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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의 임금이 성과연봉제의 대상인가
교수의 임금이 성과연봉제의 대상인가
  • 김봉억 기자
  • 승인 2011.03.21 13:49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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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과 교수사회의 주요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급여, 특히 ‘성과연봉제’일 것이다. 정부가 서둘러 국립대법인화를 추진하면서 국립대가 ‘성과연봉제’를 신중하게 도입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사립대에서 성과연봉제를 변형한 시책을 내놓아 문제가 되고 있다. 이득재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기고글을 통해 “임금을 더 받는 교수와 임금을 삭감 당하는 교수들로 교수사회가 양극화되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성과연봉제’에 인문대, 자연대 교수들이 희생당하고 있다고 문제점을 제기해왔다. 이 교수의 글이 ‘성과연봉제’에 관한 성찰점을 제공하고 있다는 판단에서 그의 글을 全載한다.   편집자주

"고도의 지성이 요구되는 대학에서 법을 어기고 도덕과 윤리까지 훼손하며

교수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성과연봉제가 강행된 것은,

한국사회에서 대학은 더 이상 대학이 아니라는 확실한 방증이다."

한 대학이 마련한 신임교수를 위한 교수법 워크숍에 참여한 젊은 교수들(위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는 무관함). 지금 일부 사립대에서 시행하는 변형된 '성과연봉제'가 교수들의 사기를 저하하며, 나아가 위법 소지를 안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한국 사회는 1997년 IMF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은 후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거세게 밀려 들어 왔다. 얼마 전 일본 열도를 강타한 진도 9도의 강진과 지진해일처럼 한국 사회를 덮친 신자유주의의 해일은 한국 사회를 극단적인 양극화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전체 가구의 40%가 무주택자인데 혼자서 1천83채를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0.5%에 불과한 땅부자 10만 가구가 국토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집과 땅이 이런데 소득과 교육 격차가 어떨지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그 신자유주의의 해일이 이제는 대학까지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 고려대를 필두로 시작된 대학의 기업화는 이제 전국으로 퍼져가고 있다. 진도 9도의 강진이라 그럴까. 대학이 수익업체로 변질돼 돈벌이에 올인 해도 도무지 속수무책인 듯하다. 부산의 한 대학 정문 옆에는 건물이 들어서 수십 개의 커피전문점과 멀티플렉스가 입점해 영업을 하고 있다. 이것은 조족지혈의 수준이거니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대학이 대학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 한마디로 한국 사회에서 대학은 신자유주의의 지진해일에 휩쓸려 간 지 오래됐다는 말이다.

지성의 사막화가 진행된 지도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다. 학생들은 수업권을 주장하기 전에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고 교수들은 교권을 주장하기 전에 신자유주의적인 경쟁에 내몰렸다. 최근 기세를 몰아 정부는 국립대를 법인화하고 국립대 교수들을 성과연봉제로 줄 세우기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국립대는 성과연봉제를 점진적으로 추진하고 법을 위반하지 않으려고 교수의 임금 중 체력단련비 등을 성과연봉제 대상에서 제외했지만 지방의 어떤 사립대는 체력단련비, 상여금, 명절휴가비, 성과조정 수당을 모조리 성과연봉제 대상에 집어넣는 위법을 행하고 있다.

교수를 지표로 평가한다는 발상 자체도 문제가 있지만, 기존의 교육 업적, 연구업적, 봉사업적 외에 취업업적, 학과평가 등을 성과연봉제 주위에 두루 배치해 교수들을 극도의 경쟁으로 내몰고 그것을 통해서 교수들을 길들이려는 시도를 이미 시행하고 있다. 교수들을 임금을 더 받는 교수와 임금을 삭감당하는 교수로 양극화시키는 이러한 현상은 한국 사회의 양극화 현상을 그대로 닮았다.

