사들을 교원으로 인정했다고 보기 힘들다”라고 지적했다.

강사에게 교원 지위를 부여한다고 해도 기존 전임교원과 동일한 조건으로 신분과 지위를 보장하겠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안은 대학인사위원회를 거치도록 하는 등 임용이나 신분보장과 관련해 일부 교육공무원법과 사립학교법을 준용한다고 밝혔지만 정작 교원의 기본권리 가운데 하나인 소청심사 청구권은 빠져 있다.

임순광 위원장은 “1년짜리 기간제 노동자가 의사에 반한 면직이나 권고사직 금지 등의 권한을 제대로 쓸 수가 있겠느냐. ‘법에서 정한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임용계약에서 정한 사유’에 의해 징계할 수 있어 대학 측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교원을 통제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무늬만 교원’ ‘반쪽짜리 교원’이라는 것이다.

경제적 처우, 나아지간 하는 건가

지위나 신분상 권리만 애매한 것은 아니다. 정부안대로라면 시간강사가 강사가 된다고 해서 열악한 경제적 처우가 얼마나 나아질 지도 미지수다. 교과부는 국ㆍ공립대 전업 시간강사의 시간당 강의료를 올해 6만원에서 2012년 7만원, 2013년에는 8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한 주에 9시간을 강의한다고 가정했을 때의 연봉을 현재 국ㆍ공립대 전임강사 평균연봉(4천395만원)의 36.9%(1천620만원)에서 2013년까지 49.1%(2천160만원)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한국교육개발원이 2009년 조사했더니 국ㆍ공립대 시간강사 9천578명 가운데 71.1%(6천807명)가 9시간보다 적게 강의했다. 한 주에 3~6시간을 강의하는 시간강사가 33.6%(3천222명)로 가장 많았다. 주당 6시간을 강의하는 강사를 놓고 보면 시간당 강의료가 8만원으로 올라도 전임강사 평균연봉의 32.8% 수준에 그친다는 계산이 나온다.

1년 이상으로 계약한다고 해서 ‘월급제’나 ‘연봉제’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월급의 형태로 받게 되면 기본급과 각종 수당을 방학 중에도 받을 수 있지만 정부안은 이런 내용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지금도 1년 계약으로 강사를 임용하는 대학이 있지만 대부분 방학 중에는 급여를 주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강사’에서 ‘강사’로 이름만 바뀔 뿐 ‘시급’을 받는 시간강사 제도는 그대로 존속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그나마 사립대에는 재정지원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교과부는 사립대에 대해서는 올해부터 대학 정보공시 지표에 시간강사 강의료를 포함하고, 대학 교육역량강화사업 등 재정지원 사업에 시간강사 강의료를 지표로 사용해 시간강사의 처우개선을 유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간강사 강의료를 선뜻 국ㆍ공립대 수준으로 올릴 수 있는 사립대가 몇 군데나 될지 의문이다. 국내 사립대는 대학 재정의 60~70%를 등록금에 의존하는 구조인데다 정부는 등록금을 3.0% 이상 올리는 대학에는 교육역량강화사업 등 재정지원 사업에서 불이익을 주겠다고 하고 있다.

강남훈 전국교수노동조합 위원장(한신대)은 “정부에서 아무런 예산 편성 없이 강의료를 1천만원에서 2천만원으로 올리라고 사립대에 ‘권고’만 하면 등록금을 올리든지 강사를 줄일 것”이라며 “국가 예산의 뒷받침이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임교원확보율 반영 등 숨은 불씨 많아

사립대에서 비정년트랙의 채용을 늘린 것은 교과부에서 전임교원 확보율을 산정할 때 인정해 주기 때문이다. 2006년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4년제 대학의 50%에 달하는 99곳이 비정년 전임교원 제도를 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우수한 시간강사를 확보하기 위해 연봉 3천만~3천600만원 정도의 대우를 해 주면서 비정년 강의전담교원을 뽑는 대학이 늘고 있다.

교과부 역시 사립대에 강사 채용을 유도하기 위해 전임교원 확보율에 반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대통령령인 대학 설립ㆍ운영규정을 개정해 주 9시간 이상 강의하는 강사의 경우 법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전임교원 수의 20%까지는 전임교원으로 인정해 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존 전임교원과 똑같이 1대 1의 비율로 인정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순광 위원장은 “현재도 전체 교원확보율을 계산할 때 겸임ㆍ초빙교수를 20%까지 반영해 주다 보니 겸임교수를 100명 이상 둔 곳도 있다”라며 “사립대의 경우 적은 비용으로 전임교원 확보율을 높일 수 있어 전임교원 대신 강사를 뽑는 식으로 악용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우려했다.

이러한 혜택이나마 누릴 수 있는 시간강사는 ‘일부’가 될 수도 있다. 정부안은 임용절차나 조건, 재임용 방법 등을 시행령이 정하는 기준에 따라 학칙이나 정관에 정하도록 했다. 교과부가 지난해 6월 처음 발표했던 기간제 강의전담교수 제도나 사회통합위원회가 지난해 10월 발표했던 시간강사 제도개산 방안은 기본적으로 ‘박사학위를 가진 전업 시간강사’를 대상으로 했다.

과거 안처럼 강사의 자격요건을 ‘전업’ ‘박사학위 소지자’ 등으로 제한할 경우 전업 시간강사 일부만 교원인 강사가 되고 나머지 시간강사는 과거보다 처우가 열악해진 겸임ㆍ초빙교수로 흡수될 가능성이 있다. 비정규교수노조에 따르면, 월 100만원 안팎의 수입이 있거나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는 연구자가 대학에서 강의할 경우 모두 비전업 강사로 간주되는 실정이다.

비정규교수노조는 “그렇기 때문에 겸임ㆍ초빙교원을 포함해 ‘교원이 아닌’ 모든 비정규 교수 제도를 폐지하고 모두 ‘교원 신분을 가진 연구강의교수제’로 단일화해야 한다”라며 “모든 비정규 교수에게 내실 있는 교원 법적지위를 부여하고, 정부가 직접 지원을 약속하라”고 요구했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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