지방의 한 사립대의 경우 등급에 따라 연 최소 500에서 최고 2천200만 원까지 임금을 삭감당하고 있다. 연구 업적을 쉽사리 올릴 수 없는 문과대, 자연대 교수들이 임금 삭감의 포화를 맞고 있다. 논문을 실을 학회지가 얼마 안 되는 교수는 일 년 내내 논문을 쓸 수도 없을뿐더러 논문을 실을 학회지도 없다. 성과연봉제를 실시하는 불편부당한 논리는 이것만이 아니다. 정부의 지원을 받는 터에 교수들을 정부가 요구하는 지표에 맞추고자 성과연봉제를 실시함은 물론 그 때문에 교수들이 학생들 취업을 도맡아야 한다. 이것을 취업 업적에만 포함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학과 평가에도 이중으로 포함시키고 있다. 대학 자신의 자산 증식을 위해 교수들을 희생시키는 것이 성과연봉제다. 수능 시험을 치는 학생들 마냥 교수들을 1등급에서 9등급으로 나누어 놓고 B2 이하의 교수 월급을 삭감해 그 이상의 등급을 받은 교수들에게 몰아주는 성과연봉제는 교수들을 양극화시킬 뿐만 아니라 실제로 교수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비판적 대안 손놓고 눈치만 보고 있는 교수들

한국 사회에서 대학이 신자유주의의 지진해일에 휩쓸려 사라졌다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경제적·사회적·문화적인 양극화에 대해, 대학이 일침을 놓고 비판적인 대안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신자유주의적인 경쟁 과정을 그대로 좇으며 모방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성의 사막화가 절정에 오른 대학에 오아시스를 만들어야 할 교수들은 돈만 쫓아다니거나 바싹 몸을 낮춘 채 재단의 눈치만 보고 있다. 교권이고 뭐고 교수고 뭐고 다 팽개치고 월급이 부당한 이유로 삭감돼도 고용만 보장된다면 하는 심정으로 노예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정당한 사유 없이 대학은 교수의 임금을 건드릴 수 없는데도 절차위법, 내용위법을 감행하면서까지 2014년까지 대학 교수의 월급을 절반 이하로 삭감하려고 하는 대학이 있다. 만일 대학이 신입생이 없어서 문을 닫아야 할 사정에까지 이르렀다면 그것은 정당한 사유가 된다. 그렇지 않다면 대학은 취업 규칙을 어길 경우 그것은 위법한 것이 된다. 최근 대전의 한 국립대에서 학칙개정이 법률적 이익을 침해했는가라는 판결에서 재판부는 교수들의 손을 들어 줬다. 학칙개정 문제 정도가 이러한데, 교수가 대학에서 근로기준법에 따른 근로자의 지위로 일하는 근거가 되는 취업규칙을 정당한 사유 없이 훼손하며 국립대의 성과연봉제와는 전혀 비교도 되지 않는 성과연봉제를 실시한 것은 누가 봐도 ‘대학이 대학이라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연봉계약서 작성 자체가 베일에싸여 있다면?

그러나 지방의 한 대학에서는 실제로 그러한 일이 일어났고 성과연봉제 시행 과정에서 절차를 지키지 않은 것은 물론 성과연봉제 실시 후 연봉계약서에 하자가 있어 다시 연봉계약서를 만드는 등의 불합리한 일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연봉계약서 작성 자체가 베일에 둘러싸여 있다. 취업 규칙이 교수들의 법률적 이익을 침해 했는가 하는 것은 법률적인 판단이 필요한 일일 테지만, 고도의 지성이 요구되는 대학에서 법을 어기고 도덕과 윤리까지 훼손하며 교수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성과연봉제가 강행된 것은, 한국 사회에서 대학은 더 이상 대학이 아니라는 것의 확실한 방증이다. 한국 사회를 이끌어가야 할 대학이 사회의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며 스스로 대형 슈퍼 내지는 장사치의 행세나 하는 마당인지라, 한국 사회에서 대학은 이미 소멸해 버렸다고 말할 도리 밖에 없다.

작년에 김예슬 학생이 대학교를 떠났다. 장터로 변한 학교에서 더는 배울 것이 없어서였다. 김예슬 학생을 가만히 생각하고 있노라면 심각한 자괴감이 든다. 김예슬 학생의 반발치도 쫓아가지 못하는 나는 과연 교수라고 할 수 있는가. 대학이 이미 대학이 아닌 이 마당에 목구멍의 포도청만 읊조리는 나는 과연 무엇인가. 9등급을 받은 학생이 자신의 재능은 깡그리 무시당한 채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지잡대’를 다닐 때 그 학생의 심정을 우리는 얼마나 헤아려 보았을까. 이와 마찬가지로 어느 한 교수를 9등급으로 낙인찍어 생계는 물론 한 인간으로서의, 가장으로서의 자존심을 짓뭉개 버렸을 때 우리는 그 교수의 심정을 얼마나 헤아릴 수 있을까. 이러다가 혹여 교수들을 성과연봉제로 쭉 줄 세우는 것도 모자라 1등에서 9등까지의 등급 순위를 정보공시하자고 나오는 것은 아닐까.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도 잘 하는 한국 대학이기 때문에 교수등급 정보공시제를 시행하려고 들지도 모른다. 정부는 이 제도를 시행하는 대학에 국민들의 혈세를 퍼 주며 독려할 것이다. 대학에서는 이미  교수들의 묵인 하에 강의평가제가 시행되고 있지 않은가.

성과연봉제를 실시해보니 불합리한 측면이 많아 이미 미국에서는 성과연봉제를 폐지하는 추세인데, 왜 유독 한국 사회는 그 좋아하는 미국에서마저 폐지하는 성과연봉제를 이제 실시하려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국립대는 법인화를 시행하기 위한 예비포석이라고 하지만 사립대는 왜 앞서서 위법한 성과연봉제를 강행하는 것일까. 대학마다 속사정이야 대학평가 지표 개선하고 정부에 눈치를 잘 보여 국민의 혈세를 따먹으려는 심산이겠지만 그 일을 교수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강행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학이 대학이기를 스스로 포기하고 기업 내지는 슈퍼마켓을 자처한다면 정부는 교수들이 대학과 임금 협상을 하도록 교수노조를 합법화해야 한다. 기업이나 사업체에는 노조가 있지 않은가. 기업으로 변한 대학에 교수노조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앞뒤가 바뀌어도 한참 바뀐 일이다.

이득재 대구가톨릭대·노어노문학과

이득재 대구가톨릭대·노어노문학과 필자는 고려대에서 박사학위를 했다.『오토포이에시스와 통섭』등의 저서가 있으며 <문화/과학> 편집위원, <레프트 대구> 편집위원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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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이 필요하다지만 2011-03-29 19:08:20
연구와 교육의 본문을 잘 지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제대로 구분해 낼 수 있는 정확한 방법이 있는가? 연구의 양과 질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교육의 양과 질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정확한 평가방법이 존재한다면 성과연봉제가 적용되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인센티브 방식이 아닌 제로섬 방식의 성과연봉제는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공정한 평가방법이 확립되지 않는다면 절대 시행되어서는 아니될 제도이다.

어설픈 독자 2011-03-28 22:27:01
지금까지 읽은 이런 류의 글 중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설득력을 지닌 논점과 개성을 드러내는 글의 스타일 모두에서. 교수신문은 이 정도 수준의 필자를 동원해서 기고문을 쓰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저도 교수 2011-03-26 08:09:09
저도 교수지만, 교수사회에 왜 경쟁도입이 말이 안됩니까? 그럼 그렇게 하고 있는 미국이나 본저자가 공부하는 분야인 러시아나 유럽등의 대학은 무엇인가요? 대체로 그런류의 주장을 하시는 분들을 보면 대게 인문학 하시는 분들이 대학경쟁력에 심한 반발을 하시는 것 같네요.